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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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마루에 걸렸던 저녁해가 구름속으로 자맥질하면서 펼친 부채살같은 감빛잔광이 승용차의 차창으로 흘러들고있었다. 김일은 강기슭을 옆에 끼고 달리는 승용차의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댄채 눈을 감고 굳어져있었다. 바위처럼 가슴을 누르는 중압감에 숨결마저 거칠어졌다. 옆에는 위생복을 입은 간호원이 불안에 싸인 눈길로 김일을 지켜보고있었다. 앞좌석에 앉은 신인하도 간호원 못지 않게 마음을 조이며 김일을 살피군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그토록 만류하셨지만 김일은 벽도 문이라고 내미는 성미여서 기어이 혜산길에 나섰다. 김일의 병상태가 무겁다는것을 잘 아시는 김정일동지께서는 간호원이 함께 가도록 하시고 해당한 구급치료대책까지 세워주시였다.

김일은 자기가 가는 이 길이 빨찌산시절 사령관동지의 과업을 받고 정치공작을 떠나던 그 준엄한 언덕처럼 느껴졌다. 그럴수록 김정일동지께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그때부터 지새우시는 그 하많은 밤들에 쌓이고쌓이는 로고가 가슴을 저미였다.

김일은 이태전 수령님께서 일요일만은 무조건 휴식하셔야 한다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의결정을 뜻밖에도 선뜻 받아들이시고 찾아가신 휴양지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수령님의 서기로부터 그이께서 온종일 쉬지 않으시고 주변의 공장, 농촌, 상점과 심지어 읍내 인민반에까지 찾아가시였다는 소식을 들은 김일은 너무도 안타까와 깊은 밤에 휴양소로 찾아갔다.

《…그렇게 하고 돌아오시여서는 금방까지 이렇게 늦도록 군일군들과 협의회를 하시고… 이게 과연 휴식입니까?》

그의 마지막말은 안타까움으로 하여 갈려있었다.

흔연하신 표정으로 김일의 말을 중단없이 들어주신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이 꺽 메이자 갑자기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시였다.

《그게 나에겐 휴식이라니까. 이거 날 당결정위반자로 몰지 마오. 오가던 길에 공장이나 농촌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과 담배도 나눠피우는게 휴식이 아니면 뭐요.

그래 내가 사람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곳에 홀로 있으면 시원하겠소? 대중속에 들어가라 하고 아침저녁으로 강조하는 이 수상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며 휴양을 하라오?》

종시 수령님께 지고만 김일이 마침내 두손 들고 나앉으려던 찰나에 김정일동지의 안타까움이 어린 모습이 언뜻 떠올랐다.

수령님, 이건 저나 우리 정치위원회 위원들의 소리만이 아닙니다. 김정일동지도 여간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수령님께서 다소 굳어지시였다. 아마도 혈육의 애틋한 정이 한 나라 수반이라는 직책을 금시 잊고 인간적인 감회에 잠기시도록 한것인가. 한동안 말씀을 못하시던 수령님께서는 문득 《김일동무, 우리 나라 속담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올리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지?》 하고 물으시였다.

《예.》

《속담 그른데 없다지만 말이요, 어떻소? 그가 나나 우리 투사들에게 쏟아붓는 그 정을 내리사랑이라고는 할수 없지 않소? 그럼 올리사랑인데 속담에는 없다고 되여있고…》

수령님의 눈가에 후더운 감개가 그윽히 실려있었다.

수령님께서는 탁상우에 놓인 안경을 쥐시고 손수건으로 안경알을 닦으시였다.

《그가 제일 부러워한게 뭔지 아오? 그건 좋은 양복도, 빛다른 구두도, 가방도 아니였소. 낮이나 밤이나 비오나 눈오나 제일 부러워한건 손이였지… 손…》

수령님께서 하신 손이라는 말씀에 김일은 의아해졌다.

《어려서 자기가 아플 때나 동생이 앓을 때 이마를 짚어주는 손이 없었거던.》

김일은 김정숙동지의 영상을 그려보며 솟구치는 뜨거움을 가까스로 눅잦히느라 두툼한 입술을 감빨며 눈길을 떨구었다.

