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3 장

또다시 올린 상소문

1

(1)

 

일본에 갔던 우리 나라 사신(황윤길, 김성일, 허성)이 돌아온 신묘(1591)년 1월부터 왜놈들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려는 흉심이 극도로 달아올랐다.

경인(1590)년 3월 정미일에 우리 사신이 왜나라로 떠났었는데 근 일년가까이 지체하였다가 돌아온것이다.

왜나라의 관백 수길(도요또미 히데요시)은 다섯달동안이나 조선국왕의 국서를 받들고간 우리 사신을 만나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도요또미가 반란을 일으킨 어느 지방의 봉건령주를 치러 갔기때문에 돌아와서 조선사신을 만나주겠다고 하였었다. 그래서 두달동안 기다리였다. 마침내 도요또미가 반란을 평정하고 돌아왔다.

우리 사신들은 이제는 수길을 만날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여 이웃나라 사신의 자격으로 조선임금의 국서를 전달하려고 례복을 갖추어 입었다. 그런데 조선사신을 맡아 접대하는 왜나라 선위사가 하는 말이 새 궁전을 다 지은 다음에 조선사신을 만나겠다고 하였다는것이다.

우리 사신들은 어찌 이럴수 있겠는가, 새 궁전을 지으면 지었지 우리 사신을 만나지 않겠다는 리유는 무엇인가, 우리 나라와 일본국은 서로 사신래왕이 없었던것을 고려하여 또 당신네 관백이 우리의 사신을 보내달라고 하여 풍랑을 헤치고 바다를 건너왔는데 새 궁전이다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것은 나라와 나라사이의 례의를 그르치는 일이 아닌가라고 항의하였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하더니 어느날 왜의 선위사가 나타나 관백이 새 궁전으로 가기 위해 거리를 행차하니 조선사신일행이 구경하라고 하였다. 이것은 관백의 위세를 조선사신들앞에서 떨쳐보이려는것이였다.

우리 사신은 단호히 거절하였다. 우리 사신은 개인이 아니라 조선임금의 국서를 받들고 온 전권대표의 존엄을 지니고있는것이다. 관백이 우리 나라의 왕인가, 우리는 우리 임금만을 알고있을뿐이다. 빨리 당신네 관백이 우리 임금의 국서를 전달받을수 있도록 하라 하고 왜의 선위사에게 면박을 주었다.

왜의 선위사는 《만약 귀국사신들이 이에 순종치 않으면 돌아갈 기일을 예측하기 어려울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우리 사신은 《그렇다고 하여도 관백의 행차를 구경하지 않겠다. 우리는 관백의 차후행동을 지켜볼뿐이다.》고 강경한 대답을 주었다.

우리 사신이 왜국에 머물러있은지 5개월이 되는 어느날 왜중 겐소가 우리 나라 사신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우리 일본이 한번 뛰여넘어 곧추 명나라로 들어가서 중국 400여주를 우리 나라의 풍속으로 바꾸고 우리 수도의 정치와 교화를 실시할것이다. 귀국이 앞장서서 달려와 조회하는것은 장래를 생각함과 아울러 가까운 재난을 면하는 길이다. 내가 명나라에 쳐들어가는 날에 군사를 거느리고 우리 편을 따라온다면 선린관계의 동맹을 할수 있을것이다.》

이 편지는 겐소가 관백의 말을 그대로 옮긴것이다. 이렇게 왜놈들은 우리 나라를 저들의 속국처럼 대하면서 오만방자하게도 협박과 공갈로 나왔다. 지어는 우리 조선임금을 《각하가 토산물을 가지고들어와 입조할것이다.》라고 우리 나라를 심히 릉멸하였다.

입조라는것은 속국이나 제후국의 왕과 신하가 종주국에 들어가 머리를 숙이고 조회에 참가한다는 말이다. 우리 임금을 《전하》라고 호칭해야 하나 《각하》라고 불러서 우리 임금을 여지없이 깎아내리였다.

우리 나라 사신일행이 돌아오는 날로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언동이 산과 들을 넘나드는 바람처럼 온 나라에 쫘악 퍼져돌았다.

