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 회)

제 4 장

11

 

이른아침 쑤다에브는 낚시대를 들고 바다가에 나갔다.

그동안 보천보와 백두산답사를 마치고 삼복리에 가서 차성희까지 만나보고 온 쑤다에브는 력사적인 당대표자회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보고 《현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이 게재된 《로동신문》을 받아안고는 두문불출하고 방에만 박혀있었다.

그는 낮이나 밤이나 방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불후의 고전적로작을 탐독했다. 또 만경대혁명학원이며 보천보혁명전적지와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건설장, 혁명의 성산 백두산답사로정을 감회깊이 추억하였다. 동방의 나라 조선에도 《뽐뻬이의 마지막날》 같은것이 오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는 말끔히 가셔졌다.

두달전 우리 당보에 실린 론설 《자주성을 옹호하자》를 읽으며 자기나라 혁명이 걸어온 길과 조선혁명이 걸어온 길을 대비하여 분석해보면서 혁명위업에서 주체에 대하여 뼈저리게 절감한 그였다.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하신 보고를 자자구구 탐독하며 주체를 고수하여온 조선혁명의 력사적로정에 대한 당당한 자부심과 함께 혁명위업의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충만된 철의 론리에 완전히 매혹되였다.

지금 낚시대는 드리웠어도 머리속에는 몰로또브의 말이 맴돌고있었다.

《문제는 령도의 대가 어떻게 바뀌는가 하는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나의 두눈도 함께 가지고가서 잘 보고 오기를 바랍니다.》

두달이 넘게 있은 조선체류일정이 끝나가고있는 지금 그는 림춘추에게 어떻게 말하면 김정일동지를 만나뵈올수 있을가 하고 궁리하는중이였다. 조선로동당대표자회까지 목격하고 갈수 있게 해달라고 청탁했을 때 난감한 기색을 짓던 림춘추가 평양에 갔다오더니 외무성에서 그렇게 하도록 하였다고 알려줄 때 쑤다에브는 예민한 감각으로 그것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이라는 직분으로 외무성과 토론한것이 아니라는것을 알아챘다. 분명 《우리의 젊은 동지》라고 표현하군 하는 김정일동지와 토론하고 온것이 분명했다.

보천보에서 만난 로인이 10년전 10대의 학생으로서 김일성동지의 빨찌산전구를 답사하던 그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도 그랬고 삼복리라는 산골에 가서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배낭에 메고오신 이야기를 듣고 두명의 어린 학생들을 위해서 놓은 다리를 볼 때에도 그랬는데 이번에 김일성동지의 당대표자회보고를 받아안자 아직 한번도 뵈온적이 없는 김정일동지에 대한 매혹은 그의 마음속에서 용암처럼 끓어번지였다.

흰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바다가의 바위우에 올라앉은 쑤다에브는 저 멀리 수평선을 이름할길 없는 착잡한 심정에 싸여 응시했다. 갈매기들이 나래를 퍼덕이며 원을 지어 날아예는 모습은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한폭의 명화를 방불케 했다.

문득 쑤다에브는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해안가에서도 흔히 보아왔던 갈매기들인데 왜 조선에서의 감정은 류다른것일가 하고 스스로 자문하였다. 자연이 인류에게 선사한 4계절의 천변만화그것에 대한 인간의 감수는 제도에 따라 각이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부지중 뇌리를 쳤다. 사회주의붉은기가 변색을 모르고 휘날리던 그 나날 자기 나라의 장미계곡은 절경의 극치와도 같이 아름답고 소중하였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는 그 절경에 대한 애착은 해빛을 잃은 그림자처럼 가뭇없이 사라졌다. 드넓은 그 대지에 슴배인 붉은피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점점 희석되여가고있기때문이였다.

혁명에 피를 바친 사람만이 그 피의 귀중함을 안다. 피를 흘려보지 못한 후대들에게서 그 피의 소중함은 시간의 흐름속에 사라질 망각이 아닌가. 이것은 인류력사의 부인할수 없는 법칙이라고 쑤다에브는 괴롭게 자인했었다. 하다면 어찌하여 이 나라에서는 인류력사의 법칙이 산산이 부서지고있는것이냐.

끝없이 꼬리를 무는 생각에 빠져 너럭바위에 조각처럼 굳어져있는데 수수한 검은색 닫긴깃양복차림의 김정일동지께서 조용히 다가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쑤다에브의 옆에 서시여 물면우에 뜬 깜부기를 이윽히 보시였다. 끝간데없이 펼쳐진 드넓은 바다기슭에서 말동무도 없이 모지름쓰고있던 쑤다에브는 그만 낚시질에 흥심을 잃고 그이께 손에 쥐였던 낚시대를 내밀었다.