《나도 어렸을 때 앓으면 어머니가 머리도 짚어주고 배도 쓸어주며 〈어머니손이 약손이다.〉 하군 하였소. 그러나 그에게는 이마를 짚어줄 어머니손이 없었지. …》

김일의 눈가엔 불시에 뜨거운것이 슴배여올랐다.

가슴아픈 추억을 더듬으시는 수령님의 음성도 퍼그나 갈리시였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무렵이였는데 내가 퇴근해오니 풍금소리가 울리더구만. 전에도 그런 일이 많았지. 그날도 전처럼 날 기다리다못해 시간을 보내느라 그러겠지 하고 그 방앞에 다가갔는데 가만 들어보니 가사에 곡을 붙이고있더구만.

비와도 눈와도 먼길 떠나도 손잡아 이끄신 나의 어머니…

난 지금도 가끔 이 구절을 마음속으로 외워보군 하오.

손잡아 이끄신 나의 어머니…

김일동무도 알지만 정말 그는 내리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소. 일찌기 어머니를 잃구 전쟁때는 물론 전후에도 고아처럼 고생이란 고생을 다했지. 또 지금은 나를 도와 하루를 백날천날맞잡이로 일하구…

난 그를 볼 때마다 생각하오. 고생을 타고난가 하구 말이요.》…

휴양소의 잊을수 없는 그밤을 다시 되새겨보는 김일의 눈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대기념비건설장에서 나타나고있는 엄중한 사태와 관련하여 자신께서 건설현장으로 내려가시여 창작가들도 만나고 인민들의 반영도 들어보시겠다고 하시였다. 그러나 김일은 대기념비건립은 내각에서 채택한 결정인것만큼 자기가 가야 한다고 우겼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김일의 운전사에게 려행일정을 구체적으로 짜주시였다. 그이께서 짜주신 일정에 따라 도중에 인민군부대들에 들려 하루밤을 쉬고 또 다음목적지에 가서도 인민군부대에 들려 치료를 받으며 4일만에 혜산에 도착하였다. 김일은 신인하의 귀띔을 받고 그 일정이 김정일동지께서 몸소 짜주신것이라는것을 알고는 반대를 못하고 묵묵히 순응했다.

혜산에 도착한 김일은 현장지휘부에 조각가들과 설계가들을 불러 긴급협의회를 소집했다.

긴급협의회에는 김정일동지의 말씀에 따라 대기념비창작에 다시 망라된 리석이와 주대성이도 참가하였다.

건설현장에 나타난 김일을 보고 설계가들과 조각가들은 긴장된 분위기에 싸여있었다.

김일은 창작가들을 둘러보며 마디마디 그루를 박아 이야기했다.

《이제부터 동무들은 손에 쥔 연필을 총대로 알고 설계를 해야겠소. 조각가들은 조각칼이 아니라 빨찌산의 총창을 든 심정으로 조각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빨찌산대기념비를 후세에 길이 전할 력사의 탑으로 세울수 없소.》 그리고는 간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시각부터 동무들이 건립하는 기념비는 〈인민영웅탑〉이 아니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요!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의 념원을 헤아리시여 탑의 이름을 고치도록 승인해주시였소.》

일순 창작가들은 격정에 휩싸여 자리에서 일어서며 박수를 쳤다.

김일이 자리에 앉자 신인하가 일어섰다. 그는 고개를 수굿하고 앉은 리석에게 낮으나 예리한 어조로 찔렀다.

