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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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두달동안 평안북도와 자강도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를 보좌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평양대극장을 찾으시였다. 그동안 대극장에서는 연주가들이 그이께서 주신 과업대로 가요 《눈이 내린다》를 3관편성관현악으로 새롭게 형상하고 그이의 지도를 기다리고있었다.

무대의 배경막에서도 백두의 흰눈이 소리없이 내리고있었다. 그 흰눈이 싣고온 은은한 선률이 극장안에 울리기 시작했다. 배경막의 흰눈과 대조를 이루려는듯 검은색의상을 입은 연주가들이 바이올린의 선을 활로 긋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관현악을 깊은 심연의 세계에 잠겨 들으시다가 앞차대에 놓인 가방에서 주현희가 올린 편지를 꺼내여 펼쳐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신인하를 통하여 혜산사태에 대하여 이미 알고계시였다.

《혁명전통의 폭을 상하좌우로 넓히라》, 《흰 대리석으로 기발형태만 세우라》, 지어 주대성을 대기념비창작에서 제명시킨 문제, 주현희와 리석의 충돌이 가져온 사랑의 결렬…

관현악의 선률을 들으시는 그이의 사색은 백두의 밀림으로 날고계시였다.

추억의 걸음으로 흰눈이 내리는 가림천기슭을 거니시는 그이의 귀전에 주현희의 절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는 어린시절부터 유화 보천보의 홰불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장차 미술가가 될 꿈을 키웠으며 대학을 졸업한 후 미술교원이 되였습니다. 저의 마음속에 있는 보천보는 충천하는 불길을 배경으로 한손에는 군모를 쥐시고 주먹을 높이 들고 연설하시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존귀하신 영상과 휘날리는 붉은기, 기관단총을 틀어잡고 장군님의 신변을 지켜선 유격대원의 모습입니다.

김일성장군님을 환영하여 달려나온 삿대를 쥔 류벌공, 만세를 부르는 청장년들, 채 입지 못한 옷에 팔을 끼며 달려오는 어린 소년, 백발의 할머니, 이것이 오늘도 저의 마음속에 간직된 보천보인민들의 모습입니다. 여기에는 쇠스랑이며 호미, 낫을 든 인민들은 없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처녀교원 주현희의 진정이 담긴 소박한 목소리에 믿음이 가시였고 고마움으로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아울러 백옥같은 처녀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직권에 맹종맹동한 리석이에 대한 노여움은 쉬이 삭일수 없으시였다. 자본주의세계에서 남녀간의 사랑은 돈의 롱락물이지만 우리 시대 청년들의 사랑은 사상과 신념을 함께 한 참다운 동지적사랑이다. 하다면 주현희와 리석의 사랑은 열매를 맺지 못한채 시들어버린 꽃으로 되여야 하는가.

주현희의 편지를 가방에 넣으시는 그이의 마음은 무거우시였다.

그이의 옆에 가요 《눈이 내린다》를 작곡한 후리후리한 키꼴에 검은색닫긴깃양복차림을 한 음악가동맹위원장 리면상이 수첩을 들고 앉아있었다. 그의 초조한 눈빛은 시험장에 나선 수험생을 방불케 했다.

연주가 끝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리면상을 돌아보시였다.

《선생님,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어서

리면상이 엉거주춤하며 일어서려는것을 그이께서 팔을 잡아 앉히시였다. 자리에 앉은 리면상은 가요 《눈이 내린다》의 곡상을 두고 하실 그이의 가르치심을 예상하며 펼쳐든 수첩에 눈길을 떨구었다.

《선생님에게서 추억에 남을 사랑은 무엇이였습니까?》

이것은 전혀 뜻밖의 질문이였다. 더우기 극장에서 관현악의 시연회를 보신 후에 사랑문제를 화제에 올리시니 사람들속에서 곧은배기라는 평판을 받는 리면상으로서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총각때는 처녀에 대한 사랑, 가정을 이룬 후에는 안해에 대한 사랑, 아들딸이 생긴 후에는 자식에 대한 사랑, 옳습니까?》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아니, 옳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손을 저으시며 미소하시였다.

《아닙니다. 리면상선생님이 제일 사랑하신건 눈입니다. 그것도 백두의 흰눈!》

그이의 말씀에 리면상의 심장은 후두둑 뛰였다. 자기로서는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모란봉언덕의 숫눈길에 찍혀지던 자신의 발자욱을 생각했다.

