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 회)

제 5 장

1

 

허담을 단장으로 하는 우리 나라 대표단은 동유럽나라들과 쏘련을 순방한 다음 이해가 다 지나가는 12월에는 중국에 도착하였다.

다음날 대표단은 지방참관을 위하여 상해로 떠나게 되여있었는데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였다. 아침일찍 중국외교부에서 통보해온데 의하면 주은래총리가 우리 나라 대표단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내겠다고 했다는것이다.

대사관에 체류하고있던 허담은 대사를 비롯한 대사관일군들과 면담문제를 놓고 토론하였다. 외교관례상 한 나라의 정부수반인 총리가 고위급대표단이 아니고 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접견하는 일은 드물었다. 더우기 자기들은 특별사절의 임무를 띠고 온 대표단이 아니라 정기적인 순방대표단이였던것이다.

허담은 이것이 바로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 우리 수령님께서 지니신 권위라고 생각하였다. 그 권위로 붉은 화강석도 기념비건립에 필요한 량보다 훨씬 많이 조국에 보낼수 있었다.

중남해의 국무원총리관저로 승용차를 달리며 그는 수령님과 중국지도자들사이에 맺어진 특별한 친분관계를 다시금 숙연하게 되새겨보지 않을수 없었다.

예견했던바그대로 주은래총리는 수령님의 안부부터 묻고 건강하시다는 대답에 몹시 기뻐하였다.

《몇년전에 우리는 큰 수술을 받으신 김일성동지의 병문안을 갔댔는데 김일성동지께서 건강하시다니 정말 기쁨니다.》

자리에 앉으면서 주총리는 직방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 조선에서는 김일성동지께서 력사의 총성을 울리신 보천보전투승리를 기념한 대기념비를 건립한다지요?》

《혜산시에 건립합니다.》

《우리 외교부를 통해서 나도 들었습니다. 헌데 단장동지, 내 오늘 좀 노여웠던 얘길 하랍니까?》

허담은 순간 긴장되였다. 흔히 생활에서 부모형제간이나 동무들사이에 노여운 일은 있을수 있는 자연스러운것이지만 한 나라의 총리가 다른 나라의 외교대표단앞에서 노여움을 표시하는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더우기 위대한 수령님과 오랜 친분관계에 있는 주은래가 조선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기뻤던 추억도 아니고 《노여웠던 일》을 거론하려드니 외교에서는 림기응변의 능수인 허담으로서도 불안하기까지 했다.

주은래는 고개를 젖혀 한동안 천정의 무리등에 눈길을 박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허담을 곧추 바라보며 말을 뗐다.

《우리가 이전에 조선외무성에 김일성동지께서 길림육문중학교에서 혁명활동을 하시던 때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댔는데 왜 보내주지 않았습니까?》

주은래의 말은 허담에게 있어서 금시초문의 일이였다.

수령님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 처음 듣습니다.》

허담의 놀란 모습에서 뭔가 가늠한듯 주은래는 손을 내저으며 방금전과는 달리 호탕하게 웃었다.

《아, 그랬댔군요. 그러니 부상동지도 우리가 저 동북 길림에 김일성동지의 동상을 어떻게 모셨는지 모르고있구만요.》

《?!》

《우리 중국엔 다른 나라 국가수반의 동상이 없습니다. 한때 맑스나 레닌의 동상을 세우자는 의견도 제기됐지만 모주석은 중국혁명에 거대한 공헌을 하신 김일성동지의 동상을 모셔야 한다고 하면서 그 중대사를 나에게 위임했댔습니다.》

그때 중국당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그이께서 혁명활동을 하신 길림육문중학교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학교마당에는 항일의 군복차림을 하신 수령님의 동상을 모시며 그이께서 공부하신 교실은 그이의 존함을 모신 독서기념실로 명명하고 당시 학생복차림의 반신상을 모시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자기 나라 외교부에 과업을 주어 수령님의 길림시절사진을 요구했는데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수령님께서 불허하시여 종시 보내주지 못하였다.

주은래는 길림육문중학교시절 위대한 수령님과 연고관계가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학생시절모습의 반신상을 형상하도록 했다.

《수카르노대통령을 만났을 때 그는 중국에서는 김일성동지의 동상을 모셔드렸고 쏘련의 쓰딸린은 승용차를 선물했었는데 자기도 이 세상 화초사에 아직 위인을 칭송하는 꽃이 없다는것을 알고 김일성화를 선물로 드렸다고 했습니다.》

김일성화에 대해서는 지난해 수령님의 인도네시아방문을 수행하였던 허담도 잘 알고있었다. 수카르노는 그뿐 아니라 인도네시아방문기간에 수령님께서 탄생일을 맞으시게 되자 아침일찍 자기 나라 정부관리들을 대동하고 숙소로 찾아와 인도네시아의 전설에 나오는 《가루다》라는 새(독수리의 일종)우에 장수가 앉은 조각상을 올리며 삼가 말씀올렸다.

