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9 회)
제 4 장
7
(2)
《책이 나온지 이제는 두석달 지났는데 독자들의 반영이 어떻습니까? 편지랑 오는것이 없습니까?》
《편지만해두 벌써 몇묶음 됩니다.
그러다가 이마를 치며 벌떡 일어섰다.
《참, 삼복리라는데서 처녀선동원이 아주 감동적인 편지를 보내왔는데
《아, 그래요? 삼복리처녀선동원 차성희지요?》
《옳습니다. 내 그 편지를 보여드리려구 따로 건사했는데…》
서둘러 집필탁에 가서 빼람들을 열어보던 림춘추는 그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참, 저 〈네거리량반〉이 가져갔군!》
《쑤다에브선생 말입니까?》
《예, 책이 나온 다음 기념으로 한부 주었는데 얼마나 열성적으로 읽는지 밤잠도 안자더군요. 재밤중에두 문을 두드리며 들어와서 우리 글에서
자기가 모를 표현이라든가 문구들을 물어보군 했는데 알고보니 그 량반이 우리
헌데 더 놀라운것은 칠순나이의 사회주의정치원로, 불패의
하지만 이 회상기를 읽어보니 그 격찬이 오히려 모자랐다는 생각이 든다는거지요.
자기도 2차대전때 빨찌산을 해보았기때문에 빨찌산투쟁이 얼마나 간고한가를 잘 아는데 조선빨찌산이 어떻게 아무런 국가적후방도, 정규군의 지원도
없이 장구한 세월 투쟁했는가 하는것이 무척 의문스러웠댔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정확한 로선이 있고
《그런데 차성희의 편지는 왜 가져갔습니까?》
《그 량반은 조선독자들의 반향, 특히 청년계층의 반향에 몹시 흥미를 가지고있습니다. 그래서 나한테 오는 독후감편지들을 다 읽어보댔는데 그
처녀의 편지를 읽고서는
《됐습니다. 아직 자겠는데 깨우지 마십시오. 일찍 자고 일찍 깨나는 조선사람들과 달리 그쪽 사람들은 늦게 자고 늦게 깨군 한다지요? 편지는 후에 봅시다. 오늘은 좀 토론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가방에서 림춘추의 회상기를 꺼내서 접어두시였던 부분을 펼치시고 이윽히 생각에 잠겨계시던
《이 회상기에서 아동단원 금순이가 체포되였을 때 사람들한테 놈들이 자기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집에 가두어넣고 불태워죽였다고 말했다는데 누구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습니까?》
림춘추는 기억에 생생한듯 별로 생각을 더듬지 않고 말했다.
《해방후에 연변에서 전권대표로 있을 때 금순이와 같이 체포되였다가 살아나온 사람들한테서 들었습니다. 그때 어른들도 한 열명가량 같이 체포되였는데 놈들은 어린 소녀를 얕잡아보고 쉽게 비밀을 뽑아낼수 있다고 여겼답니다. 그러다가 대지 않으니까 특별히 악착스럽게 고문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자 사형했지요.》
《아버지와 어린 동생이 학살당했다는것은 사실입니까?》
《금순이는 연길유격구의 아동단학교에 다니다가 동만특위가 있는 소왕청유격구로 반일부대 연예활동에 뽑혀온 아이였습니다. 키는 자그마한데 노래와 춤은 얼마나 잘하는지 별명이
〈마촌콩새〉였습니다.
금순이가 마촌에 있을 때 왕우구유격근거지에 대한 적들의 〈토벌〉이 있었고 그때 아버지, 어머니와 어린 동생이 학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후에 어머니는 살아있다는 소식을 다시 듣게 되였습니다.
마촌에서는 어머니를 만나보라고 왕우구로 보내면서 백초구지하조직에 보내는 비밀련락임무를 함께 주었댔습니다. 그래서 백초구에서 체포된것입니다.
금순이 어머니는 연길현인민혁명정부가 있던 왕우구에서 촌장을 하였습니다. 이름은 최옥봉이였는데 내가 연길유격구에 있을 때 만나본적도 있는 녀인입니다. 후에 들은바에 의하면 금순이가 어머니는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지만 실지는 그 녀인도 그때 적들의 〈토벌〉에 희생되였다고 합니다.》
《금순이 아버지는 무엇을 했습니까?》
《아버지는 구당간부로 사업하다가 적들의 〈토벌〉당시 학살당했다고 합니다.》
《그렇다?…》
《구당간부였다는것은 사실인것같습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