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4 장
임진년 4월
8
덕보가 의병대를 찾아온지 사흘째되는 날이였다. 며칠내로 조헌의병장은 의병대를 거느리고 왜놈들이 들어올수 있는 금산, 옥천으로 통하는 령길에 진을 칠 준비를 하고있었다. 조헌의병장도 의병들도 모두 흥분하여 칼날을 세운다, 활을 손질한다, 화살을 나누어 받는다 하고 분주히 서둘렀다.
의병들은 며칠 안되는 짧은 기간에 긴급히 무술을 익히기에 밤잠을 자지 않았다. 그것은 죽고사는 일이여서 이악하게 훈련하지 않으면 안되였기때문이였다.
활이라고는 손에 쥐여보지도 못하였던 사람들이 아글타글 애써 활쏘는 묘리를 터득해서 인제는 백보안에 든 목표를 반드시 꼭꼭 맞혀내지는 못할지라도 웬간히 명중시킬수 있게 되였다. 칼쓰기, 창쓰기도 날파람있게 다룰줄 알게 되였다.
한낮이 좀 지나서 옥수동밖 마을의 파파늙은 할머니와 어느한 집의 열두어살난 계집애가 조헌의병장을 찾아와 눈물을 흘리였다.
《나리님, 살려주사이다. 우리 집 령감이 관가에 붙잡혀들어가 매를 맞고있소이다.》
《우리 엄마도 옥에 갇혀서 매를 맞고있소이다. 으흑… 응… 응…》
새다리같이 가느다란 다리도 감추지 못하는 누더기몽당치마를 입은 계집애가 서럽게 울었다.
조헌은 할머니와 소녀를 가엾게 여기며 그들에게 물었다.
《할머니, 관가에서 왜 할아버지랑 붙잡아갔소이까?》
《우리 아들이 군사에 들지 않구 의병대에 들었다구 당장 데려오지 않으면 죽인다고 하오이다.》
《우리 아버지도 의병대에 들었다고 엄마를 잡아다가 때리오이다. 피가 나오는데도 자꾸만 때리오이다.》
할머니와 소녀도 서로 붙잡고 울었다.
조헌은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또 한손으로는 소녀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할머니, 제가 관가에 내려가보겠소이다. 얘야, 너의 엄마를 데려다주겠으니 울지 말아.》 하고는 즉시 비장 리우와 종사관 김경백, 척후장 해동이와 함께 말에 올랐다.
조헌일행이 옥수동어귀에 내려와 시내를 건느려는데 거기서도 총각애 하나가 자기 아버지인듯한 의병의 옷자락을 붙들고 울고있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관가에 붙잡혀갔소이다. 아버지를 데려오지 않으면 군역도망죄로 다스린다고 막…》
《오냐, 알겠다. 잠간 여기서 기다려라. 내 얼른 위장에게 고을에 내려갔다가 온다고 말하고 오마.》 하고 총각애 아버지가 돌아서는데 마침 조헌의 일행과 마주쳤다.
《의병장님, 이런 일이 어디에 있소이까, 소인은 가포(다른 사람이 져야 할 병역을 대신 쳐주는 값으로 무명천을 받는것)를 받고 몇해 군역을 섰는데 관군에 들지 않고 의병에 들어갔다고 애어머니를 붙잡아갔으니 어찌 이럴수가 있소이까.》
《내 그것때문에 관가로 가는 길이요. 그대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서 기다리게.》
조헌은 관가의 무법행위에 격분을 참을수 없어 말을 몰아 관가로 달렸다.
조헌일행이 관청뜰에 들어서니 녀인 하나를 무릎을 꿇여놓고 감영에서 내려온 윤선각의 비장 하교남이 왝왝 소리치고있었다. 그옆에 고을원 구만석이도 있었다. 뜰안 한쪽구석에는 대여섯명의 아낙네들이 비를 맞은 닭무리처럼 몰켜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을 달고칠 시각을 두렵게 기다리고있는것같았다.
한창 하교남의 닥달을 받고있는 녀인의 얼굴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이년, 종시 입을 다물고있겠느냐. 네 남편이 군적에 올라있는데 어디로 도망했느냐? 의병대에 들었지? 어서 말을 못하겠느냐?》
하교남의 악청이 불쌍한 아낙네에게 채찍처럼 떨어졌다.