사실 리면상은 한생을 창작밖에 모르는 작곡가였다. 그에게서 첫째가는 사랑은 노래였다. 하나의 선률을 찾기 위하여 때로는 때식마저 건늬며 피아노앞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을 맞군 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러나 가요 《눈이 내린다》에는 례사롭지 않은 사연이 있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저녁이였다. 창밖으로 내리는 흰눈을 바라보며 퇴근시간이 퍼그나 지나도록 사색에 잠겼던 리면상은 뜻밖에도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그이께서도 그밤 눈내리는 창밖을 내다보시며 지나온 나날에 대한 추억에, 떠나간 동지들에 대한 생각에 가슴이 미여지시여 음악가동맹에 전화를 거시였던것이다.

그러나 정작 음악가를 마주하시니 심중에 가득 쌓였던 이야기를 다 할수 없으시였다. 혈전의 만단추억을 펼쳐놓으시기에는 시간이 너무도 짧았던가 수령님께서는 리면상과 김이 문문 피여오르는 숭늉을 함께 나누시며 이렇게 눈내리는 밤이면 백두산시절이 못견디게 떠올라 선생을 찾았다고 하시고는 잊을수 없는 추억을 더듬으시다가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수령님과 헤여진 리면상이 불밝은 거리에 나서 집으로 오는데 어느한 아빠트에서 아기를 안은 젊은 녀인이 베란다에 나와 눈내리는 거리를 보여주고있었다. 그 모습이 음악가에게 서정깊은 선률을 불러왔다.

빨찌산이야기로 잠 못드는것만같은 불밝은 창가들, 이 나라 빨찌산들의 념원이 꽃핀 락원의 거리에 밤깊도록 내리고내리는 눈송이, 눈송이

그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니 온 가정이 걱정하며 창작실에 알아보았다. 퇴근한지 오랜데 집에 가지 않았다니 창작실에서도 소동이 일었다. 혹시 퇴근길에 무슨 사고가 나지 않았는가 하여 가족들은 리면상과 안면이 있는 시인들이며 작곡가들의 집까지 찾아다니였다.

바로 그때 리면상은 모란봉에 올라가있었다. 심장의 벽을 두드리는 곡상을 무르익히기 위한 음악가의 발걸음은 대동강반을 거쳐 모란봉으로 이어졌던것이다. 발목까지 빠지는 숫눈길을 걸으며 리면상은 백두의 흰눈을 그려보았다. 주머니에는 오선지와 연필이 없었다. 리면상은 손가락으로 수북이 쌓인 눈우에 악보를 찍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여 세상에 나온것이 가요 《눈이 내린다》였다.

친애하는 그이께서 리면상이 제일 사랑한것은 눈이였다고 말씀하시자 그날의 추억이 새삼스레 떠올라 눈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백두의 흰눈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없이는 지금과 같은 명곡을 오선지에 담을수 없습니다. 이것은 재능의 산물이 아니라 창작가의 불타는 심장이 낳은 귀중한 창조물입니다.》

《지나친 과찬이십니다.》

《아니, 난 오늘 이 연주를 들으며 사랑에 대하여 많은걸 느끼고 배웠습니다. 선생님, 어떻습니까? 관현악으로 편곡하여 형상한것이 마음에 듭니까? 선생님의 고심어린 탐구가 가꾼 열매인데 어디 말씀해주십시오.》

《정말 잘합니다.》

《아니, 기탄없이 말씀해주십시오.》

《사실 지금껏 이 노래는 독창곡과 독주곡으로 형상되였습니다. 그런데 관현악으로 형상하니 작곡가인 저도 제가 작곡한 노래가 아니라 새로운 음악을 감상하는 심정입니다. 제가 지은 노래가 옳은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김정일동지의 안광에는 가벼운 미소가 흘렀다.

《선생님은 참 마음이 후한 시험관이군요.》

그이께서는 손짓으로 지휘자를 찾으시였다.

《지휘자동무, 다시 들어봅시다.》

《알겠습니다.》

극장안엔 다시 《눈이 내린다》의 선률이 울리기 시작했다.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시고 눈을 감으신채 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지휘자동무, 세번째소절에서 화음이 왜 불안정합니까?》

《세번째소절에서 말입니까?》

《듣지 못한게구만.》

그이께서는 손끝으로 앞차대를 치시며 박자를 가늠하시다가 말씀하셨다.

