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2 장

정사가 부패하면 성돌이 썩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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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암수는 자기를 뉘우쳤다.

(나는 왜 조헌이처럼 생각지 못했는가. 조헌이 바로 이런 사람이였기에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제 한몸을 돌보지 않고 위험한 상소를 올렸구나.) 하는 자격지심이 끓어올랐다.

《중봉선생의 덕행에 소생은 또 한번 감복되오이다.》

《원 참, 과찬의 말씀이오이다. 삼녀야 너도 어서 절을 드려라.》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있던 삼녀는 정암수앞에 술을 붓고 아뢰였다.

《우리 아버님을 험지사지판에서 나오게 하신 나리님께 큰절을 드리나이다.》

삼녀는 새색시답게 쪽진머리를 깊이 수그리면서 엎드리였다.

《허, 따님이 집난이였소그려.》

《얼마전에 시집을 보냈소이다.》

《소생이 미리 알았던들 무엇을 좀 마련해보낼걸.》

《고맙소이다. 동네사람들이 성의껏 도와주어 그런대로 혼례를 치르었소이다. 삼녀는 얼른 더운 국을 떠들여오도록 해라.》

조헌은 삼녀가 해동이처럼 자기 래력을 이야기하고 시집까지 보내준 은혜를 말할가봐 삼녀를 물러나게 하였다.

《아니, 가만 계시오이다. 따님이 나에게 과남한 인사말을 하였는데 소생이 대답하지 않으면 교만하다는 루명을 쓰게 되리다. 하하하. 집난이는 방금 험지사지판에서 아버님을 놓여나오게 했다고 말하였는데 그건 집난이가 모르고 한 소리요. 중봉선생은 응당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만한분이시오. 나에게만 고맙다는 말을 마오. 하하하.》

삼녀가 고개를 숙인채 무슨 말을 여쭐듯하자 조헌이 앞질러 막았다.

《이제는 국을 들여보내거라. 그리고 너희들은 저녁을 빨리 먹고 오늘도 무술을 익혀야지. 죽산선생이랑 함께 구경을 하리니 그리 알거라.》

《예, 알겠소이다.》

완기와 해동이, 삼녀가 일제히 대답하였다. 정암수는 삼녀까지 대답하는것을 보고 놀라와하였다.

《집난이까지 무술을?!》

《집집마다, 온 나라 젊은이는 남자나 녀자나 다 무술을 익히면 그까짓 왜놈들이 다 무엇이리오.》

《그참, 오래간만에 가슴이 탁 트이는 말씀을 듣는구려. 하하하.》

《그건 그렇고, 죽산선생, 소생이 그동안 시골에 파묻혀 문밖세상에 깜깜이오니 여기로 오면서 보고들은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오이다.》

《그저 그 식이 장식이오이다. 몇백리 길을 오면서 보니 밭갈이하는 백성들보다 류랑걸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오이다. 성 쌓는데 나갔다가 병신이 되여 돌아오는 사람 또 성쌓으러 가는 사람들이 많았소이다. 한창 밭갈이철에 참말 어찌된 일인지…》

《소신이 상소문에 성을 보수하거나 새로 쌓아 왜적을 방비해야 한다고 했지만 농번기에는 성쌓기를 중지해야 한다고 하였소이다. 백성들이 농사를 짓지 못해 굶어죽으면 성이 있은들 무엇하리까? 간신무리들이 임금께 잘 보이기 위해서는 백성들이야 어찌되든 상관치 않으니 백성들이 누구를 믿고 살아가겠소이까. 민심을 잃으면 백성을 잃고 나라를 잃기마련이오이다. 왜놈들을 막아내는 성은 돌로 쌓은 성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쌓은 성이오이다. 정사가 부패하면 성돌이 썩기마련이지요.》

《그참, 명언명담이오이다. 송강 정철대감이 들으면 좋은 시를 써냈으렸만… 송강선생이 언제야 돌아오겠는지…》 하며 정암수는 탄식하듯 한숨을 내그었다. 정철은 1585년에 벼슬에서 파직되여 창평시골로 내려가있었던것이다.

《아니 그럼 그분이 돌아오지 못하였소이까?》

《글쎄 돌아오기야 했었지요. 바로 중봉선생이 귀양지에서 풀려나던 재작년에 송강은 조정에 다시 올라와 우의정으로, 지난해에는 좌의정까지 승진되였다가 또다시 당파에 몰리워 파직, 귀양갔소이다. 지금은 강계귀양지의 위리(가시울타리)속에 갇혀있다고 하오이다.》

조헌은 너무나 놀라와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못하였다. 나라와 백성들이야 어찌되든 권력쟁탈전으로 피눈이 된 간신들이야말로 나라의 역신들이다. 조헌의 두눈에는 격분의 불길이 숯불처럼 타올랐다.

《너무 상심마시오이다. 송강이 귀양지에서 풀려날 때가 오겠지요. 송강은 중봉선생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니 어느때든지 선생을 찾아오리라고 믿어지오이다. 허허…》

《만약 송강 정철이 여기에 온다 하면 성쌓기에 내몰려 봄철에 논밭을 묵이는 백성들의 피눈물을 보게 되리다. 성돌 하나하나가 우리 백성들 하나하나로 되여야 왜적을 막을수 있다고, 그런데 그 백성들이 굶주려 쓰러지고있다고 통탄하는 시를 지어 간신무리들을 절규하리다.》

《그참, 훌륭하오이다. 시는 벌써 중봉선생이 다 쓰신 셈이오이다. 하하하.》

《아니, 그런 말씀마시오. 송강선생이야말로 같은 내용이라 해도 주옥같은 시어들을 골라 천금같은 시를 지어내실터인데… 소인은 그런 시재가 못되오이다.》

초저녁달이 사랑채 지붕우에 떠올랐다. 그들은 술상을 물리고 밖으로 나갔다. 완기, 해동, 삼녀들의 무술을 구경하려는것이다.

잠시후에 무술훈련이 시작되였다. 번개같이 앞손찌르기와 뒤손찌르기, 비호같이 달려들어 앞발차기와 뒤발차기, 룡과 같이 치솟아올라내리며 모둠발로 상대를 찧기, 회오리바람처럼 휘돌아내리며 좌우상대를 휩쓸어눕히기… 번개가 일고 벼락이 떨어지고 무진장한 힘과 슬기로움이 번쩍번쩍 엇갈리고 소용돌이치는 광경이였다.

정암수는 완기와 해동이, 남복을 입은 삼녀가 영용하고도 대담무쌍한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무한히 감동하여 자신을 잊고 바라보았다. 아아, 저렇게 온 나라 젊은이들이 왜적을 친다면야 왜적이 백만인들, 천만인들 무슨 걱정이랴 하고 눈물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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