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 회)

제 4 장

9

 

영화촬영소에서 부서에 도착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금방 세포에서 당원협의회가 있었다는것을 아시고 세포위원장을 찾아가시였다.

《무슨 협의회인데 나한테는 알리지 않았습니까?》

세포위원장은 난색을 지으며 갑자기 제기된 협의회여서 미처 알리지 못하고 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럼 안건과 저에게 분공된 과업을 알려주십시오.》

《무슨 과제가 제기돼서 모인 협의회가 아닙니다. 간단히 모여서 뭘 좀 토론했는데 그 문제는 후에 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은 좀 바빠서…》

서둘러 자리를 뜨는 세포위원장의 당황해하는 눈빛에서 그이께서는 뭔가 석연치 않은것을 느끼시였다. 세포에서는 왜 협의회에서 토론된 안건을 알려주지 않는가? 당생활에서는 높은 당원, 낮은 당원이 따로없는데 영화창작사업이 바쁘다고 분공도 주지 않기로 했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의문을 지우지 못하신채 방으로 돌아오시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로 떠날 차비를 갖추시였다. 림춘추의 방에서 투사들과 토론할 문제가 있었던것이였다. 거울을 들여다보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난감해지시였다. 그사이 바쁘게 다니시느라고 옷이 무척 덞어졌던것이다.

(야단났군, 벌써 덞어지다니. 빨아입은지 얼마 안되는데.)

서둘러 옷장을 여시니 추억을 담아 정히 걸어놓은 대학생복밖에 없었다. 하긴 단벌양복뿐인데 금시 갈아입을 옷이 있을리 만무했다. 잠시 허거픈 웃음을 지으시던 그이께서는 덞어진 양복차림을 다시 거울로 들여다보시고 할수없이 대학생교복을 벗겨드시였다.

상임위원회 서기장 림춘추의 방에는 김일, 최현, 오백룡, 오진우 등 투사들이 모여있었다.

방에 들어서신 그이의 교복차림을 제일먼저 알아본 림춘추가 의아해졌다.

《아니, 대학졸업이 언제인데 아직도 교복을?…》

투사들의 눈길이 일제히 쏠리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귀언저리가 따끈해오는것을 애써 누르시며 흔연히 웃음을 지으시였다.

《오늘은 어쩐지 옛 교복을 입고싶었습니다. 대학시절이 하도 추억깊어서 정히 건사하고있는 교복인데 오늘 이렇게 입고나서니 그리운 대학시절로 되돌아간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태연스럽게 말씀하시여도 감출수 없는 부자연스러움에 장내가 저으기 어색해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서둘러 화제를 돌리시느라고 투사들에게 어서 앉으라고 하시며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시간이 없는데 직방 이야기하겠습니다. 혜산의 대기념비를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으로 명명하자고 하면서부터 생각했던 문제입니다.

투사동지들, 저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에 항일무장투쟁을 승리에로 령도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동상을 정중히 모시자는것을 제의합니다.》

숭엄한 감정에 휩싸인 투사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오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옳습니다. 보천보전투의 승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천재적전략전술이 안아온 승리입니다.》

김일이 묵직한 입을 열었다.

《혜산대기념비는 보천보전투승리 하나만을 기념하는 탑이 아니요. 항일혁명투쟁전체를 담기때문에 수령님의 동상을 모시는것이 천백번 옳습니다.》

《그럼 수령님의 동상을 어떻게 형상하여 모시겠는지 투사동지들의 의견을 듣고싶습니다.》

이번에도 오진우가 먼저 의견을 내놓았다.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인데 보천보인민들앞에서 연설하시던 모습을 모셔야 하지 않을가요? 그림 보천보의 홰불처럼 말입니다.》

오백룡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이야 보천보혁명전적지에 이미 모시지 않았소?》

림춘추가 속생각을 굴리다가 말했다.

《내 생각엔 황철나무옆에서 전투개시를 알리는 총성을 울리시던 수령님의 영상을 모셨으면 합니다. 수령님께서 전투하실 때 늘 대오의 맨 앞장에서 싸창을 드시고 전투를 지휘하셨기때문에 보천보기념탑에도 붉은기앞에 싸창을 높이 쳐들고계시는 수령님을 모셔야 력사적사실과도 맞을것같습니다.》

김일이 생각을 더듬다가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조각군상들이 어떻게 되였는지 조화가 맞게 해야 할것같습니다.》

그이께서는 짐시 사색에 잠기셨다가 말씀하시였다.

《지금 창작가들이 조각군상을 주제별로 형상하였는데 매 주제에 따르는 개개의 조각형상들은 수준이 높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기념비의 종자를 휘날리는 붉은기로 보고 거기에만 치우친것입니다.

