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 회)

제 4 장

6

 

신인하는 고요한 방안에 앉아 보온병에서 따라놓은 더운물이 흰김을 피워올리는 고뿌를 점도록 마주하고있었다. 잊을수 없는 그밤 괴로운 심정을 터치는 자기에게 김정일동지께서 아무 말씀없이 더운물을 따라주고 나가시였던 그 고뿌였다. 이렇게 하루사업이 끝난 깊은 밤이면 그 고뿌에 더운물을 따라놓고 마치 그이앞에 서서 보고드리고 가르치심을 받듯이 마음속으로 그날 하루를 총화해보군 하는것이 이제는 습성화되여가고있었다. 마음이 착잡해질 때에도 이 사연깊은 고뿌에 더운물을 담아 마시고나면 뜨거운 그 무엇이 심신에 꽉 들어차며 새로운 힘과 용기가 솟구쳐오르군 하였다.

이밤도 퇴근을 앞두고 더운물고뿌를 마주하고앉아 붉은 화강석문제로 외국출장을 떠나는 허담에게서 전달받은 김정일동지의 말씀을 새겨보고있는데 문득 손기척도 없이 문이 벌컥 열리더니 김도만이 방안에 들어왔다.

전혀 뜻밖의 일이였다. 아래사람들에게 할말이 있을 때엔 전화를 하든가 제방으로 불러들이군 하였지 절대로 찾아다니는 일이 없는 그가 부부장의 방에 예고도 없이 나타난것이였다.

김도만은 신인하가 권하는 의자에 무겁게 몸을 얹으며 물었다.

《퇴근 안하오?》

《이제 가려댔습니다.》

《음- 난 담배나 한대 피우고 가겠소.》

신인하가 아무말없이 담배곽과 성냥을 꺼내 재털이와 함께 놓아주고 자기 자리에 가앉자 김도만의 성냥긋는 소리가 드윽- 울렸을뿐 둘사이에는 팽팽한 침묵만이 흘렀다.

신인하는 김도만이 요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이번에 평안북도를 현지지도하시고 도당전원회의까지 소집하신 다음 돌아오시여 평북도의 당사상사업지도를 맡은 김도만을 엄하게 추궁하시였다.

《선전부장이 직접 담당해서 사상사업을 지도했다는 도가 왜 그 모양이요? 지금이 흥타령을 하고 날라리부릴 때요?

향토꾸리기를 한다길래 농촌테제과업대로 문화농촌을 꾸리고 군을 지역적거점답게 꾸릴줄 알았는데 그렇게 일은 안하고 밤낮 춤이나 추고 노래나 부르겠으면 향토꾸리기놀음을 싹 걷어치워야겠소.》

거기에다 얼마전에는 수령님께서 보천군 의화리의 《사적지》를 두고 도대체 《생가》꾸리는 놀음은 왜 벌리고 어떻게 되여 《유일한 거점》으로 되는가고 물으시자 박금철은 자기는 전혀 모르고있었노라고 발뺌을 하고는 돌아서서 내가 언제 그런것을 하라고 했는가고 김도만을 추궁했다. 《믿음이 가는 선두마차》라고 등두드려줄 때는 언제인데 수염을 뻑 내리쓸고 퍼붓는 그 욕을 꿀꺽소리 한마디 못하고 고스란히 먹을수밖에 없었다.

삼복리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비판무대에 올려세웠던 군당위원장과 군인민위원장이 우리는 수령님의 교시관철밖에 모른다고 강경히 맞서나선데다가 군협동농장경영위원장도 여기에 합세해가지고 농촌건설대를 파견하여 짓다가 걷어치운 정각나마도 말짱 헐어서는 아이들을 위한 다리를 번듯하게 놓는 바람에 더 있어봤댔자 망신밖에 당할것이 없게 된 《향토꾸리기지도소조》를 슬그머니 철수시키고말았다. 《향토사》를 쓰라는 말을 듣지 않아 죽을 때까지 그 농촌에 처박혀있을줄 알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차성준은 외무성으로 소환되여 올라왔다.

파문은 군안의 리들뿐 아니라 다른 군들에도 번져가면서 어느 군이나 《향토꾸리기》는 중단되고말았다.

혜산의 대기념비는 1960년 3월 23일부 내각명령으로 《량강도 혜산시에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을 건설할데 대하여》가 채택된 후 박금철이 혜산에 내려가 대기념비의 이름을 인민영웅탑으로 못박고 표말까지 세우게 했는데 지금은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으로 되였다.

이 나라의 근대사와 현대사를 다 포괄할수 있는 세계적인 대기념비라고 떠들며 자기가 주관해온 탑건설이 표말을 달리하자마자 낮과 밤이 따로없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이제는 거기에 코를 들이밀기도 멋적어졌을뿐 아니라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황유탁이 혜산에서 벌어지는 실태를 일러바칠 때마다 등골이 오싹오싹했다. 암초라고 여기고 조용히 처리해버리려 했던 리석이와 주대성이도 대기념비건설장에서 활개를 치고있다.

박금철에게 혜산에서 벌어지는 일을 몇번째나 보고하였는데도 묵묵부답이다.

이윽고 김도만이 피우던 담배를 비벼끄고나서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열려는데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김도만은 이마살을 찌프리며 어서 전화를 받으라고 턱짓했다.

신인하가 송수화기를 드니 리석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아, 리석동무요? 조각군상형성안이 완성되였다구? 수고했소.》

그러던 신인하의 낯빛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뭐라구?》

이윽토록 리석이 하는 말을 듣고난 신인하는 피끗 김도만을 마주보고나서 당신도 어디 들어보라는듯이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리석동무, 위대한 수령님께서 붉은 화강석을 들여오기 위한 조치를 취해주시였소. 그러니 흰 대리석으로 기발형태만, 그것도 휘날리는 모양이 아니라 삼각자를 세워놓은것처럼 해서 보내왔다는 그 형성안은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소.

추호도 흔들리지 마시오.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은 반드시 휘날리는 붉은기로 되여야 하오!》

전화를 마친 신인하와 김도만의 눈길이 맞부딪쳐 서로 겨루기를 하듯 움직일줄 몰랐다. 그렇게 한동안 눈씨름을 하던 김도만이 끝내 당당하고 배심있는 신인하의 눈길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가겠소. 담배를 잘 피웠소.》

이것은 분명 변화였다. 신인하자신에게도 놀라운 변화였다. 과연 무엇이, 어떤 힘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는가?

신인하는 더운물이 담겨진 고뿌를 두손으로 정히 감싸쥐였다.

(김정일동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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