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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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는 하염없이 쏟아지던 유상룡의 눈물로 가슴을 적시시였던 그 아침을 다시 떠올리시며 고개를 수굿하고 뒤따르는 김태호를 돌아보시였다.

《과장동무, 왜 그렇게 무정합니까? 편지나 한장 보내놓고는 찾아오지도 않고 전화 한마다도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겁니까?》

《너무 죄스러워서…》

《그러니 죽여주소 목을 내대고 기다리댔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느덧 구름이 걷히고 별빛이 총총한 하늘로 시선을 옮기시였다.

《내가 과장동무를 알게 된지도 벌써 10년이 됩니다.》

김태호는 의아해졌다. 자기가 그이를 처음 뵈온것은 3년전 백두산으로 오를 때였기때문이였다.

《왜? 믿어지지 않습니까?》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물으시였다.

수령님께 남호두회의에 대해서 묻던것이 기억납니까?》

《예, 저는 그때 수령님을 처음 뵈웠습니다.》

《바로 여기서지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1957년 12월 김태호가 중앙당학교를 졸업하고 당력사연구소 지도원으로 임명받은지 서너달 지났을 때였다.

새로 꾸려놓은 《조선민족해방투쟁전람관》이라는 곳을 찾으시였던 수령님께서는 종파분자들이 의병이요, 독립군이요 하고 시작해가지고는 파쟁으로 3년밖에 존재하지 못했던 조선공산당과 중국 연안에서의 그 무슨 활동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고 항일무장투쟁에 대해서는 총 16개 관중에 마지막 2개 관으로만 간단히 취급한것을 돌아보시고 대단히 노하시였다.

《나중엔 별꼴 다 보겠군!》

그때 김태호가 전람관을 나서시는 수령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리며 다가가 물었다.

수령님, 남호두회의가 항일무장투쟁에서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남호두회의 말이요? 나라를 빼앗겨서 남의 나라땅에 가서 국가적후방도 없고 정규군의 지원도 없이 무장투쟁을 하는데 종파분자들은 국제당이나 중국공산당의 지도에 복종해야 한다고 했소.

그러나 우리는 남호두회의에서 조선혁명가들은 조선혁명의 주인이 되여야 한다는것을 주장했소. 이게 기본이요. 우리는 우리 대뿐 아니라 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도 이것을 똑똑히 알려주어야 하오.

헌데 동무는 누구요?》

《당력사연구소 지도원입니다.》

《그래? 우리 당력사에 오가잡탕이 섞이면 안되겠소. 조선공산당이라는게 종파싸움이나 하다가 망했구 〈의렬단〉이요, 뭐요 하는게 남의 나라 혁명에 따라다녔지 조선혁명을 했는가? 그런것들이 어떻게 우리 혁명의 뿌리가 되고 우리 당의 력사가 되오?

이따위들을 가만놔두니까 이제는 우리 군대를 놓구두 〈통일전선의 군대〉라는 잡소리를 줴친단 말이요.》

두달후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군창건 10돐을 맞으며 《조선인민군은 항일무장투쟁의 계승자이다》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날 저녁 퇴근해 들어오시여 나에게 당력사연구소에 우리의 투쟁력사를 깊이 연구하는 좋은 동무가 있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과장동무를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반종파투쟁을 총화하고 당의 통일단결을 이룩할데 대한 력사적인 당대표자회 직후에 동무는 누가 지시한것도 없지만 전국각지를 다니면서 〈애국적가정에서 혁명가로 성장하신 김일성원수의 어린시절〉이라는 강연을 했지요?

수령님의 서기가 록음해가지고 보고드린 그 록음테프를 나도 들었습니다. 몇달동안 간단치 않은 품을 들였다는것이 알리더군요. 그 시기에 그런 일을 한다는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김태호는 눈굽이 찌르르해졌다. 그이의 정깊은 눈길이 10년세월 자기를 따뜻이 보살피고있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던것이다.

《지금 좌우경바람으로 세계혁명이 난관을 겪고 적들은 기고만장해서 전쟁을 하겠다고 핵몽둥이를 휘둘러대고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혜산에 보천보전투승리를 기념하는 대기념비를 건설하고있으며 수령님께서는 한 아동단원의 혈육을 두고 마음쓰고계십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동안을 두셨다가 하늘가 그 어딘가를 이윽히 보시였다.

