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2 장

정사가 부패하면 성돌이 썩는다

3

(1)

 

령규스님은 연안성으로 떠나가는 덕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도록 바래주었다. 그는 조헌이처럼 나라가 근심되고 백성들이 걱정되여 불가의 교리대로 나라를 일으켜세울수는 없을가 하고 늘 생각하였다.

나라에서 국교로 정한 유교로는 나라를 결코 바로잡을수 없다는것을 점차 느끼게 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살려낼 희망이 없다는것을 지금의 현실을 두고 얼마든지 증명해낼수 있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불교로는? 이에 대하여서도 확고한 대답을 찾을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그는 유교를 따르는 조헌과 불교를 믿는 자기가 서로 신앙은 다르지만 나라와 백성을 위하고 왜놈들을 미워하는것은 하나같아서 조헌에 대한 친근감이 오랜 지우와 같이 찾아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바로 그 조헌이라는 선비가 마천령에서 호환을 당할번한 자기를 구원하여주었다는것을 알게 되여 더구나 피를 나는 혈육처럼 그리운 정이 가슴에 그득히 차올랐다. 사람이 호랑이를 만나면 당장 위험에 처한 사람이야 어찌되든 저부터 살려고 몸을 도사리는것이 례상사이지만 이 사람은 제몸을 돌보지 않고 호랑이앞으로 뛰여들지 않았던가. 설음많고 고생많은 귀양길에 안해마저 역병으로 위급하여 설상가상으로 시련과 고통이 겹친 때에 그것을 잊고 그와 같이 행하기란 쉽지 않은것이다. 사람이 이러하기에 자기 한몸보다 나라가 걱정되여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임금께 상소를 올리지 않았는가. 허지만 그는 벼슬도 파면되고 지금은 백면서생으로 시골에 파묻혀있다.

(아, 바르지 못한 세상에서는 바른것이 화가 되는고나.)

령규는 길게 탄식하였다.

그는 본래 경상도 동래에서 태여난 사람이다. 속성은 박(朴)이고 호는 기허당이다.

젊어서는 동래첨사밑에서 어느 자그마한 섬을 맡아지키는 권관벼슬에 있었다. 이 섬에는 사람이 살고있지 않지만 소나무가 무성하고 기이한 바위들과 깨끗한 백사장이 있어서 경치가 좋았다. 고을 량반들이 이따금 기생들을 데리고와서 시회(시를 짓는 모임)를 열기도 하고 춤과 노래가 진할 때까지 지화자 좋다를 부르다가 돌아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권관 박세호(병규의 본래이름)는 그런 자리에 한번도 섞이지 않았었다.

이 섬은 우리의 고기배와 왜놈들의 무역배가 동래포구로 드나드는 길목에 있어서 관문이나 다름없었다.

교활한 왜놈들이 밀선을 타고 도적고양이처럼 밤에 혹은 안개낀 새벽에 기여들어 우리 군사들을 해치는 때가 많았다.

권관 박세호가 제일 통분스럽게 생각하는것은 왜놈들의 무역배가 해마다 늘어나 우리 나라의 쌀과 무명, 명주, 비단, 베천 그리고 인삼, 동, 철 같은 귀중한 재부를 헐값으로 빼앗아가는것이였다. 왜놈들이 가지고오는것은 장신구, 거울, 사기그릇, 반짝거리는 구슬, 번쩍거리는 놋쇠쟁반 같은 기호품들이였다. 이런것들은 백성들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는것이고 량반관리들이나 좋아할것들이였다.

한번 우리 나라에 들어온 왜놈들의 장사배들은 열흘, 스무날씩이나 머물러있다가 돌아갔다. 어떤 때에는 배를 수리해야 되겠다고 하고 또 선원들이 병을 만났다고 하고 이런저런 구실을 핑게대면서 한달이 넘도록 돌아가지 않는 일도 많았다. 이놈들이 먹을것이 없으면 돌아가기마련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동안 흰쌀과 부식물까지 넉넉히 대주는 까닭에 좋아라 하고 돌아갈 날을 무한정 늦잡는것이였다.

왜놈들이 타고온 작은 배일지라도 서른놈이 넘고 큰 배는 쉰놈이나 되였다. 이런 놈들이 한잠 자고난 누에가 뽕잎에 달라붙어 모조리 없애치우듯이 소중한 우리 나라 식량을 공짜로 먹어대는것이다. 우리 백성들은 먹을것이 없고 입을것이 없어서 허덕이는데 저 교활한 왜놈들의 구복까지 채워주어야 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왜놈들이 1510(경오)년에 삼포왜란을 일으켰다가 우리 나라의 호된 징벌을 받고 부복사죄하였지만 교활무쌍한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그때 왜놈들과 맺은 《임신약조》에는 왜인들이 지금껏 우리 나라에 건너와 눌러살던 삼포거류지를 철페한다는것과 우리 나라에 새로 건너오는 왜인들은 왜관의 울타리밖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 왜나라의 사신배와 장사배는 그전의 절반으로 규정하고 인원수도 절반으로 한정하였다. 뿐만아니라 우리 나라에 온 왜인들은 우리 나라 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조항을 쪼아박았다.

그러나 수십년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임신약조》는 허울만 남았다. 왜놈들은 조약의 내용을 야금야금 쥐쏠듯 하고 근래에 와서는 우리가 제놈들의 위법행위를 단속하면 오히려 제편에서 삿대질을 해온다. 이것은 우리 나라가 왜놈들에 대하여 선린관계요, 화친이요 하면서 강경하게 대처하지 못한데 있었다.

박세호는 날이 갈수록 왜놈들이 가증스러웠고 조정의 무맥하고 어리석은 처사에 늘 불만스러웠다.

어느해인가 바다가 잔잔하고 시원한 해풍을 반기듯 흰 갈매기들이 너흘너흘 날아들던 여름철 한낮이였다. 동래포구에서 배전이 넘쳐나도록 쌀섬을 싣고나오던 왜놈장사배 하나가 섬앞에 이르러 닻을 내리웠다.

권관 박세호는 변방장수답게 전복과 전립을 갖추고 말우에 앉아서 왜놈들의 일거일동을 주시해보았다. 그의 좌우에 벌려 서있는 군사들도 창을 세워잡고 경각성있게 왜놈들을 노려보고있었다. 교활한 왜놈들이 왜 지나가지 않고 섬앞에서 닻을 내리우는가. 놈들이 오늘은 또 무슨 구실을 가지고 섬에 기여들려 할는지 알수 없는것이다.

지난 봄에는 이 섬의 샘물이 좋다는데 물을 좀 길어가자고 하면서 그 값으로 명나라산 비단 한필을 내놓았다. 그때 박세호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물이 아까와서가 아니였다. 오직 이 섬에 왜놈들을 들여놓을수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렇게 쫓겨갔던 놈들이 오늘 또 큰배의 꼬리에 달고다니는 전마선에 중소만한 송아지를 싣고 여러놈들이 노를 저어 섬을 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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