조헌이 그 소식을 듣고 너무나 통분하고 격분하여 몸부림쳤다.

이것은 그 누가 감히 지어낼수도 보탤수도 없는 엄중하고 심각한 소문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리 없고 구름이 자주 끼면 비가 안올리 없다.

조헌은 완기를 급히 한성으로 보내여 안세희를 만나 그 모든것이 사실인가를 알아보게 하였다. 했더니 바람탄 산불마냥 온 나라에 무섭게 퍼지고있는 소문이 어느 하나도 그른데가 없었다. 왜나라에 갔던 사신들이 임금께 아뢰인 내용 그대로였다.

안세희는 임금이 조정의 문무관리들과 함께 사신들을 만나볼 때 말석이나마 그자리에 참가했었기때문에 그때에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을 직접 보고들었던것이다.

조헌은 왜놈들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는 시각이 목전에 닿았다는것을 온몸으로 느껴안았다.

(나라를 지켜야 한다. 백성들을 피비린 왜놈들의 칼아래에서 구원해야 한다. 사랑하는 조상의 땅을 금성탕지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는 지난해 옥천군수 구만석에게도 《인자무적》을 긴히 당부하였었고 관찰사 리성중에게도 왜놈들을 방비할데 대하여 절절히 편지하였었다. 하지만 어제나 오늘에나 아무런 차이도 없이 그들은 일신의 부귀영달을 꿈꾸고있었다.

임금께 나라의 위급함을 한시바삐 깨우쳐드려야 하겠는데 자기로서는 또다시 상소할수 없었다. 어떻게 할것인가. 불안은 불안을 더해주고 초조함은 초조함을 더해주어서 그는 애간장을 태웠다. 헌데 설상가상격으로 귀중한 안해마저 중병에 시달리고있었다.

부인은 정암수가 다녀간 뒤에 시름시름 앓더니 이즈막에 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조헌은 안해의 머리맡에서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다. 마천령의 송익필형제가 주었던 곰열과 사향, 또 정암수가 주고간 산삼과 인삼을 매일 달여서 복용시키고 명의라고 소문난 의원들을 데려다가 며칠씩 묵이면서 치료케 하였으나 신씨의 병은 하루하루 기울어져갔다.

신씨는 남편이 숟가락으로 떠넣어주는 약물이 산삼을 달인 물이라는것을 알고는 더 먹으려 하지 않았다.

《어른께서 몸보신을 하시라고 죽산선생이 가져온 산삼과 인삼을 들지 않으시고… 긴히 쓸데가 있다고 아껴두신것이 아니오이까. 저는 죽으면 죽었지 먹을수가 없소이다.》

안해의 움푹 꺼진 눈확에서 맑은 눈물이 소리없이 솟아올랐다.

조헌은 그 눈물을 따스한 맨손으로 가만히 쓸어 닦았다.

《이 산삼과 인삼은 부인에게 요긴히 쓰려고 귀히 간직하였던거요. 자, 그러지 말구 어서 드우.》 하고 정겹게 그의 입술에 숟가락을 가져갔다.

신씨는 머리를 가로 흔들면서 입을 다물었다.

《아니오이다. 이 인삼과 산삼은 야장간을 차려놓고 병쟁기를 만들어 왜놈들을 족쳐버리는 일에 쓰려는줄 제가 알고있소이다.》

신씨의 조갈든 두입술사이에서 이같은 말이 간신히 새여나왔다.

그는 잠시 숨을 톺아쉬다가 남편을 이윽토록 올려다보았다.

《이 산삼과 인삼으로 저 하나를 살려내기보다… 고을백성들을 살려내는데 쓰는것이 더 긴한 일인줄 아오이다.》

신씨는 나라걱정으로 심뇌하고 그 대책을 찾느라고 제 한몸을 깡그리 불태워가는 남편을 돕지 못해 늘 머리를 썩여왔었다. 그는 남편이 여러차례 상소문을 쓸 때마다 벼루에 먹을 갈아주군 하였다. 남편의 상소문을 임금이 받아들이였으면, 그리하여 바른말이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보약이 되고 왜놈들을 쳐물리치는 창과 칼이 되였으면 하고 심혼을 다 기울여 바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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