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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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탁은 혜산길에 오르면서 이번처럼 마음이 거뿐해보긴 처음이였다. 지금까지 꽁꽁 얼어붙었던 가슴이 눈석이를 맞아 확 풀리는것만 같았다. 그는 검은색사무용가방에서 흰종이에 싼 누르끄름한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는 닭알다루듯 봉투속에서 간부리력서 문건용지를 조심조심 꺼내여 펼쳤다. 이 문건용지는 김도만이 준것인데 외국대사관에 참사로 나가게 주선했으니 혜산에 갔다온 후 써서 가져오라고 한것이였다. 그러나 거기에 요즘 발이 저려들고 등골이 서느러워지는 나날을 보내고있는 김도만의 어떤 속심이 깔려있는지 황유탁은 모르고있었다.

얼마전 수령님께서는 당대표자회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당조직사상사업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한주일간에 걸쳐 도, 시, 군 및 공장당책임비서 협의회를 조직하시였다. 강습과 협의회를 함께 한 이 회의에서 수령님께서는 《당사업을 개선하며 당대표자회결정을 관철할데 대하여》라는 연설을 하시면서 당사상사업에서 나타나고있는 엄중한 결함들을 심각하게 비판하시였다.

《당선전교양사업이 형식적으로 진행되다보니 당대표자회문헌도 한번 토론하는것으로 그치고말았습니다. 당대표자회는 우리 당발전에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획기적사변이였으며 대표자회문헌은 당면하게 우리가 수행하여야 할 혁명과업을 내세운 아주 중요한 문헌입니다. 당대표자회문헌에는 현정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주어져있으며 그에 대처하여 우리가 취하여야 할 행동방향들이 다 밝혀져있습니다. 이 문헌을 우리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 철저히 침투시키기만 하면 수정주의도 들어올수 없고 대국주의도 들어올수 없으며 그 어떤 바람도 들어올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일군들은 당대표자회보고같은 력사적인 문헌도 한번 읽어보고는 다 아는것처럼 여기고있습니다.》

이어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을 한다고 하면서 케케묵은 봉건때 이야기나 들추어내는 《향토사》문제, 그 누구의 《생가》라는것을 꾸려주고있는 문제 등 당사상사업에서 묵과할수 없는 결함들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시였다.

김도만은 지금껏 자기의 지시를 시시콜콜 곰살궂게 집행해온 황유탁의 입에 자물쇠를 잠그기 위해서 해외로 던져버리는것이 합당한 처사라고 단정하였던것이다.

달리는 렬차의 차창을 내다보는 황유탁의 부처처럼 축 처진 볼로 웃음발이 흐물거렸다. 해외생활이라는 희한한 활무대가 펼쳐졌으니 인생말년은 부귀영화를 누릴것이 아닌가. 그러고보면 역시 큰 어른들을 업고 살아온 지난날이 목구멍에 단내가 오르듯 숨가쁘긴 했지만 자신의 인생행로가 옳았다는 자긍심이 그들먹이 차올랐다.

황유탁은 문건용지가 구겨질세라 정히 가방속에 넣고는 털이 삐죽이 나온 코구멍을 벌름거렸다.

(혜산행도 이번이 마지막이겠다, 이번 일만은 무사히 넘겨야겠는데)

황유탁은 오른손으로 귀방울을 만지작이며 제딴의 속궁냥을 접었다폈다했다. 혜산에 내려갈데 대한 과업을 주면서 김도만은 이번 일은 박비서가 수령님의 뜻에 따라 지시한 내용이라고 오금을 박았다.

수령님께서 직접 교시하셨습니까?》

황유탁의 물음에 김도만은 당내부사업인데 그쯤 알고있으라고 그루를 박았다.

이들은 권력으로는 도저히 인민의 지향과 념원을 꺾을수 없다는것을 알고 자기들의 야심을 기어이 실현하기 위해 이번에는 수령님의 뜻이라는것으로 인민들을 기만하려 했고 그것을 황유탁에게 못박았던것이다.

대기념비건설장에 도착한 황유탁은 득의양양해서 리석을 지휘부천막에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김도만의 지령을 마디마디 놓칠세라 되풀이하며 강조했다. 그것은 대기념비의 중심주인공으로 유격대의 일반지휘관을 형상하여 세우라는 지령이였다. 리석은 하늘땅이 뒤집혀지는듯한 너무도 황당한 궤변에 두주먹을 불끈 틀어쥐며 그렇게는 못한다고 격해서 웨쳤다.

