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3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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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께서 구상하시여 집무실벽이 꽉 차도록
세워놓으신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전경도들을 보시며 사색을 이어가고계시였다.
적갈색으로 된 나붓기는 붉은기발모양의 탑신, 탑신두리에 형상한 60명의 군상들…
그이께서는 기념탑의 동켠 뒤로부터 시작된 부주제군상들을 새겨보시였다.
《조국광복의 서광》, 《조국진군》, 《진격》.
이어 뒤짐을 지시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며 서켠의 부주제군상들을 살피시였다.
《무장을 위하여》, 《고난을 뚫고》, 《격멸》.
그이께서는 몰려드는 피로에서인지 두손으로 허리를 꽉 잡으시고 몸을 펴시였다. 흰 화강석기단우에서 휘날리는 붉은기를
깊은 상념에 잠기시여 오래도록 보시였다. 지금 기념비의 이 붉은기를 두고도 치렬한 대결이 벌어지고있다.
허담이 무역성일군들과 함께 붉은 화강석을 해결하기 위하여 떠나려고 하자 국제부장 박용국은 무역성에서 할 일에 무엇때문에 외무성이 중뿔나게
나서는가고 시비를 걸었다.
신인하에게는 기념비라는것은 상징적인것인데 흰 대리석이라도 형태가 기발이면 붉은기로 알것이지 굳이굳이 붉은 화강석으로 문제를 몰아가는가고
내리추궁이 떨어졌다.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가를 너무나도 잘 알고계시는 김정일동지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런 말들에 흔들림없이 맞서고있는 허담이며 신인하 그리고 창작가들의
얼굴을 눈앞에 그려보시였다.
그 어떤 직권에도 끄떡없는 그들의 신념에 믿음이 가시였다. 아울러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늘어나는것이 더없이
기쁘시였다.
문기척소리에 이어 허담이 들어섰다. 그이께서는 반색하시며 물으시였다.
《내가 왜 만나자고 했는지 짐작이 갑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붉은 화강석을 꼭 해결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두팔을 가슴에 엇걸으시고 다시 기념탑전경도쪽으로 걸어가시더니 휘날리는
붉은기폭을 이윽히 보시였다.
《무역성에 다시 알아보았는데 수령님께서 예견하신대로 우리와 붉은 화강석수입문제를 합의한 그들의 립장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담의 표정에서 마음속 분노를 가늠하시였다.
못박힌듯 굳어진채 지그시 입술만 감빠는 허담을 일별하시며 그이께서는 창가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뜻밖의 화제를 꺼내시였다.
《며칠전에 수령님을 모시고 인민군부대에 갔댔는데 수령님께서 전사들과 담화과정에 들려주신
이야기중에서 아주 의미깊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서 그걸 들려주고싶어서 찾았습니다.》
허담이 서둘러 품속에서 빨간 뚜껑의 수첩을 꺼내드는것을 일별하시며 그이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수령님께서 전사들에게 훈련중에 제일 힘든 훈련이 무엇인가고 물으시자 전사들은 하나같이 행군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옳다고, 빨찌산때도 행군이 제일 힘들었다고, 그때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설마 걸어가다 죽기야
하겠는가 하면서 이겨내군 했는데 실지로 그렇게 행군을 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하시였습니다.
한번은 강행군으로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눈덮인 전나무가지를 움켜 잡은채 꿈쩍않고 서있는 대원이 있었다. 웬일인가 하여 다가가보니 그는 숨이
진채 굳어져있었다. 방금전까지 다른 대원들과 함께 〈적기가〉를
부르며 벼랑을 톺아오르던 그 대원이 목적지에 도착하여 숨진것을 보고 너무도 가슴이 찢어져와서 그를 부둥켜안고 피눈물을 흘리였다고 하시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창가로 천천히 다가가시며 갈리신 음성으로 뇌이시였다.
