(제 80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1
(1)
하늘을 꽉 메운 비구름우에서 마치 천군만마가 폭풍쳐달리기나 하는것처럼 우뢰소리가 꽈당탕 꽈당탕 울려퍼지고 장검과 장검이 맞부딪치는것과 같은 번개불이 번쩍번쩍 하늘을 갈랐다.
비는 대줄기같이 퍼부었다. 산천초목들은 세찬 비바람에 몸부림치고 어디서나 콸콸 흘러가는 물소리가 사방에 가득찼다. 가까운 산발도 뽀얀 비발의 운무속에 륜곽만이 어슴푸레 보여왔다.
이 폭우속을 뚫고 의병대는 씨엉씨엉 걸음발을 다그쳤다. 선두에는 말을 탄 조헌의병장이 가고있다. 그의 얼굴에 가득히 흐르는 비물이 다박수염을 타고 락수물처럼 쉬임없이 줄기져 내렸다. 검은 전립우에, 푸른 전복의 어깨와 가슴에 물을 바가지로 퍼붓듯 비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조헌의병장은 자세를 조금도 흐트리지 않고 꿋꿋이 앞을 내다보며 나아갔다. 그뒤에 선봉장 완기가 30여명밖에 남지 않은 자기 대를 이끌고 나아가고 또 그뒤에 좌위장, 우위장들이 역시 20여명밖에 남지 않은 자기 인원들의 앞장에서 씩씩하게 걸었다.
관찰사 윤선각의 방해로 2천여명의 의병들이 백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백여명중에는 보은고을백성들이 많았다. 그들은 한때 자기들의 고을원이였던 조헌의 격문을 보고 격동을 금치 못하였었다.
《여보게들, 우리 옛 사또가 의병을 뭇는다오!》
《참말 피가 끓는 격서로다. 그분이 이 란시에 가만있을 사람이 아니지. 평시에도 백성들을 위해 애쓰더니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한몸 바쳐나섰소.》
《암, 그렇구말구. 그분이라면 의병들을 잘 이끌고 왜놈들을 본때있게 칠거야. 난 당장 그분을 찾아가 의병에 들겠네.》
《그분의 수하에서는 나도 왜놈 백놈을 넉근히 때려잡을수 있을것같네. 나도 의병장님을 찾아가겠네.》
이렇게 그들은 피끓는 가슴을 안고 의병에 든 사람들이였다.
이 백여명중에는 또한 전라도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그들대로 한때 조헌이 전라도도사로 있으면서 백성을 위해주던것을 잊지 못해하였었는데 왜놈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피난하던 길에 조헌의 격문을 보게 되였다. 그들은 흥분하여 《우리가 정처없이 피난할것없다. 조헌나리님이 의병들을 부르는데 그분을 따르자. 그분이라면 믿을수 있다.》 하고 의병대에 참군하였던 사람들이다.
윤선각의 관군이 의병들을 끌어갈 때 그들은 당당하게 맞서나섰다.
《우리는 옥천고을사람이 아니요. 충청도사람도 아니다. 우리는 전라도사람들로서 피난중에 조헌의병장의 격문을 보고 의병대에 들었다. 우리를 끌어갈 리유가 없다.》
《우리는 경상도사람들이다. 감사 김수는 백성들에게 전령하여 다 피난하라고 하고는 제 먼저 도망하였다. 그래서 할수없이 피난하고있었는데 조헌의병장의 격문을 보게 되여 의병대에 찾아왔다. 우리도 전라도사람들처럼 충청도관군에 들어갈 명분이 없다.》 하고 보은고을사람들은 관군을 이렇게 천연스럽게 넘기였다. 그리고는 창과 칼을 꽉 그러쥐고 우뚝우뚝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만약 너희들이 완력을 행할라치면 우리도 완력으로 맞받아나아갈테니 그리 알라는 자세였다.
관군들은 할말이 없는데다가 그들이 록록치 않아서 감히 다치지 못하였다.
지금 조헌의병장을 따라 비발속을 뚫고가는 백여명중에는 옥천고을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군량미를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고 혹은 창대감과 화살감을 찍어오라는 령을 받고 또는 적정을 정찰하라는 과업을 받고 며칠간 의병대를 떠나있었던것이여서 관군에 끌려가지 않았었다.
조헌의병장은 자기와 사생동고를 함께 하려고 끝까지 따라나선 백여명의 이 소중한 사람들을 밑천으로 삼아서 각 위들의 기틀을 허물지 않았다. 한개 위가 300여명이였었는데 지금은 서른명이 되나마나 하였다. 여기에 의병들을 새롭게 불러일으켜 각 위들을 본래대로 채워넣으리라고 결심하였다. 위장들과 의병들도 조헌의 결심을 기꺼이 받아들이였다.
조헌은 의병을 다시 크게 일떠세울 지역을 공주로 정하였다. 공주는 감영이 있는 고을이지만 윤선각이 내포로 진영을 옮겨가서 텅 비여있는것이나 다름없었다. 왜적이 자그마한 군사로도 쉽게 삼킬수 있는 위급한 곳으로 되였다. 한시바삐 그곳에서 의병을 일으켜 공주를 지켜내야 하였다. 이것을 알았기에 의병들은 폭우 몇백리를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힘차게 행군해나가는것이였다.
조헌의병장의 뒤에 몇걸음 떨어져서 덕보와 삼녀가 각기 말을 타고 따랐다. 삼녀는 비발속에 선명히 보여오는 꽃송이처럼 고운 얼굴을 높이 들고 비내리는 전후좌우를 별빛같은 눈초리로 살펴보군 하였다. 의병장의 신변에 그 어떤 자그마한 위험이 있을세라 온넋을 불태우는것이였다. 그는 의병장의 음식은 반드시 제손으로 지어드리였다. 우물의 물도 제가 먼저 한모금 마셔보고 그 물로 쌀을 씻고 밥을 지었다.
덕보는 돌우에도 꽃을 피우는 지성으로 의병장을 위하는 안해를 더더욱 사랑하였다.
조헌의병장은 상주문을 가지고간 리우, 김경백이 아직도 오지 않아서 덕보를 당분간 비장으로 삼았다. 오래동안 신각부
비는 갈수록 세차게 내렸다.
《아니, 이 망할놈의 비가 윤선각의 편인가. 왜 이리도 지독스럽게 퍼붓는거야.》
어느 의병 하나가 원망스럽게 하늘을 흘기는데 마침 비가 멈칫멈칫하더니 이내 꿈같이 뚝 그쳤다.
의병들은 이것이 우연히 꼭 맞아떨어져서 즐겁게 웃었다.
《자네 좀 일찌감치 하늘을 욕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그랬네. 하하하.》
《비란놈도 윤선각의 편이라고 하니 꼼짝 못하고 그쳤구나. 하하-》
《암, 그렇구말구. 하늘도 윤선각을 옳게 보지 않는게여.》
《하하하!》
의병들은 왁자그르 웃고떠들며 걸음발높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