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4 장

임진년 4월

10

(4)

 

그는 상주문에 의병을 무은 경위와 취지를 밝히고 충청도의 왜적을 한놈도 남김없이 격멸소탕함으로써 임금의 지시와 교화가 충청도땅에서 실현되도록 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리고 왜적을 치는데 몇가지 방략을 제기하였는데 그중의 한가지는 다음과 같았다.

《지난날 북쪽변경에 변고가 있을 때에는 오랑캐의 머리를 베여바치는 천민이 있으면 량민신분을 따르게 하고 벼슬길을 틔워줄것을 승인하였으며 곡식을 바치는 서자일 경우에는 서자라는 신분을 벗겨주고 관직에 나가도록 허락하였사옵나이다. 그래서 그때에는 온 나라 백성들이 일어나 싸워서 오랑캐들을 몰아내였사옵나이다.

그러나 일이 끝난 뒤에는 이전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백성들의 신용을 전부 잃었사오이다. 그 결과는 왜란이 터진 오늘에 미쳐와 왜놈과 힘껏 싸우려는 백성들이 줄어들고있사옵니다.

왜적을 치고 제 나라를 지키는데 그 어떤 보수를 바라랴만 그래도 왜적의 머리를 베여바치는 사람들에게, 혹은 자기 집 량곡과 재산을 털어바치거나 군량미를 나르며 먼길에 고생한 사람들에게 공로에 따라 천인에게는 량인으로, 량인에게는 벼슬을 주고 또 조세와 부역도 면제해주고 지난날 죄를 졌던 사람들에게 죄를 벗겨주는 등 여러가지 표창을 믿음성있게 내린다는 어지를 온 나라에 선포하신다면 왜적을 치는데 더 큰 힘을 떨칠것이옵니다.》

윤선각은 자기도 모르게 상주문을 든 손을 후들후들떨었다.

이럴줄 알았다면 사람들을 죽이며 상주문을 강탈하지 않았을것이였다.

그는 당황하였다.

리우, 김경백은 량반선비인데다가 의병장의 비장, 종사관이다.

죄없는 이 사람들을 죽이였으니 이 일이 탄로나면 큰 말썽거리가 생겨날것이였다.

윤선각은 이 사실을 비밀에 붙여두기로 하였다. 상주문을 슬그머니 불태워버렸다.

이리하여 그는 조헌의 상주문을 두번째로 없애버린것이다. 첫번째는 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지난해에 조헌을 해치려고 중으로 가장한 왜놈자객이 조헌의 손에 붙잡혀 토설한 내용을 담은 상주문을 불태워버린것이고 두번째는 이번의 상주문을 불태워버린것이다. 죄없는 사람들을 죽인 흔적을 없애야 하였기때문이였다.

윤선각은 조헌에 대한 시기질투심이 와글와글 끓어올랐다. 그는 이 기회에 조헌의 의병대를 해산해버릴 작정으로 자기의 심복부하에게 수백의 군사를 주어 옥천에 보내였다. 지난 대엿새전에 하교남에게 군적에 올라있는 의병들을 붙잡아오라고 했었지만 조헌의 사리정연한 론박에 헛탕치고 돌아왔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렇게 할수 없었다. 군적이든 무엇이든 상관치 않고 의병이라면 모조리 강권으로 끌어오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의병대는 거의나 파괴되였다.

조헌은 자기의 의병력량으로 관군을 능히 몰아내고 의병대를 지켜낼수 있었지만 제편끼리 맞붙어싸우는것은 왜놈들에게 어부지리를 주는 어리석은짓이기때문에 그렇게 할수 없었다.

조헌은 윤선각의 처사에 분격하여 그의 본진이 있는 내포땅으로 질풍같이 말을 달리였다. 그의 앞뒤에서 완기와 해동이, 덕보가 구름같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였다.

내포는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3백여리 떨어진 곳에 있다. 거기에 가야산이 있고 가야산앞뒤에 12개 고을이 널려져있는데 그 고을들을 통털어 내포라고 부른다. 이 내포땅은 지세가 한쪽모퉁이에 치우쳐있을뿐만 아니라 큰 길목도 아니여서 예로부터 란리의 피해를 입지 않았던 곳이다.

윤선각이 조야의 비난과 규탄을 모면하려고 내세운 명분이란 《임금을 호위하러 가기 위해 기회를 찾고있는중이다.》라는것이였다. 당시에 선조왕은 왕가를 호위할 충신들을 부르기도 하였었다. 윤선각도 이런 부름을 받았었다. 그 부름을 실행하자면 왜적이 점령한 지대를 뚫고 북으로 가야 한다.

2만이 넘어되는 큰 부대를 이끌고가자면 적들과 싸우지 않고서는 임금이 있는 곳으로 갈수 없었다. 그는 왜적과 만나는것조차 두려워하였다. 충청도에서도 왜적이 무섭고 임금이 있는 곳으로 가기도 겁이 나서 갈게가 구멍속에 들어가있듯이 내포땅에 들어가있는것이다. 그러면서도 의병이 크게 일어나 자기를 누르고 공을 세울가봐 배를 앓았다.

조헌은 윤선각이 있는 관사앞에 말을 급히 멈춰세웠다. 말은 흰 거품을 물고 단김을 내뿜었다. 완기와 해동이, 덕보도 말이 멈춰서기도 전에 화닥닥 뛰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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