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3 장
또다시 올린 상소문
5
(3)
덕보는 그간 삼녀와 함께 마님을 하루도 빠짐없이 뵈우며 지성껏 돌봐드리였다. 또 야장간을 짓는데서도 땀을 쏟으며 억척같이 일하였다. 미리부터 왜놈을 칠 병쟁기를 만들어낼 야장간을 짓고있는 조헌나리님이야말로 왜놈들이 무서워할 사람임을 더 잘 알게 되였다. 덕보와 삼녀는 그동안 부부로서 다정한 말도 나누어보지 못하였다. 그만큼 마님께 바치는 지성이 끝없었고 또 왜놈자객때문에, 야장간을 짓는 일때문에 여념이 없었던것이다. 다른 때라면 신혼의 행복에 마음껏 취해 꿈같은 나날을 즐길수 있었겠지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삼녀는 덕보가 그지없이 미덥고 그와 부부의 인연을 맺은것이 자랑스러웠다. 덕보는 덕보대로 삼녀가 끝없이 사랑스러웠다. 조헌나리님의 집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보배일뿐만 아니라 나리님과 완기형님, 해동형님들과 뜻을 같이하고 무술까지도 함께 익히고있는 그가 돋보이고 장하게 여겨져서 그를 눈동자와 같이 아끼고 위해주고싶었다. 한생이 다하도록!
덕보는 조헌의 앞에 두무릎을 꿇고 작별의 큰절을 올리면서 더운 눈물을 흘리였다.
《덕보와 헤여지는것이 이같이 섭섭해질줄은 몰랐고나. 네가 가면 신각어르신님께 편지를 보내주어 감사하다는 나의 인사를 전하고 여기서 벌어졌던 일을 다 아뢰여라. 왜놈들의 흉계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네가 직접 보았으니 그분께 잘 알려서 온 조정이 알게 하여야 하고 임금께서도 아시고 나라방비대책을 강구하시도록 해야 하리라. 내가 장계문을 감영을 통하여 올리도록 하였으니 그것이 임금께 가닿았는지 신각어른이 알아보도록 하였으면 좋겠다. 또 네가 짬을 내여 안세희어르신님께도 그 사실을 전해라.》
조헌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신각어른이 한성밖에 너희들의 집을 마련해주시면 즉시로 기별해라. 그러면 삼녀를 보내주마. 잘 가거라. 너는 신각어른을 잘 모실뿐만 아니라 그분이 지닌 무술만큼 너도 지니도록 밤낮을 쉬지 말아라.》
《알았소이다. 나리님은 저의
덕보는 조헌의 가슴에 와락 안겨들며 눈물을 흘리였다.
조헌은 그의 어깨를 쓸어안았다가 천천히 밀어내며 조용히 타이르듯 말하였다.
《
덕보는 조헌나리님이 《오냐, 그렇게 불러라.》라고 할줄 알았는데 뜻밖에 거절당하자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제가 친부모와 같은 나리님의 은혜를 어이 잊으리까. 그래서 <
조헌은 엎드려 진심으로 제 잘못을 비는 덕보를 일으켜주며 빙그레 웃었다.
《네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불러라. 그러나 사람들앞에서는 그러면 안되느니라. 나는 지금까지 너를 아들처럼 여겼고 너는 나를 아버지처럼 모시고
지성을 다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량반과 상민의 차이를 흐리게 하고 반상간의 륜리를 헝클어지게 하며 뒤섞여놓을가봐 걱정이다. 한집안에서 그렇게
되면 집집마다 그렇게 되고 나중엔 온 고을이, 더 나아가서는 나라에 귀천이 사라지고 백성들이 자기의 상전도 몰라보게 되며 임금까지도 몰라보게
될것이니라. 그러면 나라가 어찌 되겠느냐. 너는 지금껏 불러왔던것처럼 나를 여전히 나리님으로 불러라. 나는 너희들이 혼례식을 치를 때 나와
마님앞에서 <
그렇다. 조헌은 량반이고 덕보는 천민인것이다. 삼녀도 해동이도 다를바 없다.
《예, 알아들었소이다. 나리님은 없어서는 안될분이옵니다. 왜놈자객들이 기여들어 어느 틈을 노릴지 모르오니 부디 몸조심하옵소서.》
《내 너의 마음을 잘 안다. 자, 그럼 어서 떠나거라.》
조헌은 그의 손을 다정히 잡고서 대문밖으로 나왔다.
완기와 해동이도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동구밖까지 따라나와 바래주었다.
덕보는 그들앞에도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형님들도 몸성히 잘 계시오이다.
그는 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임자는 어디가든
완기와 해동이는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삼녀는 덕보가 갈아입을 속옷과 길량식이 든 보짐을 머리에 이고 10리, 20리를 함께 걸었다. 그는 남편의 짐을 이고 백년이든 천년이든 한생이 다하도록 걸어가고싶었다.
《삼녀, 이제 우리에게 집이 생겨도 임자를 이내 데려올것같지 못해.》
《그 말은 쇤네가 먼저 말하려고 벼르었는데… 거기서 먼저 하오이다. 호호호.》
《그건 왜?》
《쇤네가 좋아라 남편따라 가면 나리님이랑 오빠들은 누가 때식을 끓여주고… 집에 녀자일감이 얼마나 많소이까.》
《하하하. 나도 그걸 생각했더랬어. 그래서 임자를 이내 데려오지 못하겠다고 한거야.》
《호호… 우린 마음도 몸도 꼭 하나!》
덕보는 삼녀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그를 갑작스럽게 힘껏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이, 숨차라. 남이 보면 어쩔려구-》
삼녀는 머리에 이고있는 보짐이 떨어질가봐 그것을 꼭 붙잡은채 덕보와 한몸이 되였다.
잠시후에 그들은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내가 몇년안에 군역을 마치고 옥천에 오겠으니 그때까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있소이다.》
그들은 어느덧 고개마루에 올라섰다. 서로 떨어져 순간도 못살것같은 마음과 마음을 애써 누르며 헤여져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