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3 장

또다시 올린 상소문

3

(2)

 

다음날 조헌은 성쌓기에 자기가 직접 나갈 준비를 갖추었다. 나갈 사람이 없었다. 완기는 앓는 어머니를 돌보면서 해동이와 함께 쭉정이낟알이라도 거두어들여야 하였다. 또 산에 올라 도토리와 같은 산열매도 따들였다가 농량으로 보태야 하였다.

조헌자신이 나가야 했다. 성을 쌓는데 누구도 례외로 될수 없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선비든 관리이든, 농부, 어부, 상인, 장공인이든 이 나라의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해야 할 일이다. 다만 어느 절기에 어떻게 쌓는가 하는것이다.

해동이는 조헌이 직접 성쌓기에 나가려는것을 알고 밭에서 급히 집으로 들어왔다.

아버님께서 어찌 성을 쌓으리오. 제가 나가오리다.》

해동이는 조단을 실은 지게를 벗어놓으며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들고 이같이 조헌을 말렸다.

《아니다. 내가 성쌓는데 나가봐야겠다. 념려말아라.》

조헌은 이미 일하는데 편리하게 맨 망건우에 흰무명수건을 동이고 우아래 바지저고리도 밭갈이할 때 입는 옷을 입었다.

아버님께선 못나가시나이다. 그 몸으로 무거운 돌을 어찌 다루겠소이까. 제가 나가리다. 아버님은 몸을 돌보셔야 하오이다.》

해동이는 조헌의 어깨에 걸려있는 삼노구럭지를 벗겨서 자기 어깨에 메고 또 마루우에 놓여있는 짐을 등에 졌다. 그것은 성쌓는 공사장에서 먹고 일할 식량이였다.

아버님이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어떻게 가실 작정을… 아버님은 몸이 퍽 쇠약해졌소이다. 부디 몸조리를 잘하시옵기를 바라나이다.》

해동이는 눈물이 글썽하여 절을 꾸벅하고 성큼성큼 대문밖을 나섰다.

조헌은 해동이 말처럼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졌다.

《해동아, 게 좀 섰거라. 나도 함께 가자.》

성쌓기공사장엔 백성들이 하얗게 널렸다. 돌과 흙을 져나르는 사람, 큰 돌을 여럿이 달라붙어 영차영차 굴려가는 사람들, 4인목도, 8인목도로 허기영, 치기영 운반해가는 사람, 정과 마치로 돌을 다듬는 사람, 다듬은 성들을 성벽에 올려서 쌓는 사람들을 멀리서 바라보면 붐비고 들끓는것같은데 정작 가까이 가보면 일손이 굼뜨고 걸음걸이들이 온전치 못하였다. 여기저기에서 신음소리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먹지 못해 부황에 뜬 얼굴들, 뼈가 앙상한 어깨죽지와 베잠뱅이아래 드러난 정갱이, 가죽만 씌워놓은것같은 종다리, 갈비뼈가 내솟은 가슴들, 돌을 목고로 날라가다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헐떡이는 사람들…

《왜놈들이 쳐들어와 우리를 죽이기 전에 이놈의 돌이 먼저 우리를 죽이는가보다.》

돌을 지고가던 중년배상투쟁이가 젖먹던 힘까지 짜내면서 산비탈을 아득바득 오르다가 더는 맥을 못쓰고 돌을 벗어내치고 쓰러지듯 누워서 하는 말이다.

논밭에 나가있어야 할 백성들이 여기에서 혹사당하고있는것을 보면서 조헌은 윤선각의 처사가 매우 불만스러워 격분이 치솟았다.

이때 갑자기 멀지 않은곳에서 《사람이 돌에 치웠다. 김갑석이 돌에 치웠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헌은 와뜰 놀라 사람들이 달려가는 곳으로 급히 다가갔다.

젊은이 하나가 커다란 성돌에 깔리워 죽은듯이 엎드려있었다.

그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사람들이 달라붙어 돌을 들어내고 젊은이를 안아냈다. 조헌은 머리수건을 벗어서 피흐르는 젊은이의 머리를 급히 처매였다.

《해동아, 내 짐속에 솜과 천이 있다. 어서.》

해동이가 지고있던 짐을 내려놓고 솜과 천을 꺼냈다. 조헌은 김갑석이라는 젊은이의 머리상처에 처맸던 피배인 수건을 벗겨내고 하얀 솜과 천으로 머리를 다시 싸매주었다. 또 보니 젊은이의 팔이 부러져있었다.

《누가 팔을 고정시킬 부목감을 얻어와야겠소. 싸리대도 여러개 있으면 되오.》

조헌은 누구라없이 모여선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예, 알았소이다.》

젊은 총각 하나가 어디로인지 뛰여갔다.

《해동아, 너는 천을 길게 찢어라. 부목을 대고 천을 감을수 있게.》

조헌은 이런 일이 있을것을 예견하여 집에서 무명천을 서너자 끊어왔던것이다.

《알았소이다.》

잠시후에 부러진 팔에 부목을 대고 정성껏 천을 감아주었다.

《누가 샘물을 좀 떠다주오.》

조헌이 또 사람들에게 호소하자 《예, 제가 갔다오리다.》하고 베잠뱅이 하나가 달려갔다.

《이 근방에 의원이 있는지 누가 좀 알아보고 데려오면 고맙겠소.》

《예, 제가 알아보겠소이다.》

젊은이 하나가 또 달려갔다. 의식을 잃었던 젊은이가 눈을 떴다. 그의 입에서 《물-》, 《물-》하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마침 물이 도착해서 그의 입에 물그릇을 기울여 조금씩, 조금씩 먹이였다.

조헌이도 안도의 숨을 내쉬고 둘러섰던 사람들도 젊은이가 살아난것을 보고 《인제는 되였네그려.》하고들 기뻐하였다.

《뉘신지 고맙소이다.》

돌에 치웠던 김갑석이가 조헌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사례하는데 사람들의 등뒤 가까운곳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여기선 뭣들 하느냐, 일은 하지 않구? 어서 헤쳐가 일을 해라.》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니 어떤 갓쓴 놈이 두눈을 부릅뜨고 호령하였다. 방금 물을 떠온 베잠뱅이가 공순히 대답하였다.

《사람이 돌에 치워 위급하오이다.》

《뭐라고? 그렇다고 일은 안할테냐? 빨리 헤쳐들가서 일을 해라, 저기 관찰사께서 여기로 오시는걸 못보느냐.》

사람들 몇몇이 돌아가는척하였으나 대개가 갓쟁이의 호령을 못들은체하고 조헌의 분부만을 기다리고있었다.

이때였다. 관찰사 윤선각이 비장, 고을원들과 감영의 군사들을 데리고 다가왔다. 사람들이 그때에야 길을 틔워주고 윤선각의 발부리앞에 부복하였다.

조헌은 윤선각을 돌아보지도 않고 젊은이를 돌봐주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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