눈이 내린다의 연주는 흰눈세계의 철학적심오성으로 일관되여야 합니다. 그 철학적심오성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동무들은 그저 순결무구한 흰눈만 눈앞에 그려보지 말고 그 흰눈의 바다우에 날리는 붉은기, 우리 항일혁명선렬들이 추켜들고나가던 붉은기를 떠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뚜렷한 대조속에 작품이 안고있는 사상주제가 관통됩니다.》

리면상이며 지휘자 그리고 극장의 일군들이 그이의 말씀을 속기할 생각마저 잊고 경탄의 눈길들만 서로 주고받았다.

《작곡가선생이 방금 자신이 작곡한 노래가 아니라 딴 노래를 듣는것같다고 했는데 나는 다른 의미에서 그 말을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했던 눈이 내린다가 아닙니다. 왜 그런가? 그건 연주가들의 심장이 눈내리는 백두밀림과 함께 호흡하지 않고있기때문입니다.》

그이께서는 리면상을 돌아보시였다.

《선생님, 연주가들이 선생님을 찾아와 눈에 대한 철학을 물어본 일이 있습니까?》

《연주가들과는 창작얘기를 나누지 못했고 지휘자동무하고만 형상문제를 가지고 론의해봤댔습니다.》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두팔을 앞가슴에 모두신채 극장안을 천천히 거니시였다.

《내가 왜 위원장선생에게 사랑문제를 문의했는가, 그건 이 곡이 담고있는 백두의 흰눈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페부로 느끼지 않고는 형상을 할수 없다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가요 눈이 내린다에는 항일의 혈전만리, 그 자욱자욱에 새겨진 불멸의 력사가 담겨져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연주가들은 눈도 마음도 백두밀림의 흰눈이 아니라 악보에 가있습니다. 그러니 활로 바이올린선을 긋는것도 기계의 움직임과 같습니다. 연주는 심장의 강렬한 웨침으로 울려야 사람들의 심금을 틀어잡을수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무대를 이윽히 보시였다.

《무대도 백두밀림이 되여야 관중을 백두의 세계에 심취시킬수 있습니다.》

《제가 형상지도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지휘자가 두손을 만지작이며 안절부절못했다. 그 말에 김정일동지께서는 허공을 베여내듯 손길을 홱 내리그으시였다.

《가요 눈이 내린다는 확실히 명곡입니다. 그런데 창작된지 한해가 지나도록 응당한 빛을 보지 못하고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 노래를 관현악으로 형상하도록 했는지 그 뜻을 알아야 합니다. 백두의 정신은 조선의 신념이고 넋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 노래의 형상을 중시하는겁니다.》

작곡가도 지휘자도 그리고 연주가들도 새로운 음악세계가 태동하고있는 그이의 예지로운 안광을 황홀하게 우러러보았다.

《건축에서 설계가 아무리 잘되였다 해도 시공이 잘못되면 훌륭한 집을 지을수 없듯이 곡이 아무리 좋아도 형상을 잘못하면 작곡가의 고심어린 탑이 순간에 허물어지게 됩니다.》

그이께서는 문득 《인민영웅탑》이라는 대기념비의 이름을 내세우며 혁명전통의 폭을 상하좌우로 넓혀야 한다는자들의 책동을 되새기시면서 준절한 어조로 밀씀을 이으시였다.

《지금까지 어떤 사람들은 사대주의, 교조주의에 빠져 교향곡1번이요, 2번이요, 바이올린쏘나타요 하면서 외국의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우리 인민의 기호와 구미에도 맞지 않는 기악곡을 형상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우리는 음악예술도 주체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민족적형식에 사회주의적내용!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찌기 내놓으신 우리 식의 문학예술건설사상이고 로선입니다.

혁명과 건설을 오직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대로! 나는 이것을 주장합니다. 우리 혁명도 우리의 혁명적예술도 나아갈 길은 오직 이 한길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교향곡도 눈이 내린다와 같은 우리의 명곡을 우리 식으로 형상하면 인민대중에게 커다란 사상정신적량식을 주는 진실로 고상한 예술로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 《눈이 내린다》의 형상과 관련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고 대극장을 나서실 때는 려명이 밝아오는 아침이였다. 겹쌓인 피로로 피발이 내배인 그이의 안광을 우러르며 창작가들은 잠시라도 쉬실것을 간청드리였다. 하지만 그 시각 그이의 마음은 대기념비건설장인 혜산으로 달리고계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에 오르시여 가방속에서 주현희가 올린 편지를 다시 꺼내여 펼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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