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4 장

임진년 4월

3

 

왜놈들은 령남을 며칠안에 거의다 삼켜버리고 남아있는 고을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들었다. 고을원들은 왜적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도망하였다.

진해고을에서는 너무나 통탄할 일이 벌어졌다. 배를 타고오던 왜놈들이 풍랑을 만나 배가 파손되여 죽을번살번하며 뭍에 올랐는데 겨우 40놈이였다. 이놈들은 기갈이 심하여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였다. 칼도 조총도 물에 다 빠져버리고 한두놈이 요행 조총을 가졌는데 그마저 화약이 물에 젖어 쓸수 없게 되였다. 이런 놈들이 살구멍을 찾아헤매면서 이럭저럭 진해고을지경에 닿았다. 진해고을 현감은 왜놈들이 나타나자 자세한것은 알아보지도 않고 겁을 먹고 먼저 도망쳐버렸다.

고성고을에서는 현령 김현이 부임기간에 백성들에게 가혹한 형벌을 써서 민심을 잃고있었다. 왜적들이 린근고을인 진해에 들어왔을 때 고성고을백성들은 왜적을 칠 준비를 할 대신에 현령 김현부터 잡아죽이려고 하였다. 쌓이고쌓인 원한과 울분을 참을수 없었던것이다.

바로 이런 때 왜놈들이 성을 삼켜버렸다. 적들로서는 참으로 흐뭇한 어부지리를 얻은셈이였다.

현령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죽음보다도 더 무서운 백성들의 배반을 당하였다.

교활한 왜놈들은 《우리 일본은 명나라를 치러 가는데 조선이 길을 빌려주지 않기때문에 길을 열려고 할수 없이 맞서는 사람들을 치고 죽이는것이지 무턱대고 죽이지 않는다. 길을 순순히 빌려주고 항복하면 살고 우리와 싸우면 반드시 죽는다.》라는 공시문을 내다붙이고 한편으로는 강제로 붙잡아다가 짐군으로, 길잡이로 내몰았다.

옥천고을에서도 백성들이 배반해서 들구일어날지 누가 알랴. 고을원 구만석은 불안하였다. 관내백성들이 란리통을 기회로 삼아 고성고을의 백성들처럼 란동을 부린다면 그야말로 야단이다. 백성들이 반기를 들고 왜놈들은 짓쳐오고… 무서운 화가 쌍으로 덮쳐들수 있는것이다. 그에게는 왜놈도 막고 백성들을 막아낼 군사들도 없다. 윤선각이 빼앗아간 군사는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는 조헌을 찾아가 그의 도움을 받고싶었다. 아니, 조헌을 내세워 민심을 바로잡아야 했다. 민심은 하늘이 준 기회보다 낫고 유리한 지형지리보다 낫다는 조헌의 말이 이제 와서야 얼마나 천금만금보다 귀중한것인가를 알게 되고 백리국의 이야기와 《인자무적》이라는 말이 얼마나 큰 세상리치를 담고있는가를 뼈저리게 느낄수 있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세월이 그렇게 만들어주었기때문이다. 한개 고을을 쥐고흔드는 권세와 부귀영달을 잃고싶지 않은탓이다. 그는 아직도 왜놈자객을 호송하던 군사가 형장아래 죽으면서 《너희들은 왜놈보다 더 흉악하고나-》하고 소리치던 그 말이 《이놈들아, 왜놈보다 너희들부터 목을 칠테다-》하는 말로 엇바뀌여 들려오는듯싶었다.

구만석은 조헌을 찾아갔다. 옥수동어귀에 들어섰을 때였다.

마을동구밖의 정자나무아래 백성들이 하얗게 모여있는것이 바라보였다. 그는 말을 멈춰세웠다. 전배사령을 불러 백성들이 무슨 일로 모여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였다.

겁이 더럭 났었다. 백성들이 관가를 들이칠 모의를 벌려놓았는지 알수 없는것이였다. 그도 6방아전들을 내몰아 백성들의 등껍질을 벗겨먹고 그들을 마소처럼 부역에 부리였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어찌 백성들이 가만있겠는가.

잠시후에 백성들한테 갔던 전배사령이 돌아와서 구만석에게 아뢰였다.