그러나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의 종자는 항일대전을 승리에로 이끄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입니다. 여기에 모든것을 복종시켜야 합니다. 형상의 핵, 형상의 중심이 수령님의 동상인것만큼 수령님을 따라 혁명의 붉은기를 휘날리며 시련을 뚫고 전진하는 항일혁명대오, 조선혁명을 형상해야 한다는것입니다.》

다들 고개만 끄덕이며 말이 없었다. 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리고 골똘히 생각하던 최현이 손을 홱 내저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구 고견을 먼저 내놓으십시오. 회의에서두 사회측의 복안이라는게 있지 않습니까?》

모두가 그게 옳겠다고 그이께로 시선을 집중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럼 최현동지의 제의에 따라 〈사회측의 복안〉을 발표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다가 이으시였다.

《저는 혁명의 진두에 서시여 시련을 뚫고 진격로를 열어나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형상으로 하자는것입니다. 대오를 이끌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시는 형상, 한손에는 쌍안경을, 다른 손에는 모자를 벗어 틀어쥐신 수령님의 형상으로 말입니다.》

투사들이 무릎을 치는데 오진우가 한마디 보탰다.

《그게 아주 좋겠습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 백포를 두르신것으로 하면 어떻습니까? 북만원정때…》

최현이 말을 툭 꺾었다.

《또 도로기소릴 하고싶어서? 아무튼 좋아.

설한풍이 휩쓰는 험한 산중에

결심품고 싸워가는 우리 혁명군… 엉?

우리 빨찌산이야 눈보라를 헤치는 행군이 기본이였지.》

혁명가요까지 한구절 뽑으며 지지하는 그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김정일동지께서도 흥분되시였다.

《옳습니다. 저도 활동감, 전진감을 나타내는데서 무엇인가 더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댔는데 역시 투사동지들과 토론하기 잘했습니다.

수령님께서 대오의 진두에서 백포를 휘날리시고 그뒤로 붉은기를 휘날리는 항일혁명대오를 세운다면 만고의 시련을 앞장에서 헤치시며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끄신 수령님의 형상이 더 잘 살아날것같습니다.

그럼 창작가들과 이 방안을 토론해서 완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투사들이 돌아간 다음 김정일동지께서는 방에 남으시여 림춘추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연변에서는 아직 회답이 없지요?》

림춘추는 거창한 사업을 설계하시면서도 마음속으로 하루하루를 세여가고계시는 그이의 초조한 심정이 헤아려져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좋은 소식이 올겁니다.》 그리고는 화제를 돌렸다.

《거 당력사연구소의 태호가 괜찮습니다. 나는 연변의 옛지기들에게나 알아볼 생각을 했는데 태호가 와서 판을 다르게 벌렸습니다. 연변의 항일로병조직과 연변대학을 비롯해서 항일력사연구기관들, 지어는 할빈에 있는 학술연구조까지 다 떨쳐나서도록 말입니다. 그런 동무들이 곁에서 받들고있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겸허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제가 뭐라고 받들겠습니까. 그 동무는 저를 도와주고있습니다. 또 저도 그 동무의 사업을 도와주고.

참, 빨찌산때 서기장동지한테 〈배낭총각〉이라는 별명은 누가 달아주었습니까?》

그이의 물으심에 림춘추는 은연중 늘 마음속에 맺혀있던 한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그에게 《배낭총각》이라는 부름을 처음 쓴 사람은 작식대의 강철숙이였다. 림춘추와 함께 지하투쟁을 하던 남편이 희생된 후 젖먹이 어린 딸을 다리밑에 놓아두고 울며 유격대를 찾아온 강철숙은 강직하면서도 매사에 말이 적은 녀성이였다.

그가 《나의 비망록》이라고 제목을 단 림춘추의 력사기록장에 봇나무껍질뚜껑을 해주면서 주변대원들에게 《배낭총각》이란 말을 한마디 한것이 한입두입 건너 누구나 친근감을 가지고 부르는 별명으로 되였다.

1940년초 강철숙은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였는데 림춘추의 극진한 치료로 부상자리는 아물었으나 건강이 몹시 쇠약해졌다.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고있을 때였다. 그 고난의 나날을 잊지 못하여 림춘추자신도 회상기 《잊지 못할 5. 1절》을 썼다. 오죽하면 개구리를 잡아 5. 1절을 쇠였겠는가.

그무렵 국제당에서 파견한 련락원들이 사령부에 와닿았다. 좌경모험적인 열하원정과 적들의 발악적인 《토벌》로 1로군 지휘관 양정우가 전사하고 남만성당서기 위증민도 중상을 당하고 병석에 있어 조선인민혁명군사령부가 동남만일대의 전체 항일련군부대들에 대한 지휘와 남만성당사업까지도 책임지고있었다. 수령님께서 그 드넓은 만주광야에 항일의 기치를 든 무장대오는 오직 우리밖에 없었다고 회고하신 간고한 시련의 시기였다.

국제당은 주체적인 로선과 령활한 전략전술로 적들의 《동변도토벌작전》을 짓부시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사령부와 련계를 짓는것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활동에 대한 자료들을 가능한껏 입수하여올데 대한 과업을 련락원들에게 주었다.