《낚시에 취미가 있는듯싶은데 한번 해보시오.》

그이께서는 정어린 눈매로 쑤다에브를 이윽히 보시였다.

《아, 내가 조선말을 하는게 놀라운게구만. 내 동양사람들과 피부색도 다르고 생김새 역시 손바닥과 손등처럼 다르지만 젊은이와 다를바없는 조선사람 쑤다에브요.》

그 말을 잠시 음미해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눈빛을 빛내이시며 반문하시였다.

《그렇습니까? 그러니 선생님은…》

쑤다에브가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선생은 무슨 선생이겠소. 그저 덧없이 나이만 먹었을뿐이요.》

김정일동지의 밝은 존안에서는 류다른 빛이 뿜어져나오며 눈부신 광채가 일었다.

《나는 선생님의 그 백발과 가슴에 빛나는 적기훈장에 대한 존경심에서 그렇게 불렀습니다.》

순간 쑤다에브는 오랜만에 잔주름이 서린 입가녁으로 웃음을 떠올렸다.

《아, 이 적기훈장을 알아보는구만! 허나 조선빨찌산투사들처럼 그렇게 존경할만한 공은 못세웠소. 좌우간 반갑소, 친구!》

쑤다에브는 이렇게 말하다가 금시 정색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만, 이거 내 실수한것같다?…》

《왜 말입니까?》

《실례했소, 친구라고 불러서. …》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왼손을 들어 저으시였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난 선생님을 선배로, 동지로 부르고싶은데요.》

그이께서는 먼 수평선을 바라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인간이 세상에 태여나 후대들의 추억속에 산다는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해 참되게 산 인생은 국적을 막론하고 후대들의 존경을 받지요.》

쑤다에브는 온넋과 육신을 깡그리 빨아들이는 거대한 자기마당속에 들어선것같은 격정에 자기라는 존재를 잊어버리고 바위에서 일어나 그이곁으로 내려섰다.

《나는 자기 조국을 위해 히틀러도당과 피흘려싸운 사람이요, 헌데 그 피가… 거 뭐랄가? 점점 물이 된다고 할가? 내가 사는 나라에선… 그런데 조선에선 김일성동지께서 이룩하신 업적과 전통이 억척으로 꿋꿋이 이어지고있단 말이요. 조선의 새세대는 자기들을 위하여 피흘려 싸운 선배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는데, 참 젊은이도 그분에 대해 들었겠지? 김정일동지에 대한 소문말이요.》

뜻밖에도 자신의 존함이 나오자 그이께서는 두팔을 가슴에 모두어 얹으시고 바위옆을 도시였다.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그건 좀 섭섭하구만. 이 나라에 온지 얼마 안되는 나도 다 들었는데… 난 그분한테 매혹되였소.》

그리고는 큰 비밀이라도 이야기하는것처럼 목소리를 낮추었다.

《들어보겠소? 저기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인 조선항일투사의 별장인데 그 로혁명가도 김정일이라는분을 우리의 젊은 동지라고 부르면서 존경한단말이요. 어떤분인지 한번 만나보고싶은데… 조선에서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첫문을 여는 사람한테 복이 들어온다지? 그래서 내 한달째나 이렇게 일찍 일어나군 한다오.》

《하하하… 저기는 별장이 아니라 우리 인민들이 항일투사들을 존경하여 마련해드린 료양소입니다. 요즘 림춘추동지가 글을 쓰러 와계시는건 사실입니다.》

그이께서는 주머니에서 담배와 성냥을 꺼내여 쑤다에브에게 권하시였다.

《선생님은 방금 제2차 세계대전에서 선생님들의 세대가 흘린 피에 대하여 이야기하셨는데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고귀한 희생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희생으로 선생님세대의 임무는 끝난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간악한 원쑤들로부터 조국을 지킨 희생도 귀중하지만 그 피의 력사를 후대들의 심장에 새겨주고 그들이 선렬들의 피자욱을 지키도록 하는것은 히틀러도당과의 격전보다 더 어렵고 준엄한 투쟁입니다.》

바다기슭으로는 잔파도들이 밀려오고 밀려갔다.

하지만 쑤다에브의 심장속에선 잔파도가 아닌 세찬 격랑이 솟구치고있었다.