《아뢰오. 조헌선비님이 동네사람들과 피난가는 백성들을 모여놓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소이다.》

《조헌이 피난가는 사람들까지 모여놓고? 그래 피난민들은 어디에서 오는 사람들이라더냐?》

《린근고을과 멀리 전라도에서도 온것같소이다.》

구만석은 바싹 조였던 탕개를 늦추듯이 후유- 긴숨을 내쉬였다. 다행스럽기도 하였고 놀랍기도 하였다. 다행스러운것은 하얗게 응집하고있는 백성들이 어떤 모의를 하려는것이 아닌것이다. 그리고 놀라운것은 조헌이 어떻게 피난민들을 불러세웠는가 하는것이였다.

구만석은 길잡이 전배사령에게 벽제소리를 울리게 하고 왈랑절랑 말방울소리를 울리면서 말을 몰아 사람들이 모여선 정자나무아래로 갔다.

《에라, 쉬- 사또님 행차시다. 물러까라 쉬-》

조헌을 둘러싸고있던 사람들이 마지 못해 길을 열어주었다. 이 사람들은 령남과 호남에서 피난해가는 사람들과 동네사람들이였다.

구만석은 말에서 내려 고을원의 지체를 떨구지 않으려고 위엄있게 조헌의 곁으로 다가갔다. 조헌은 구만석에게 례의를 차려서 자기곁에 앉혔다.

《어서 말씀을 계속하시오이다. 어험.》

구만석이 틀지게 큰기침을 하였다. 조헌은 고을원이 마침 나타난것이 잘되였다고 생각하였다.

구만석은 조헌이가 고마왔다. 백성들의 민심을 바로세우는 일을 이렇게 누구도 생각지 못한 때에 행하고있는것이다.

조헌은 앉은자리에서 근엄히 일어나 하얗게 모여선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여러분님들, 이 나라 백성들은 자고로 우리 나라를 침략하는 오랑캐들을 용서치 않았소이다. 고려때에도 왜구의 침략이 무수히 있었지만 우리 백성들은 놈들을 바위로 닭알 누르듯이 짓뭉개버리였었고 본조에 들어와서도 쯔시마까지 정벌하여 왜놈의 항복을 받아내고 삼포왜란도 평정한 슬기롭고 용감한 백성들이오이다. 극악한 왜놈들은 이번에 도적고양이처럼 틈을 엿보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우리 백성들을 도륙내고 로략질하고 불태우고있지만 절대로 오래가지 못하오이다. 교활한 왜놈들은 저들의 힘이 약하니까 어리석은 우리 백성들을 강요하여 제놈들의 옷을 입히고 제놈들의 군사로 만들어 힘을 보충받자는 흉책을 드러내고있으며 우리 조선사람들끼리 싸우게 해서 어부지리를 얻어보려고 온갖 못된짓을 다하고있소이다. 왜놈들은 군량이 없어서 우리의 식량과 재산을 략탈하고있는데 왜놈들에게 쌀 한알, 물 한방울을 주지 않으면 왜놈들은 기갈을 만나 풀자루 주저앉듯 할것이요. 또 우리 백성들이 왜놈들의 길잡이, 손발노릇을 하지 않으면 갈길을 몰라 허둥지둥하는 소경처럼 될것이요. 이런 놈들을 때려잡기는 도리깨로 콩마당질 한가지라 제깐놈들이 무주고혼이 되였지 달리되지 못하오이다.》

동네사람들과 피난민들이 《야-》 하고 싱글벙글 웃음을 피웠다. 오래간만에 속이 시원해지고 눈앞이 환히 열리는 말을 들으면서 조헌을 미덥게 바라보았다.

《여러분님네들, 왜놈한테 겁을 먹으면 패하고 자신심을 가지고 싸우면 이기옵니다. 나라에서는 왜놈들의 목을 베인 수에 따라 노비는 량인으로 만들어주고 량인에게는 벼슬을 주고 부역도 면제해줄뿐만 아니라 조세도 군포도 온갖 가렴잡세도 탕감해줄것이오다. 왜놈들을 다 물리친 후에 공을 세운 사람은 공대로 평가할것이고 비겁하게 도망한자들, 왜놈의 손발노릇을 한자들은 죄에 따라 목을 칠놈은 목을 칠테니 그리 아시고 왜놈들과의 싸움에 떨쳐나섭시다.》

《옳소이다. 선비님의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어찌 피난만 하리오. 어찌 왜놈들을 족치지 못하리오.》

피난민중에 구레나릇이 보기 좋은 중로배 하나가 제꺽 호응해나섰다.

