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9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4 장
임진년 4월
10
(5)
그들은 조헌의병장을 뒤따라 관가의 정문으로 갔다. 주홍칠을 한 큰 대문량쪽에 벌려서있던 파수군사들이 그들의 앞을 막았다.
《나는 충청도의병장 조헌이다. 너의 관찰사 윤선각을 만나러왔으니 비껴서라.》
우뚝 큰키에 검은 전립을 쓰고 허리에 붉은천으로 넓게 띠를 두르고 옆구리에 칼을 찬 조헌의 모습은 의병장의 위엄이 주르르 흘렀다. 또 그뒤에 호위군사로 따라선 세 젊은이들도 눈길이 만만치 않고 온몸에 피가 설설 끓고 슬기와 힘발이 차넘치는 모습이여서 파수병들은 위압을 당한듯 주눅이 들었다.
《저, 황송하오만 잠간 기다려주시오이다. 소인이 얼른 기별하겠소이다.》
조헌은 잠간 기다리였다. 그래도 들어갔던 파수군사가 인차 나오지 않더니 파수장이 파수군사 대여섯을 더 끌고나왔다.
《관찰사님께선 일이 바빠 의병장님을 만날 짬이 없다고 하오이다.》
《무엇이 그리 바쁘다더냐. 왜놈치는것보다 바쁜 일이 무엇이라더냐?》
조헌의 말마디들이 비수처럼 날아갔다.
《그건 소인이 모르오이다.》
《내가 관찰사를 만나려고 300여리를 쉬지 않고 달려왔다가 되돌아가다니 분통스러운 일이다. 관찰사를 면대하여 해야 할 말을 글로라도 남기고가야 하겠으니 지필묵을 가져오너라.》
파수장은 제꺽 지필묵을 내왔다.
조헌은 분격하여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붓을 창끝인양 고누어 들었다.
《충청도관찰사 윤선각에게
…관찰사로 인하여 무었던 의병이 해산되였습니다. … 분에 떠는 나로서는 백성들이 원한을 품고 분발하는 이 기세로 힘을 합쳐 적을 치면 하늘도 도와나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감님의 비통한 지시를 눈앞에 두고 극력 막아나서면서 집행하지 못하게 하는것은 무엇때문입니까.
호서지방 백성들이 왜적과 싸우자고 일떠서는데 오늘 유독 당신만이 무슨 마음으로 적을 치지 않고 장차 전체 호서땅을 적의 소굴로 만들자고 합니까. 어떻게 되여 당신은 계속 잘못된 생각으로 왜적을 치지 않고 나라를 위한다고 빈소리만 합니까.
조정의 지시가 한 도에서 집행되지 않고… 나라를 위태롭게 멸망지경에 빠뜨려놓고도 걱정조차 하지 않으니 어이된 일입니까.
내가 부대안에서 나오는 말을 듣건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군사를 징집한지 수개월이 넘도록 관가의 곡식을 축내여 2만 수천의 군사를 먹이면서 적의 목 하나라도 베였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이렇게 어물어물하다가 백성들이 전부 도륙을 당할것이다.〉고 합니다.
이미 적을 치는 때를 놓치고 임금을 호위하는데도 생각이 없으면서… 충신의사들의 기개를 억누르고있으니 도대체 당신의 생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임진년 6월 23일
조 헌》
조헌은 글을 밀봉하여 파수장에게 넘겨주고 결연히 돌아섰다.
그는 한개 도의 군권과 관권을 틀어쥐고있는 윤선각의 역적행위를 저지시키고 바른길로 돌려세울수 없는것이 통탄스러웠다. 더구나 북쪽 멀리에 있는 임금께 의병을 무은 소식과 충청도에서 왜놈들을 깨끗이 쓸어버리고 임금의 교지와 교화가 실현되는 땅으로 만들겠다는 맹세를 담은 상주문을 보내였는데 의병대가 파괴되였으니 이제 무엇으로 그 맹세를 지키랴 하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지는것같았다.
그는 크나큰 상실의 비애를 안고 무거운 걸음으로 옥수동골안을 돌아보았다. 어제만 해도 의병들이 무술을 익히노라고 떠들썩 활기가 넘쳐나던 골안이였다. 한쪽에선 칼쓰기, 창쓰기를 조련하면서 온몸의 정신과 힘을 창과 칼끝에 모아 다기차게 내지르던 《얏!-》, 《얏!-》 소리가 넘쳐나고 또 한쪽에선 목표판을 세워놓고 활쏘기를 하면서 화살이 작은 동그라미 중심에 명중할 때마다 《와야-》 하고 환성이 터져올랐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덤속같은 괴괴한 정적만이 흐르고있다.
의병들이 들어있던 초막들이 비여있었다. 어데선가 날아왔는지 숲할미새가 빈 초막새초지붕에 앉았다가 가냘픈 울음소리를 남기고 또 다른 빈 초막우에 날아가 앉는다.
조헌의병장을 호위하여 따라나선 삼녀는 《으흑…》 하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삼키였다. 나라를 위해 의병의 칼을 들고일어섰다가 이렇게도 뜻을 이루어보지 못하고 빈 초막들을 돌아보는 의병장을 보니 눈물이 저절로 솟아올랐던것이다.
《의병장님, 인제는 어찌하려 하나이까?》
선봉장 완기는
조헌의병장은 완기의 물음을 온 의병대, 남아있는 의병들의 물음으로 받아들인듯 결연히 완기앞으로 몸을 돌려세웠다.
《우리는 임금님께 충청도의병대를 무었다고 고했고 충청도에서 임금의 교지와 교화가 이루어지도록 왜놈들을 치겠다고 맹세하였다.
죽어도 못버릴것이 임금께 다진 충의절개다. 선봉장은 이제 곧 남아있는 위장들과 의병들을 지휘부막사 앞공지에 집결시키라. 그리고 〈충청의병대〉기발을 높이 띄우라. 우리는 기어이 왜적의 칼날아래 놓인 나라와 백성을 구원해야 한다.》
《알았소이다.》
조완기선봉장은 힘차게 발걸음을 떼였다.
조헌의병장은 리우, 김경백이 한시바삐 임금이 계시는 곳에 다녀오기를 고대하였다. 임금께서 충청도의병대가 무어지고 왜적을 격멸소탕할 충의를 아신다면 장하게 여겨주실것이다. 그러면 관찰사 윤선각은 감히 의병대를 제 마음대로 해치지 못할것이다. 그는 그날이 멀지 않아 반드시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머나먼 북쪽하늘가를 더듬었다.
하지만 그 상주문이 윤선각에게 빼앗기고 리우, 김경백이 희생된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그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