《가루다우에 올라앉은 장수는 김일성수상각하이십니다.》

허담은 쟈까르따에서 있었던 충격적인 일들을 추억하며 말했다.

《우리 수령님에 대한 수카르노대통령의 정은 정말 지극했습니다. 사실 그 꽃은 인도네시아의 식물학자가 수십년간 연구하여 육종한 진귀한 명화인데 대통령은 꽃의 이름을 두고 오래동안 생각하다가 김일성화로 명명하여 올렸습니다.》

김일성, 그 꽃은 김일성동지의 존함을 모셨기에 명화로 될수 있었습니다.》

주은래가 진정을 담아 다정히 정정하여 하는 말에 허담도 감개하여 긴장되였던 마음이 다소 풀렸다. 주은래총리가 굳이 바쁜 시간을 내여 론의하겠다고 했던 문제가 길림육문중학교에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모시면서 있었던 《노여웠던 일》이고보니 담화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였던것이다.

허담은 주은래총리에게 바쁜 시간을 내여 대표단을 만나준데 대하여 사의를 표했다. 주은래총리는 손을 저으며 입가에 미소를 피워올렸다.

《바쁜 사람일수록 여가시간은 있는 법입니다.》

주은래는 탁우에 놓인 두툼한 서류묶음을 들었다.

《단장동지, 이제 할 말이 기본인데 내 또 노여운 얘길 할가요?》

방금 《노여웠던 일》을 이야기하며 웃던 주은래가 이번엔 아직도 풀리지 않고있는 《노여운 얘기》를 화제에 올리니 허담은 다시 긴장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주은래가 바쁜 시간을 내여 만나겠다고 한것이 바로 이제 이야기할 문제때문이였다는것을 직감했다.

주은래는 앞탁우에 놓인 타자지묶음을 들어보였다.

《이게 뭔지 압니까? 존경하는 김일성동지의 저서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입니다. 아직 그 어느 나라에서도 내놓지 못한 농촌테제를 김일성동지께서 처음으로 내놓으셨길래 우리 서기실에 과업을 주어 번역해서 보고있는데 귀국에서는 왜 이렇듯 훌륭한 로작을 번역출판하여 세계에 대고 선전하지 않습니까?

물론 김일성동지는 겸허하신분이니까 만류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조선동지들이 그렇게 하면 안되지요.

우리가 연안에서 항일전쟁을 할 때 동북항일련군과 직접적인 련계는 맺지 못했지만 그때 벌써 신비로운 항일영웅 김일성장군은 10대의 소년시절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이라는 웅대한 포부를 가진 조직을 무으신적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특히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팔로군에 있던 조선인지휘관들을 열광시켰습니다.

김일성동지의 로작들은 그 심오한 철학성과 보편성, 진리성으로 하여 세계 많은 나라 인민들을 고무해주고있습니다.》

《훌륭한 말씀을 해주어 대단히 고맙습니다. 총리동지의 고마운 의견을 조국에 알려 우리 수령님의 로작들을 많이 번역출판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은래총리는 밝게 웃으며 꼭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의미심장하게 그루를 박았다.

《조선동지들의 결함은 자랑할줄 모르는것입니다. 조선동지들은 김일성동지를 자랑해야 합니다.》

대사관으로 돌아온 허담은 밤이 깊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별빛이 내려앉은 대사관정원을 거닐었다.

주은래총리가 자체로 수령님의 로작을 번역하여 자자구구 학습하고있는데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번역출판할 생각을 못하고있었으니 외교일군으로서 큰 실책을 범했다는 자책이 가슴을 저미였다. 눈앞에는 김정일동지께서 쥐고 보시던 부평초가 떠올랐다. 사색형인 허담에게 있어서 부평초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풀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 깊은 의미를 부여하시여 부평초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한 허담은 그때로부터 자기식의 론리를 세우며 이 개구리밥풀을 음미하고 또 음미했다. 그럴수록 자기 인생의 빈구석에서 부평초가 자라고있지 않는가 하는 위구심마저 은연중 엄습했다. 더구나 주은래총리와의 면담에서 받은 충격은 너무도 강렬했기에 또 부평초를 떠올리게 되였으며 그만큼 자책의 파도가 세차게 휘뿌려짐을 페부로 감수했다.

인기척소리가 나서 앞을 보니 대사가 다가오고있었다.

《부상동지, 밤도 깊었는데 왜 쉬지 않습니까?》

《주은래총리가 번역하여 보던 수령님의 로작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부상동지, 저도 대사로서 일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역시 대사도 주은래총리와의 면담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은것같았다.

《늦잡을수 없습니다. 외무성에 련락하여 수령님의 로작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번역출판합시다.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들도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조국에 보낼 전문을 준비하겠습니다.》

이국의 밤하늘에 사연깊은 전파가 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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