《암, 그렇구 말구. 그러자면 사람들을 이끄는 대장이 있어야 하리다.》

《벌써 저 선비님이 우리를 이끌지 않나베. 허허-》

《참말 그렇군. 하하…》

피난민들이 이렇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웃었다.

조헌도 그들과 함께 만족히 웃었다. 그는 옆에 앉아있는 구만석을 돌아보았다.

《보시오이다. 놈들과 싸울 사람들은 이렇게 많소이다. 래일도 모레도 이렇게 불러모으기도 하고 왜적을 치자는 격문도 사처에 내돌려 백성들을 결집시키면 의병대를 크게 무을수 있소이다. 그런데 군량미가 걱정이오이다. 지난번에 이야기된것처럼 300섬은 못떼준다 하더래도 100섬이라도 내놓아주기를 바라오이다.》

구만석은 그 말이 비위에 거슬리였다. 군량미도 군량미이지만 여기에 고을원이 시퍼렇게 앉아있는데 일개 선비에 지나지 않는 조헌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제 마음대로 의병을 뭇는다 하니 이게 바로 고을원을 우습게 여기는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군량미는 관찰사의 승인없이는 절대로 안되오이다. 어험.》

구만석은 조헌이 민심을 바로세우는것이 고마왔던 생각을 다 잊고 뻣뻣이 돌아갔다.

고을원 구만석이 떠나가자 사람들이 조헌의 앞으로 다가들었다.

《선비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오리까?》

사람들이 물으며 간절한 눈빛으로 조헌의 얼굴을 더듬었다.

《하하, 어떻게 하다니? 왜놈과 싸워야지. 동네사람들은 나와 한동네에 사니 아무때나 찾아와 의논해도 되오이다. 외지에서 피난해가던분들은 제 가고싶은데로 가되 나를 따를 사람이면 나와 함께 가십시다. 같이 가서 밥이든 죽이든 함께 먹고 그것도 떨어지면 초근목피도 함께 먹고 함께 자면서 왜놈들을 칠 병쟁기를 손에 잡고 익히도록 합시다. 창쓰기, 칼쓰기, 활쏘기를 수련해야 왜놈들을 당할게 아니오이까. 셋이 모이면 제갈량도 당한다고 했으니 서로 의논하면 식량도 생기고 힘도 지혜도 생기고 별의별 좋은 수가 나오리다. 우리 옥수동골이 깊은데 왜놈들이 쳐나와도 숨을 곳이 있으니 초막같은것을 짓고 살면서 왜놈들과 힘껏 싸워봅시다.》

《고맙소이다.》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듯 일제히 대답하였다. 그들은 대개 피난민들인데 모두 기뻐서 벙글벙글 웃었다.

이리하여 피난가던 사람들이 조헌을 따라갔다. 장정이 스물대여섯에 아낙네와 아이들이 열두엇이 되였다. 조헌이가 제일 기쁘고 반가운것은 이들중에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공인이 두 사람 있는것이였다.

다음날 옥수동골안에 자그마한 초막들이 일시에 솟아났는데 나무와 풀숲에 가리워 잘 보이지 않도록 지었다. 초막동네소임을 구레나릇 중로배에게 맡기였다.

조헌은 야장간에서 창과 칼을 부지런히 벼리도록 하고 한편으로는 중로배와 그의 아들이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활을 만들도록 하였다.

이미 완성된 창과 칼은 피난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피난민들이 자기들을 믿고 나누어준 병쟁기들을 받아안고 조헌에게 절을 꾸벅하였다. 믿음이 고마왔다. 그 인덕이 고마왔으며 그 인정이 고마왔다.

그날 저녁으로 완기는 제자들인 김질, 김약 등을 부르는 아버지의 편지를 가지고 공주로 떠났고 해동이는 금산에 사는 선비 정암수를 부르는 편지를 품고 급히 떠났다. 두 사람이 다 말을 타고 달리였다. 조헌은 의병의 기둥감들이 될 사람들을 불러와 의논하려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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