《방금전까지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던 사람이 죽은것을 보았습니까.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항일유격대원들은 전투도 아닌
행군에서 걸어가다가 희생되였습니다. 행군명령을 끝까지 관철하고 말입니다.》
허담은 몰켰던 숨을 내그으며 강인한 어조로 말씀올렸다.
《기어이 붉은 화강석을 해결해오겠습니다.》
《나도 믿습니다. 붉은기를 휘날리며 조국에 돌아오리라고 말입니다.
내가 강조하고싶은것은 붉은 화강석문제도 수령님께서 지니신 높은 권위를 가지고 해결해야 한다는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의문을 안고 서있는 허담에게 미소를 지으시며 튕겨주시였다.
《참, 언젠가 수령님께서 쏘련을 방문하셨을 때 연회장에서 있었던 일을 나한테 들려주었지요? 쏘련군
원수들이 우리 수령님을 얼마나 존경하고있는가 하는것을 말입니다.》
허담은 그제야 기억이 되살아나 활기를 띠였다.
《생각납니다. 수령님의 방문을 환영하여 차린 연회에 2차대전의 맹장들인 쏘련군 원수들중에서
외국에 나가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 참가했는데 흐루쑈브가 자기가 찾을 때는 나타나지 않던 원수들이
김일성동지가 오시니까 다 나타났다고 했다가 그들한테서 면박을 받았습니다.
당신이야 원수가 아니지 않는가, 김일성동지는 일제와 미제를
타승하신 조선의 위대한 원수, 강철의 령장이시다. 우리들이 맞이하여 인사를 드리는것은 응당한
례절이다 하고 말입니다.》
《그것 보십시오. 우리 수령님의 권위는 그렇게 절대적입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도 말했지만 우리는
수령님의 높으신 권위를 가지고 대외활동을 벌려야 합니다.
참, 그 〈네거리의 쑤다에브〉말입니다. 아까 림춘추동지가 찾아왔댔는데 조선에서 당대표자회를 소집한다는것을 알고 그때까지 자기가 더 체류할수
없겠는가고 하더랍니다.》
허담은 의아해졌다.
《형제나라 당대표단도 초청하지 않는데 그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그러다가 어처구니없는 기색을 지었다.
《그 무슨 〈뽐뻬이의 마지막날〉소리를 했다더니 우리한테서 뭘 찾아보려구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시였다.
《그게 아닙니다. 현정세에 대한 우리 당의 립장이 천명될것이기때문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
하실 중요한 보고문헌전문을 입수해야겠다고 하더랍니다. 내 말했지요? 그는 수령님에 대한 흠모심을 안고 조선에 온것이라고.
지난해에 수령님께서 인도네시아의 알리 아르함사회과학원에서 하신 강의문헌을 자기네 외무성의 옛 동료들에게 부탁해서
겨우 얻어보았답니다.
보십시오. 말은 림춘추동지를 만나보겠다고 했지만 실지는 그것을 읽고 조선에 와보고싶었던것입니다. 이젠 알만합니까?
〈뽐뻬이의 마지막날〉에 대한 비관이 아니라 의탁하고싶은
미래를 찾아서 온것이란 말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담의 눈길을 정깊게 마주보시였다.
《나는 사람을 보는 기준이 오직 한가지입니다. 그가 누구이건 우리 수령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라는것입니다. 림춘추동지한테 그가 알고싶어하는것은 다 이야기해주고 보고싶어하는것은 다 보여주자고 말했는데 외무성에서도 그의 소원대로 대책을
세워주십시오.
그 사람의 경우만 놓고보아도 지금 대외선전사업실태가 어떤가를 잘 알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령님의 사상과 업적,
위대성을 가지고 대외선전을 진공적으로 벌려야 합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수령님의 높으신 권위를 가지고 대외활동을 진행해야 합니다. 난 수령님의
권위론을 주장합니다.》
그이께서는 격앙된 심정에 싸여 가쁜숨을 톺는 허담을 보시며 대기념비에 휘날리는 붉은기를 그려보시였다.
밤하늘에서는 뭇별들이 그 무엇을 속삭이듯 눈부신 백광을 뿌리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