《보천보전투는 우리 수령님께서 항일대전의 총성으로 조선의 신념과 의지를 선언하신 전투입니다. 그런데 리석동문 잡동사니탑을 만들라고 한 부당한 지시에 말 한마디 변변히 못했지요?》

리석은 머리를 깊이 수그린채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대기념비의 창작은 순수 재능의 산물이 아니라 사상의 창조물, 신념의 열매라고 하시면서 설사 심장이 뛴다하여도 신념이 없으면 그 인간은 죽은 몸이나 같다고 하셨습니다. 리석동문 신념이 없는 인간이 될번 한 자신을 심각히 검토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동무들, 김정일동지께서는 리석동무의 휘날리는 붉은기폭을 중심으로 조각군상을 세우는 형성안을 지지해주시고 혁명전통의 대기념비를 창작하는 이 영예로운 전투에 리석, 주대성동무들을 망라시킬데 대한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셨습니다!》

창작가들의 얼굴에 격정의 빛이 어렸다. 주대성도 눈물이 글썽하여 리석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눈길이 일시에 리석에게 확 쏠렸다.

한참만에야 자리에서 일어선 리석은 더운 김을 후- 내뿜었다.

《저는 그 영예로운 전투에 참가할 자격이 없습니다.》

김일은 낮으나 천만근의 저력이 실려있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지난날의 잘못에서 교훈을 찾고 새 출발을 해야 해.》

그러나 리석은 한참동안 고개를 수그리고있다가 쳐들었다.

《전 김정일동지앞에 자신을 감추고 사는것이 죄로 된다는 생각에

신인하가 의아한 눈길로 리석을 쳐다보았다.

《뭘 감췄다는거요?》

《전 대기념비에 붉은기를 세울 안을 내놓고도 우리 나라에는 붉은 화강석이 없기때문에 흰 화강석으로 기발형태만 세우면 된다고 하는 말에 더 주장하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항일의 혁명전통을 상징하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에는 오직 붉은기만을 휘날려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없었습니다.》

좌중은 물뿌린듯 조용했다.

리석의 자신에 대한 무자비한 타매에 김일은 이제야 리석이 진정한 금손이의 아들이 되였구나 하는 생각에 코마루가 달아올랐다.

《쉽게 할수 없는 솔직한 말이야.

그분께서 들으셨다면 기뻐하실거요. 그분께서 제일 좋아하시는건 고지식하고 솔직한것이구 제일 증오하시는건 거짓이니까.》

김일은 리석의 진심어린 타매의 고백에서 실로 큰 충격을 받았다. 김정일동지께서 대기념비를 건립하면서 얼마나 솔직하고 진실한 인간들을 키워내고계시는가. 백두의 혈통을 꿋꿋이 이을 신념의 강자들이 자라고있다는 감복에 가슴은 마냥 부풀어올랐다

김일은 건설장에 새 표말을 세우는 일을 행사처럼 크게 하도록 했다.

대기념비건설장은 명절을 맞은듯 인파로 흥성이였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어느새 벌써 혜산시안의 거리와 골목골목에서 숱한 사람들이 대기념비건설장으로 달려왔다. 모두의 얼굴은 웃음이 활짝 핀 환희와 격정에 젖은 모습들이였다.

리석이며 주대성 등 창작가들과 돌격대원들이 건설장입구의 둔덕진곳에 새 표말을 세웠다.

푸르른 대공으로 높이 솟은 네모진 표말의 글발이 동서남북 그 어디에서 보아도 힘있게 안겨왔다.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건설장》

목로인이며 보천보의 인민들,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대학의 답사생들을 비롯한 전국의 청년대학생들이 격정에 넘쳐 만세의 환호성을 터쳤다.

《히야! 그 이름 진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구나!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암, 이제야 제 이름을 찾았구나!》

《목형! 우리가 〈진정서》를 올리길 정말 잘했쉐다.》

《이거 오늘 밤엔 네활개를 쭉 펴구 자게 됐수다.》

《허, 자다니? 두팔이 날개되여 일할 생각을 해야지.》

《옳거니!》

《허허…》

《하하…》

건설장에 울려퍼지는 감격의 환성을 듣는 김일의 마음은 1937년 6월의 그밤 수령님을 우러러 터치던 만세의 환호성을 다시 듣는듯 하였다.

빨찌산의 아들 김정일동지!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온 로투사는 김정일동지를 당중앙위원회에 모신것은 조선이 받아안은, 우리 인민이 대를 이어 누려갈 행운중의 대행운임을 다시금 페부로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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