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4 장

임진년 4월

9

 

충청도에는 산이 많고 절들이 많고 중들이 많았다. 공주 서북쪽의 가야산, 남쪽은 오서산, 동남쪽에 계룡산, 서쪽에 월성산, 차령의 서쪽에 무성산, 구봉산, 보물산

청주동쪽 속리산의 줄기가 남으로 달리다가 우뚝 치솟은 황악산, 전라도와 가까운 덕유산…

충청도와 이웃한 경상도지경에 있는 태백산에 큰절이 세개 있고 암자들도 많다. 오대산에는 해인사가 있다.

청량산에는 련대사가 있다. 이 절에는 신라때 김생의 글씨로 된 불경이 많다. 어떤 선비가 이 절에서 학문을 닦다가 불경 한권을 훔쳐갔는데 집에 닿자마자 죽었다. 그래서 그 집사람들이 즉시 그 불경을 다시 절에 들여보냈다고 하였다.

예로부터 천하명산에는 중이 많다고 하였다. 우리 나라의 명산들에는 모두 절들이 자리잡고있었다. 크게 이름난 절로서 세상에 알려지고 또 기이한 자취와 류다른 경치를 가진 절은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있는 부석사이다.

옛날에 의상이라는 중이 불교에 통달하여 장차 서역에 있는 천축이라는 나라에 가게 되였다. 의상은 자기가 거처하고있는 암자의 문앞 처마아래다가 지팽이를 심으면서 《내가 떠난 이후에 이 지팽이가 반드시 가지와 잎을 가질것이다. 이 나무가 말라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은줄 알아라.》고 하였다. 그후 지팽이에서는 가지와 잎이 돋아났다. 이 나무가 천년을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유명한 절간들을 소중히 안고있는 삼천리금수강산을 섬오랑캐들이 재더미로 만들고있었다.

안심사의 주지 령규스님은 본래부터 간악한 왜놈들을 원쑤로 여겨오던차에 우리 나라를 침략하여 백성들을 도살하고 온 나라를 불태우고있는것을 보고만있을수 없었다.

이 귀축같은 아수라들을 어떻게 하면 지옥의 염천에 쓸어버릴수 있겠는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그는 지난해 덕보가 전해준 조헌의 편지를 받고 마천령에서 호환을 막아주었던 사람이 조헌이라는것을 비로소 알게 되여 여간 반갑지 않았다. 또 왜놈들의 침략이 반드시 있을것이며 그 방비대책을 해야 할것이라는 그의 생각이 자기의 생각과 꼭같아서 더구나 반가왔다. 그래서 미리부터 안심사에 속한 암자의 중들에게 무술을 익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때가 되면 충청도의 절간마다 통문을 돌려 승군을 무으리라 결심하고있었다.

그런데 때가 온것이다. 왜아수라놈들이 미친듯이 이 나라를 휩쓸고 천하의 못된짓을 다하고있는것이다.

의병들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가깝게는 충청도에서 조헌이 제일먼저 피를 끓게 하는 격문을 내고 의병을 일으키였다. 령규스님은 조헌의 격문과 또 뒤이어 불교도들에게 그가 띄운 통문을 읽고 《조헌이야말로 애국충신이다.》 하고 붉은 가사를 기발처럼 펄럭이며 일어섰다. 그의 불같은 호소에 800여명의 중들이 안심사에 모여들었다.

령규는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우렁차게 말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본래 북소리같아서 동래진의 권관으로 있을 때부터 군사들을 한사람같이 움직이도록 하였었다.

《오늘 우리 불도들은 승군을 무었다. 관가에서 승군을 무으라고 해서 무은것이 아니다. 이 나라 하늘땅을 불태우고 이 나라 중생을 살륙하고있는 왜놈들을 쳐부시려고 스스로 일떠선것이다.

우리 불도들이 이 나라 천하명산들에 절을 크게 짓고 불도를 닦는것도 나라의 은혜이고 우리가 먹는 한그릇의 밥도 나라의 은혜다.

어찌 이 나라를 위해 한목숨 아끼겠는가. 우리는 이 한가지 대의로 뭉쳤다. 갈 사람은 가도 좋다. 우리 불도들은 살생을 금하는지라 길가의 벌레조차 밟지 않고 길을 에돌아간다. 허나 살생을 금한다 하여 왜놈들을 멸하지 아니할소냐. 이놈들은 중생이 아니라 마귀들이다.

왜마귀, 왜아수라들을 씨종자도 없게 멸하고 멸하자!》

령규의 호소는 우뢰와 같이 중들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고 중들의 호응은 맞받는 메아리처럼 터져나왔다.

《왜아수라들을 모조리 멸하자!》

령규는 승군에게 칼과 창쓰기, 활쓰기, 수박치기를 조련시키는 한편 이미 무술을 익힌 안심사의 중들에게 패를 무어 왜놈들을 치게 하였다.

왜놈들은 청주성을 점령한 주력을 한성으로 쳐나가도록 하고 나머지놈들은 떨구어놓았다. 주변의 민가와 관청, 사창을 략탈하여 군량과 재물을 제놈들의 선두부대에 조달하려는것이다.

왜놈들은 무인지경을 활보하듯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였다.

한두놈이 략탈한 식량을 수레에 싣고 뻐젓이 몰아가기도 하고 대여섯놈 혹은 여라문놈, 많아야 스무여놈이 마을과 집집을 찾아다니면서 소, 돼지, 닭과 같은 집짐승들을 략탈하기도 하였다. 령규승병장은 이런 놈들을 하나씩하나씩 감쪽같이 없애치우기 위해 날랜 중들로 조를 무어 내보내서 많은 왜놈들을 잡아치웠다. 왜적의 큰 무리는 힘을 합쳐 치고 작은 무리는 작은 력량으로 꾀를 써서 쳤다.

령규는 이렇게 왜놈들을 우리 손으로 얼마든지 때려잡을수 있는 놈들이라는것을 실지로 보여주면서 힘과 용감성, 승리의 신심을 승병들에게 안겨주는 한편 왜놈의 조총을 빼앗아 무장을 굳건히 갖추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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