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0 회)

제 5 장

4

 

김정일동지께서는 파란 뚜껑의 수첩을 펼쳐드시고 집무실창가에 굳어진듯 서계시였다. 그것은 희생된 차성준의 품속에 간직되여있던 수첩이였다.

(차성준이가 그렇게 가다니.)

현실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아니, 천백번도 믿지 않으시려는듯 다시 수첩장에 눈길을 주시였다.

그 수첩장에는 그이께서 중학시절에 쓰신 시 《우정에 대한 생각》이 적혀있었다. 차성준이 예술영화촬영소에서 그이께 삼가 인사를 올리고 떠나온 그밤 허담은 《따로 둔 심장이 없는 사람》은 그이께서 고중시절에 쓰신 시 《우정에 대한 생각》의 한구절이라고 알려주었다. 차성준은 그이께서 쓰신 시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투쟁하겠다고 하면서 수첩에 한자, 한자 써가지고 조국을 떠났었다.

몸은 비록 낱낱으로 되였어도 심장은 하나인 동지가 되자고 하신 김정일동지의 믿음을 지켜 이국땅에서 생을 마친 전사.

창밖을 응시하시는 그이의 안광에 차성준의 얼굴이 금시런듯 떠올랐다. 삼복리의 내가에서 밤골의 두 아이를 위해 물참봉이 되여 달려오던 차성준, 중학시절에 항일투사 오진우동지와 함께 소나무를 심고 정성스레 가꾸었다는 차성준. 그의 모습이 이번엔 차성희의 망울터친 밝은 얼굴로 엇바뀌여 나타났다. 오빠를 그리도 사랑하던 그 얼굴에 비낄 그늘을 생각하니 목이 확확 달아오르셨다.

출입문가에 선 허담도 덜어드릴수 없는 그이의 아픔을 두고 괴로움에 터갈라진 입술만 감빨고있었다.

이때 문기척소리가 나며 오진우가 들어섰다. 오진우는 창가에 서계시는 김정일동지며 고개를 수굿한채 한숨만 터치는 허담에게 눈길을 돌리다가 방안의 무거운 정적에 굳어졌다.

《왜 오셨습니까? 찾아가려고 청사에 계시는지 전화로 알아보았는데…》

《직일관이 전화를 걸어오셨다고 알리길래 무슨 일인지 오금이 근질거려 견딜수 있어야지요. 그래서 부랴부랴 왔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사색에 잠기셨다가 오늘 밤 함께 갈 곳이 있어서 그러는데 시간을 낼수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오진우가 어딘지 어서 가시자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오진우의 등을 미시며 출입문을 여시였다.

당중앙위원회를 떠난 승용차는 고요에 잠긴 수도의 거리들을 빠져 달렸다.

오진우는 허담에게 어디로 가는가고 귀속말로 물었다. 허담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자기도 모른다고 목소리를 죽여 뇌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도 자신이 지금 어디로 무엇때문에 차를 몰고가시는지 모르시였다. 오직 그이의 안광에 비껴드는것은 어질고 순박해보이는 차성준의 모습뿐이였다. 30대의 꽃나이…

이제 가정도 이루고 아들딸의 손목을 이끌며 청춘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게 될 사랑하는 외교일군, 따로 둔 심장이 없는 동지, 전우가 되여 한생을 함께 가리라 마음 굳히셨던 차성준. 그가 하많은 꿈을 남기고 떠난것이 너무도 절통하게 가슴을 허비였다.

그이께서는 차성준을 두고 꿈이 많으시였다. 이제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면 차성희를 불러 두 오누이를 휴양보낼 생각도 하시였고 가슴에 따로 둔 심장이 없는 마음씨 고운 배필을 고르시여 그들의 결혼식상도 차려주리라 생각하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시니 차성준을 품에 안으시고 사진 한장 찍어주지 못하신것도 가슴이 저리도록 후회되시였다. 예술영화촬영소에서 적후나 다름없는 곳으로 보내면서 왜 사진 한장 찍어주지 못했던가? 돌아오면 기쁨속에 만나고 차성희까지 평양에 불러 그들오누이를 량팔에 끼고 사진찍어주실 생각만 하셨던것이 지울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 괴롭기 그지없으시였다.

승용차는 나라의 동서를 가로지른 중부산악지대의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달렸는지 시창앞으로 점점 확대되여 륜곽을 드러내는 건물이 나타났다. 승용차의 불빛에 건물의 정문에 새겨진 현판이 확 안겨왔다.

《삼복중학교》.

승용차가 학교마당에 들어서자 그이께서는 제동기를 밟으시며 차를 세우시였다.

차에서 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전지불을 켜드시고 학교운동장옆으로 걸으시였다. 운동장둘레로는 갖가지 종의 나무들이 종대를 지은듯 빼곡이 서있었다. 그이께서는 전지불로 나무들을 비치시며 걸음을 옮기시다가 멈춰서시였다. 전지불빛에 나무가지에 매달린 명찰표가 나타났다. 그이께서는 거기에 씌여진 글을 보시였다.

 

품명: 소나무

식수자: 차성준

 

김정일동지께서는 굵은 아지를 뻗고 푸른 잎 설레이는 소나무를 오래도록 바라보시다가 천천히 나무주위를 도시며 오진우를 일별하시였다.