순간 불어치는듯한 살기가 황유탁의 얼굴에 바람을 일구었다.

《허, 동무 지금 어따대고 주먹질이요, 엉? 수령님은 빨찌산때나 지금이나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고계시오. 자신을 내세우는 일은 절대 불허하신단 말이요, 절대불허!

때문에 붉은기앞에 홰불을 높이 추켜든 일반유격대지휘관을 형상해서…》

리석의 눈에서 고압전류의 방전과도 같은 불꽃이 번뜩이였다.

그는 황유탁을 지릅떠보며 내쏘았다.

《안됩니다!》

리석의 단호한 웨침에 황유탁은 와들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뒤걸음쳤다.

《안돼? 왜?》

《우린 인민의 지향과 신념을 담은 탑을 건립하겠습니다!》

황유탁의 앙밭은 목덜미가 홍당무우처럼 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어금이를 앙다문 관자노리가 꿈틀거렸다.

《여! 이건 내 말이 아니라 수령님을 가까이 모시고 일해오는 박비서동지의 지시란 말이요, 알겠소? 수령님의 동상은 이미 보천보전적지에 모셨기때문에 혜산기념비에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석이 날카롭게 잘라버렸다.

《누가 지시하든 그렇게는 못합니다.》

《엉? 당신 모가지가 몇개야? 어따대구 감히!》

리석이 지금껏 자제하고있던 인내의 동뚝이 삽시에 무너져내렸다. 그는 황유탁의 뺨을 후려치듯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려쳤다.

《위협하지 마시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안됩니다, 절대로!》

지금껏 생활에서 셋까지 세던 내심적인 인간 리석, 어찌보면 량순하고 어리무던한 토끼와도 같던 리석이 언제 길길이 뛰는 호랑이로 변했는가?

황유탁의 가느스름히 좁혀진 눈속에서 의미심장하게 야릇한 불꽃이 튕겼다. 금시 입밖으로 튀여나올듯한 노성을 목구멍으로 꿀꺽하며 창문쪽으로 둬발자국 옮겼다. 생나무꺾듯 해서는 안되겠다는 위구심에서였다. 황유탁은 애써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한수 늦추었다.

《이봐, 위협이 아니라 그러다 혹시 수령님께 심려를 끼쳐드리면 그 후환이 어디로 올것같애? 바로 조각가인 동무한테 불덩어리가 떨어진단 말이요. 내 이 말만은 당내부문제이기에 안하자고 했는데 이 문젠 박비서동지가 수령님께 보고드려 결론을 받은 알겠나?》

이때 여기로 신인하가 들어섰다. 황유탁은 마침이라고 생각하며 신인하에게 리석의 《오만무례》한 행동을 꼬아바치면서 김도만의 지령을 주어섬겼다.

《글쎄 부부장동지도 다 알고있겠지만 김도만부장동지는 한평생 인민을 위해 마음쓰시는 수령님이시길래 대기념비에도 유격대의 일반지휘관을 형상하라고 했는데 이 량반은…》

열이 나서 손을 흔들던 황유탁이 딱 굳어졌다. 신인하의 서슬푸른 눈빛이 자기의 온몸에 창살처럼 날아들지 않는가!

《청맹과니!》

철추로 내리치는것같은 음성에 황유탁은 기절초풍하여 얼음덩이처럼 굳어졌다. 선전선동부 부부장이니 응당 김도만과 그의 지시를 집행하는 자기를 편역들줄 알았던것이다.

《권력에 아부굴종하는 앵무새가 되여 소위 인민이라는 보자기를 흔들어대?

똑똑히 알아두라! 지구가 열백번 변한다 해도 조선혁명의 뿌리인 백두의 전통은 억척불변이야!》

황유탁은 불맞은 들소처럼 와들짝하며 두어걸음 뒤걸음쳤다.

신인하는 드센 불소나기를 퍼부었다.

《력사에 길이 빛날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에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정중히 모시려는것은 인민의 절절한 념원이구 소원이요! 우리 인민의 이 절대불변의 신념이 설사 지구가 깨여진다 한들 흔들릴것같은가?》

황유탁은 망연자실하여 허둥거렸다. 도대체 신인하가 김도만부장밑에 있는 부부장이 옳긴 옳은가? 김도만부장이 박비서의 지시를 받고 한 결론인데 부부장이 뭐길래 청맹과니요, 앵무새요 하며 길길이 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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