20만이 넘는 적들의 《토벌》공세속에서 조선혁명과 중국동북혁명을 다같이 지켜내야 하는 결사적인 유격전에서 사령부비서처가 가지고있는 많은 자료들을 보존하는것도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르어야 했다. 그리하여 투쟁자료들을 요점적으로 발취해둔 림춘추의 《나의 비망록》들을 제외한 자료의 대부분을 수령님께서 보내시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및 남만성위의 활동정형보고서와 함께 국제당에 보내여 보관하기로 했다. 그때 련락원들을 호위하기 위하여 몇명의 유격대원들과 함께 건강이 쇠약해진 강철숙도 쏘련으로 보냈다.

소할바령회의에서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하여 소부대활동으로 넘어가 조선혁명의 주체적력량을 확대강화할데 대한 새로운 로선이 제시되고 그해말 주력부대가 쏘만국경을 넘어 원동기지에 들어갔을 때 국제당 원동국에는 벌써 몇달전에 왔어야 할 련락원일행이 도착하지 못했었다. 후날 제1로군과 남민성당위원회의 활동정형에 대해 국제당문헌고에 보관된 수령님의 보고서는 훈련기지에서 다시 작성하신것이였다.

《소부대활동시기 적들에게서 빼앗은 문건들가운데는 일제가 각 〈토벌〉부대들과 위만경찰들에 내려보낸 〈공산비적 토벌요령〉이라는 비밀문건도 있었는데 동남만일대의 항일무장부대들과 남만성위의 실태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밝혀져있었습니다.

해방후 연변에서 공작할 때 나는 괴뢰 〈만주국〉경찰의 총고문이였던 일본의 고위경관놈이 쓴 〈반만항일비〉, 〈만주공산비 연구〉라는 비밀책자들을 입수했습니다. 당력사연구소에 우리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반증자료로 보관하라고 보냈는데 필력도 수준도 대단한 놈이였습니다. 항일유격대가 적들의 우세한 력량은 물론이고 얼마나 고급한 두뇌진과 맞서싸웠는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하는 책자들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때 우리가 국제당에 보관하기 위하여 보낸 자료들이 적지 않게 인용되여있었습니다. 사진자료 같은것들은 사진기는 로획해서 찍었지만 산에서 현상할수가 없어 필림을 먹지에 감고 또 감아서 보관하고있던것들을 보냈는데 적들이 현상해서 그 책자들에 더러 삽입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국제당련락원일행이 모두 전사하였다는것을 확신하게 되였습니다. 살아서 체포된 사람은 없는것같습니다.

그리고 자료는 두배낭을 보냈는데 추측해보면 사진자료가 있던 한 배낭만 적들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사령관동지의 비밀문건이 있던 배낭만은 강철숙이한테 특별히 맡기면서 최악의 경우 불살라버리라고 지시했습니다. 아마 그 배낭의 자료들을 소각하고 전사했을것입니다.

그래도 행여나 해서 해방후에 찾고찾았지만 그의 딸만 찾고 강철숙이는 생사여부도 알수 없었습니다.》

다리밑에서 애처롭게 우는 강철숙의 딸 수경이를 안아다 키운 사람은 동북의 산간오지에 숨어 조선 풍산개를 기르던 로인이였다. 일본놈들이 풍산개들을 일본으로 끌어가 자기 나라 명견으로 둔갑시키려고 모조리 잡아갈 때 조선의 명견을 지켜야겠다고 동북으로 피신해간 로인이 강철숙의 딸을 친자식처럼 키워주었다. 간난신고끝에 찾아 조국으로 내보낸 수경이는 만경대혁명학원에서 자랐고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후 지금은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문학교원으로 사업하고있었다.

《딸은 조국으로 데려왔는데 어머니의 희생경위는 알아내지 못했단 말이지요.》

《지금도 그 귀중한 문건들을 생각하면 통 잠이 오지 않습니다.》

림춘추는 력사기록장을 놓고 마음을 쓰고있었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다리밑에 어린 딸을 남겨두고 혁명을 위해 총을 잡은 강철숙을 뇌리에서 지울수가 없으시였다.

방을 나서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림춘추에게 말씀하시였다.

《이제 당대표자회가 끝나면 며칠간 네거리로 나가보는게 어떻습니까?》

림춘추는 말씀의 뜻을 몰라 눈만 끔벅거렸다.

《쑤다에브 말입니다. 요즘 서기장동지를 기다려 네거리에서 오락가락하자니 오죽하겠습니까?》

《아, 그 량반은 당대표자회가 진행되는 기간 가고싶은데로 가보라고 하고 올라왔습니다. 보천보에 가보고 될수 있으면 백두산에도 올라가보는것이 어떤가고 했더니 거기에도 가고 삼복리에도 가겠다고 해서 마음대로 하라고 사람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본은 김정일동지에 대해서 더 알고 가겠다고 극성입니다.》

《내 얘기는 왜 하십니까.》

《미래를 탐색하는 사람인데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알게 해야지 않겠습니까.》

림춘추는 의미심장하게 그이를 우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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