《지금 수정주의자들은 선대수령들이 이룩한 혁명전통을 거세말살하고있습니다. 가렬한 포화속에서 목숨바쳐 지킨 붉은기가 총포성없는 전쟁에서 변색되고있습니다. 때문에 사회주의붉은기를 지키는 지지점그것은 혁명의 고귀한 전통을 세기와 세기를 이어 옹호하고 고수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쑤다에브의 심장이 쩡 달아올라 저도 모르게 그이의 두손을 와락 잡았다.

《젊은인 뉘시오?》

그이의 안광에 자애깊은 미소가 흘러넘쳤다.

《저야 선생님의 친구가 아닙니까? 그저 혁명선배들을 존경하는 조선의 새세대입니다.》

그이께서는 쑤다에브의 손목을 허물없이 잡으시고 백사장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쑤다에브는 높뛰는 심장의 박동을 가까스로 눅잦히며 그이께서 하시는 말씀들을 깊은 사색에 잠겨 음미했다.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수행에서의 계승성, 계승에서의 생명은 순결성, 순결성을 고수하는데서 참전자들의 시대적사명과 의무…

그이께서는 쑤다에브에게 조선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길 바란다고 하시며 간고한 시련을 체험하지 못한 후대들을 위해서 좋은 글도 써내고 건강을 잘 돌보라고 당부하시고 떠나시였다.

그이를 바래우고난 쑤다에브는 성함과 주소를 묻지 못한것이 못내 후회되였다.

(참 마음이 끌리는 젊은이로군, 순결하고 청신한.)

머리속에서 몰로또브의 말이 또다시 울렸다.

《우리 나이, 우리 처지에서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자기가 걸어온 길과 해놓은 일들이 후대들의 존경을 받는 그런 미래.

당신은 그것을 찾아 머나먼 동방행을 하려고 합니다. 옳습니까?》

(그래, 확실히 조선에는 그 미래가 있어, 그 미래가―)

점도록 낚시대를 드리우고앉아 시색에 잠겼다가 림춘추의 방으로 들어가니 림춘추가 기다리고있었던듯 반갑게 맞이했다.

《쑤다에브선생, 조선속담이 그른데 없지요? 요즘 새벽에 일찌기 일어나서 첫문을 열군 하니 큰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쑤다에브는 얼떠름해서 희색이 어린 림춘추를 마주보았다.

《무슨 복 말입니까?》

림춘추는 의아해졌다.

《방금 우리의 영명하신 김정일동지를 만나지 않았습니까?》

《뭐라구요? 그분이 김정일동지?!》

쑤다에브는 한동안 굳어졌다가 졸지에 오금을 꺾고 재빛쏘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림춘추는 김정일동지께서 쑤다에브에게 보내시는 선물지함을 내놓았다. 그이께서는 체류일정이 끝나 곧 귀국하게 될 쑤다에브에게 여러가지 보약을 보내주시였다.

쑤다에브는 눈귀로 슴배여올라오는 눈물을 훔치며 양복안주머니에서 종이장을 꺼냈다.

《이게 뭔지 압니까? 우리 아들녀석이 미국무성과 짝짝꿍하여 나에게 보낸 담보서입니다. 이 쑤다에브가 망명하면 미국시민권을 주겠다는… 나는 이 담보서를 받고 네거리에 서있다가 조선으로 왔습니다.》

쑤다에브는 미국무성이 보낸 담보서를 구겨서 재털이에 놓더니 성냥을 드윽 그어 불을 달았다. 담보서가 불길에 타더니 재가 되였다.

《림선생 아니, 림동지, 고맙습니다.

내 평생토록 조선을 잊지 않겠습니다. 김정일동지를 모시여 조선의 사회주의는 미래가 휘황합니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싱그러운 바다바람이 쑤다에브의 백발을 날리며 불어왔다. 쑤다에브는 격정에 넘쳐 자기의 진심을 토로했다.

《난 조선에 와서 사회주의위업의 영원성을 확신했습니다. 그 위대한 진리를 나의 심장속에 신념으로 심어주신분은 바로 존경하는 김정일동지이십니다. 나는 반파쑈항전참전자로서 나의 조국에서 그날의 붉은기를 지켜싸우겠습니다.

조선동지들이 부럽습니다. 당신들은 김일성동지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내여나갈 위대한 계승인을 모시고있습니다!》

다음날 쑤다에브는 귀국의 길에 올랐다. 비행장에서 그는 림춘추의 손을 꼭 잡았다.

《사회주의조선은 내 마음속의 조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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