《가만, 대체 이게 무슨짓들이요?》
조헌이 뜰 한가운데로 나서며 하는 소리였다. 푸른 전복에 검은 전립을 쓰고 허리에 붉은 천으로 넓게 띠를 두르고 옆구리에 칼을 찬 조헌의 모습은 의병장의 위엄이 비껴있었다. 그의 뒤에 비장, 종사관, 해동이들이 따라오는데 그들 또한 씩씩하고 담찬 모습들이였다.
구만석이 조헌을 알아보고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며 《의병장이 어떻게 오셨소이까.》 하고 인사를 차리고 하교남은 못마땅히 례의를 차릴듯말듯하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조헌은 먼저 무릎꿇임을 당하고있는 녀인을 손잡아 일으켜주었다. 조헌에게 있어서 그 녀인은 자기의 의병대에 참군한 가족식솔이였다. 의병장은 그들의 부모와 같은것이였다.
그는 그자리에 우뚝 서서 하교남과 구만석을 지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교남과 구만석은 조헌이 관가의 관리인 자기들을 안하무인격으로 대하는 도도한 태도에 저으기 위압되였다.
하교남은 지난해 성쌓기공사장에서 돌에 치운 사람을 돌봐주고있는 사람들에게 일을 하지 않는다고 관권을 휘두르다가 조헌에게 개코망신을 당하였던 일이 있어 그가 두려웠지만 오늘 또다시 맞다들어 너무도 무시당하고 모멸당한지라 분이 치솟아올랐다.
《거기서는 관가와 맞서보자는게요? 함부로 관가의 공무를 파탄시키는 무엄한짓을 하고도 무사할줄 알았소? 당장 나가시오. 거기는 관가일에 상관치 마시오.》 하고 하교남이 벌떡 일어나며 손을 뻗쳐 관가의 삼문을 가리키였다.
《무엇이라구? 관가의 공무라구? 죄없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매를 치는게 공무라구? 비장은 〈경국대전〉의 형전에 죄없는 사람을 매질, 고문, 위협공갈하라는 법조항이 있는가 없는가를 알고있소? 알면서도 법조항을 위반하였을 때 그것으로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조문을 아는가? 비장이 매를 당해보겠는가, 고을원이 형장을 받아야 하겠는가 생각들을 해보시오.》
하교남과 구만석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하였다. 당시에 반인민적법전에도 관리들의 무법불법행위를 가리우기 위해 법전에 이러한 조항을 써넣기는 하였었다. 사람들은 상하귀천 불문하고 법앞에는 평등하다는 인상을 주어야 백성들의 불만을 무마시킬수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관리들은 그 법조항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권력을 가진자는 그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하교남과 구만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 법조문을 알고있으면서도 이현령, 비현령이라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백성들을 자기의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다루었다.
조헌은 한때 감찰벼슬을 지니고있었기에 《경국대전》의 법조문을 환히 꿰들고있었다. 하교남이나 구만석은 조헌을 당해내지 못하였다.
하교남은 조헌에게 몰리는것이 창피스러워서 그것을 모면하려고 언성을 높이였다.
《군적에 등록되여있는자들이 란시에 군역을 기피하였는데 그런놈들 두둔해주는 조헌의 죄 어찌 용서받겠는가.》
《비장은 들으라. 본관은 충청도의병장이다. 전 제독관 조헌의 이름으로 이 나라 8도의 선비들과 백성들, 불교도들에게 보낸 격문을 보지 못하였는가. 온 나라 백성들이 모두 떨쳐나 왜놈을 족쳐버리자고 호소하고 의병을 무었소. 우리는 관가에서처럼 매를 쳐서 강제로 의병을 불러모으지 않았소. 그러나 뜻있는 선비들과 백성들은 그 격문을 보고 구름처럼 모여들었소.
왜 그렇게 되였는가. 의병대야말로 진실로 왜적을 치겠다고 떨쳐일어난 군사이기때문이요. 왜적이 무서워 적이 없는 곳에 진을 치고 군량만 축내면서 왜놈 한놈 목베이지 못하고있는 관군에 들어가 무엇을 하겠는가. 경상도 관찰사 김수처럼, 김해부사 서례원처럼 적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도망하는 비겁한 장수를 따르고싶지 않기때문이요. 충청도 군사는 2만 3천이지만 한놈의 왜놈도 죽여본 일이 없소.