《우리 인민 백만, 천만을 백두의 정신, 백두의 숨결로 고동치는 백두산식솔로 만들고 이 대오에 금순이의 혈육도 세우려는것이 수령님의 뜻입니다.》

김태호는 고개를 수그렸다.

《그 어떤 엄한 처벌도 받겠습니다.》

《처벌? 처벌은 또 무슨 처벌입니까. 나한텐 그런 권한도 없습니다. 내가 섭섭하게 생각하는건 무엇인가?》

그이께서는 천리마동상쪽으로 오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과장동무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란 말입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찾아오고 일이 잘 안되면 안된다고 찾아와서 안타까운 소리도 하고 도와달라고 해야 할게 아닙니까. 동무와 나사이가 당력사연구소 과장과 조직지도부 지도원이라는 직급상관계입니까? 인간 김태호와 인간 김정일 관계, 동지와 동지의 관계가 아닙니까.

그래 동무는 그런 편지를 받고 괴로워할 내가 보고싶지도 않았습니까?》

김태호는 울먹울먹해져 김정일동지의 팔을 부여잡았다.

《그리웠습니다. 이 며칠동안 정말 괴로웠습니다. 그러니 더 그리웠…》

말을 맺지 못하는 그의 어깨를 다정히 쓸어주시며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됐습니다. 이젠 그만합시다.》

그러시고는 그때까지 한손에 쥐고계시던 가죽으로 된 곽을 쥐여주시였다.

《받으시오. 사진기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편지를 받고 사나흘 지났는데도 동무가 찾아오지 않으니 어디 며칠이나 견디나 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 찾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내가 못견디겠더란 말입니다. 인간의 정이란 참…

결국 마음속의 내기에서 내가 견디지 못하고 오늘 마침 좋은 사진기가 생겼길래 수령님을 모시고 백두산에 올랐을 때 촬영가도 아닌 동무가 사진기를 가지고 수행하던 생각이 나서 찾아갔댔습니다.

김일동지가 찾아서 갔다기에 거기로 가니 욕을 좀 해서 보냈다고 하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더 찾았지요.

이 사람이 자기를 그토록 고와하던 김일아바이한테서 욕을 먹고 이밤중에 갈데가 어디겠는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차를 몰아가니 아닐세라 가긴 어디로 가겠습니까, 나한테로 가지! 그래서 면바로 찾은거지요.》

아! 이런분! 이렇게도 인정에 무르시고 그 강철같은 마음이 정앞에서는 이렇게도 여리신분!

두손으로 받쳐든 사진기곽에 김태호의 더운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곁에 서있는 푸른 소나무도 잎새에 고였던 정갈한 이슬을 방울방울 떨구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그의 어깨를 꽉 잡았다놓으시고 그의 팔목을 잡아내리시며 정어린 음성으로 화제를 돌리시였다.

《과장동문 당학교시절에 외국소설들과 외국음악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했다는데 하나 물읍시다. 에스키모어에는 말입니다,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하는 눈, 방금 내린 눈, 내린지 오랜 눈, 녹기 시작하는 눈 등 눈이 내린 시간에 따라 달리 부르는 말도 많고 눈에 대한 노래도 많은데 왜 그런것같습니까?》

김태호는 뜻밖의 물으심에 당황해지며 서둘러 눈물을 닦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아, 시험치는것도 아니니 맘놓구 대답해보시오.》

《저… 에스키모인들의 생활이 눈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때문일것입니다.》

《옳습니다. 사람들의 말은 생활이 만들어냅니다. 그럼 한가지 더 물읍시다. 조선말에 웃음을 표현하는 말이 몇가지나 됩니까?》

《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한번 실례를 들어 말해보시오.》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평소에 웃음이 적은 김태호인지라 웃음에 대해서 그리 깊은 음미를 해본적이 없었다.

《생각나는껏 한두가지라도 대답해보시오.》

《웃음을 표현하는건 하하, 허허, 호호…》 하다가 고개를 기웃거리던 김태호는 그만 메사한지 피씩 웃고말았다.