《오진우동지가 이 소나무를 함께 심었다면서요?》

미간에 주름발을 세우며 생각을 톺던 오진우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생각납니다. 련합부대들의 산악극복기동훈련중에 여기를 지나면서 이 학교에 와서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때 심은 나무가 이렇게 컸는가?!》

《나무도 컸지만 오진우동지와 함께 이 나무를 심은 차성준은 우리 당의 미더운 외교일군으로 자기 생을 빛나게 장식했습니다.》

낮으나 저력이 실린 말씀에 오진우는 숭엄한 빛발이 번뜩이는 그이를 우러렀다.

《외무성 과장 차성준동무는 항일투사 오진우동지가 이 나무를 함께 심으며 빨찌산들은 한그루의 나무를 두고도 조국을 그리며 왜놈들과 싸웠다고 한 이야기를 늘 마음속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이께서는 바로 그 차성준이가 투사들의 넋을 이어 외교전선에서 장렬하게 희생되였다고 갈리신 음성으로 뇌이시였다. 오진우는 자기는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 학생을 외교전선의 참된 전사로 키우신 그이의 정에 뜨거운 격정을 금치 못하며 소나무가지를 쥐였다.

《차성준동무는 혁명학원에서 자란 투사의 자식도 아니고 이 나라의 평범한 농민의 아들입니다. 하지만 오진우동지가 어린 그의 마음속에 애국의 씨앗을 묻어주었기에 그는 백두의 혈통을 지켜 오늘처럼 영웅적으로 희생되였다고 생각합니다. 투사동지들이 있어, 투사동지들이 심어준 그 애국의 씨앗이 뿌리내려 조국땅 방방곡곡에서 혁명의 피줄기를 이을 계승자들이 수풀처럼 자라고있습니다. 차성준, 그 동무는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사상과 불멸의 업적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한 투쟁에서 한목숨 서슴없이 바친 투사입니다. 이제라도 그에게 무엇인가 우리가 해줄것이 없겠습니까?》

《옳습니다. 오늘같은 평화시기에 그는 적의 화구를 막은것 못지 않은 영웅적장거를 발휘했습니다.》

오진우는 허담에게로 돌아서며 저으기 흥분되여 뇌였다.

《부상동무, 외무성에서 그를 영웅으로 내신하는게 어떻소? 나도 상임위원회에 제기하겠소.》

《알겠습니다. 성당위원회에 제기하겠습니다.》 …

얼마후 삼복중학교에서는 전 외무성 과장 차성준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는 행사가 숭엄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였다.

차성희는 오빠와 함께 꿈많은 래일을 그리며 행복속에 드나들던 모교의 정문으로 들어섰다. 학창시절에는 무심히 오가던 학교정문, 사회에 나와서도 무심히 스치군 했던 그 교정. 하지만 오늘은 샘솟듯하는 추억의 갈피를 펼치며 한걸음, 한걸음을 깊은 감회속에 옮겼다. 그의 손에는 오빠가 최후결전의 길로 나가며 남긴 파란 뚜껑의 수첩이 쥐여져있었다.

삼복중학교의 강당에서는 차성준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는 모임이 진행되였다. 모임에는 차성준이와 함께 나무를 심었던 항일투사 오진우와 허담 그러고 차성희와 리만길, 학교의 교직원들과 학생들, 군의 일군들이 참가하였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랑독된 다음 공화국영웅 차성준에게 수여하는 영웅증서와 메달이 차성희에게 수여되였다. 금빛으로 빛나는 영웅메달을 가슴에 단 차성희는 목메여 흐느끼며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우러러 삼가 큰절을 올리였다. 눈물로 범벅진 차성희를 보며 삼복중학교의 전체 교직원, 학생들은 격정의 눈물을 쏟았다.

(오빠, 김정일동지께서 오빠를 영웅으로 내세워 모교로 보내주셨어요. 오빠, 들어요? 오빠가 영웅이 되였단 말이예요, 영웅이!)

김정일동지의 하늘같은 믿음과 사랑속에 이름없던 산촌의 자그마한 중학교에서 첫 영웅이 나왔다. 영웅메달을 가슴에 단 차성희를 앞세우고 오진우며 허담 그리고 학교교원들과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나왔다.

그들은 차성준이가 심은 소나무앞에서 영웅을 추억하며 그처럼 어버이수령님과 조국을 위하여 빛나는 삶의 자욱을 남길 맹세모임을 가지였다. 차성희는 푸르싱싱히 아지를 뻗고 키높이 솟은 소나무를 눈물겹게 바라보았다. 그 소나무는 모교로 돌아온 오빠의 미더운 모습이였다.

소나무앞에서 차성희와 함께 학교선생들과 리만길 그리고 학생들이 사진을 찍었다. 허담은 오진우와 차성희를 소나무앞에 세우고 가방속에서 사진기를 꺼냈다. 그 사진기는 허담이 평양을 떠날 때 김정일동지께서 주신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영웅칭호수여식이 끝난 후 차성준이 심은 소나무앞에서 차성희가 오진우와 함께 사진을 찍도록 하라고 당부하셨던것이다. 그러시면서 그 사진을 자신께서도 한장 간수하시겠다고, 차성준이가 그리울 때면 그 사진을 보며 차성준이와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하시였다.

차성희를 오빠의 뒤를 이어 항일의 넋을 꿋꿋이 이어가게 해주시려고 손수 사진기까지 주신 김정일동지의 숭고한 뜻을 심장에 새기며 렌즈의 초점을 맞추는 허담의 눈은 뽀얀 안개가 서린듯 흐려와 몇번이고 손수건으로 눈굽을 훔친 후에야 사진기의 샤타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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