충주와 청주고을은 충청도의 중요고을인데 충청도 군사들이 적을 막으려고 그곳에 가지 않았기에 적에게 먹히웠소.
뛰여난 장수들인 신립, 김여물이 그곳으로 급히 가서 백성들과 군사들을 모아가지고 겨우 8천으로 적을 막아나섰소. 이럴 때 충청도군사 2만 3천이 신립을 도와나섰다면 왜적을 족쳐버리고 청주와 충주를 지켜내고 한성도 지켜낼수 있었을것이요.
그러나 관찰사 윤선각과 하교남은 수많은 군사를 가지고있으면서도 강건너 불보듯 하였소. 어찌 그뿐인가. 얼마전에는 윤선각관찰사와 비장 하교남은 대군을 거느리고있었지만 룡인에서 적과 싸워보지도 않고 공주로 도망쳤다고 하오.》
이것은 사실이였다.
윤선각은 6월초에 군사 2만 3천을 가지고 하3도의 군사를 총지휘하게 된 전라도관찰사 리광의 휘하에 편입되였었다. 리광은 윤선각의 충청도군사까지 합하여 6만의 군사를 이끌고 한성을 향하여 행군해가다가 룡인남쪽에 이르렀다.
룡인에는 왜적의 한개 부대가 진을 치고있었다.
리광은 정찰도 내보내지 않고 선봉장에게 군사 2천을 주어 적을 치게 하였다가 오히려 참패를 당하였다.
대기하고있던 하3도군사들은 적이 반격해온다는 헛소문을 듣고 모두 흩어져버렸다. 리광과 장수들이 먼저 도망하였으므로 부대를 수습할수 없었다.
윤선각은 공주로 내뺐다. 그리고도 안심치 않아서 2만 3천이나 되는 군사를 데리고 여기 내포땅에 들어와 백성들만을 쥐락펴락하고있는것이다.
조헌은 분격이 이글거리는 눈길로 하교남을 바라보며 준렬히 꾸짖었다.
《적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이곳에 주둔해있으면서 왜놈과 싸우려하지 않는것은 사실상 역적행위나 다름없소. 이따위 군사에 들었다가 오히려 치욕을 당할가봐 우리 백성들은 의병대에 모여들고있소. 왜놈들과 끝까지 싸우려는것이요.
옥천고을 관장도 민심을 잃은탓에 백성들을 잃고있소. 나는 지난해 성쌓기공사장에서 민심은 천기보다 낫고 지리보다 낫다고 하교남비장과 윤선각관찰사에게 건의하였소. 그러나 고을원과 비장은 아직도 평시에 그랬던것처럼 왜란이 터진 오늘에도 백성들을 가혹하게 매질하고있으니 백성들은 누구를 믿고 살겠는가. 왜란초기에 민란이 일어난 고성고을소식을 듣지 못하였는가. 고성원 김현은 평시에 백성들에게 가혹한 형벌을 들씌운탓에 민란까지 겹쳐들어 왜적에게 고을을 먹히웠소.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시오. 개심군자라고 깨닫고 고치면 되는게요.
빨리 잡아온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옥에 가둔 부녀자들을 놓아주도록 하오. 의병대의 가족들을 돌봐주지는 못할망정 해를 끼치지 마시오.
비장은 즉각 감영으로 돌아가 윤선각관찰사와 더불어 왜적부터 칠 생각을 하시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본관은 의병장의 자격으로 임금께 상주문을 올려서 비겁분자를 성토하겠으니 그리 아오.》
하교남과 구만석은 추상같이 내리퍼붓는 열변에 항변 한마디 할수 없었다. 충주, 청주고을이 함락된것은 저들의 죄행으로 비참하게 된것만큼 할말이 없었다. 룡인에서도 왜놈과 싸우지 않고 도망하였었다. 민심을 잃은것도 사실이고 적을 한놈도 죽여본적이 없는것도 사실이였다.
그는 조헌이가 두려웠다. 그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수도 없었다.
조헌을 따라온 리우, 김경백은 애국애민의 열기가 활활 불타는 언변으로 상대를 눌러버리는 조헌의병장의 기개와 지조에 무한히 감복되였다.
조헌은 옥에서 풀려나온 부녀자들과 로약자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관청뜰에 우뚝 서있었다.
옥에서 나온 사람들은 조헌에게 절을 하면서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