《이제야 웃을사 하누만. 언어학자들의 학술적분석에 의하면 우리 말에는 울음과 관련된 말보다 웃음과 관련된 말이 더 많은데 그 표현이 수백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조선말처럼 웃음과 관련된 말이 많은 언어는 세상에 없을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민들이 예로부터 늘 웃음속에 락천적으로 살아온 인민이라는걸 말해줍니다.

우리 수령님의 한생은 인민의 웃음을 위한 헌신의 한생입니다.》

어느덧 동편하늘이 푸름푸름 밝아오기 시작했다.

《유상룡이 말입니다. 엊그제 내가 만나봤습니다. 내 예감에는 우리가 금순이의 남동생을 찾는 선과 유상룡이의 아버지문제를 해명하는 선이 한곳에서 일치될것같습니다.》

《저도 처음 만났을 때 그런 예감이 들었댔습니다.》

《어째서요?》

《부상당한 왕우구 로인이 안고와서 중국인 녀인에게 맡긴 애기라는것이였습니다.》

그리고나서 김태호는 무거운 숨을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나 유상룡인 금순이의 동생이 아닙니다.》

《근거는?》

《만약 상룡이가 금순이의 동생이라면 상룡이의 아버지이자 곧 금순이의 아버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왕우구의 엿장사 김씨와 금순이 아버지의 희생경위가 다릅니다. 금순이 아버지는 왜놈들의 〈토벌〉때 희생되였는데 왕우구 엿장사는 그로부터 썩 이후에 처단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금순이의 아버지와 왕우구의 엿장사 김씨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이라고 곱씹어 뇌이시며 들꽃이 핀 등성으로 오르시였다.

《태호동무, 새것의 발견은 언제나 정설로 굳어진것에 의문부호를 붙이는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동무는 찾을수 없는 근거를 편지에 썼지만 나는 반대로 동무가 렬거한 사실들에서 반드시 찾을수 있다는 근거를 쥐였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바라는 결말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는.》

김태호는 흠칠했다.

(?…)

《들어보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동안 자신께서 고심하여 연구한 자료들을 이야기해주시고 결론을 지으시였다.

《이제부터는 유상룡의 아버지를 찾는데 초점을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과장동무는 림춘추동지가 엿장사로 위장한 왕우구 지하조직의 김씨를 찾는 일을 방조해야 하겠습니다. 결과는 거기서 얻어질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나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어느덧 동평양의 문수벌 상공에 아침노을이 피여오르기 시작하였다.

그이께서는 그윽한 미소를 지으시며 그 노을을 바라보시였다. 점점 더 붉어지는 아침노을이 그이의 존안을 물들이는 모습을 김태호는 황홀하게 우러르고있었다.

《이 자리가 어떻습니까?》

《만수대야 평양에서도 명당자리가 아닙니까.》

《옳습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언덕을 점찍어두고있습니다.》

호기심이 동한 김태호를 돌아보신 그이께서는 미구하여 아침해가 솟아오를 동평양의 넓은 벌을 가리키시였다.

《나는 이 언덕에 아침해가 찬란히 솟아오르는 저 하늘을 향하여 조선혁명의 광활한 미래를 손들어 가리키시는 수령님의 동상을 모시고 그 량옆에 휘날리는 붉은기아래 하나는 타도제국주의동맹으로부터 조국해방에 이르기까지 영광스러운 항일혁명투쟁을 보여주는 조각군상으로, 다른 하나는 위대한 주체사상의 기치아래 벌리고있는 창조와 건설의 력사를 집대성하는 조각군상으로 이루어진 대기념비를 세우고 그뒤에는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인 조선혁명박물관을 웅장하게 일떠세우자는것입니다.

그러면 이 만수대언덕은 조선혁명의 영광스러운 력사가 응축된 성스러운 혁명의 언덕으로 될것입니다.》

조선혁명의 력사가 응축된 성스러운 혁명의 언덕 만수대!

김태호는 너무도 가슴이 뻐근해와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이께서는 결연한 눈빛으로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이것은 앞으로 내가 할 일입니다.》

장쾌한 아침해돋이가 시작되였다. 열정으로 이글거리는 거대한 불덩어리의 빛발에 끓어번지는 쇠물처럼 물든 대동강이 환희에 출렁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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