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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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성은 건설장 지휘부천막안에 여러개의 기념탑형성안들을 주런이 세우고있었다. 볼수록 붉은기를 중심으로 세운 조각군상형성도안이 제일 눈길을 끌었다. 리석이가 머리며 양복에 묻은 비방울을 털며 들어서더니 이제 황유탁이 나온다며 천막안의 의자들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리석동무, 이 붉은기를 중심으로 한 형성도안이 볼수록 맘을 끄누만.》

《아마 기념비상무에서도 두손들어 찬성할거요.》

강마른 체소한 몸매의 박가의 안내를 받으며 황유탁이 요란스레 헛기침을 터치면서 들어왔다. 그뒤로 조각가, 설계가들이 따라섰다.

황유탁은 저쪽에 놓인 책상쪽으로 다가가 들고온 가방을 놓고는 의자에 앉았다. 좌석이 정돈되자 설계실 박동무가 지시봉으로 형성도안들을 짚어가며 설명했다.

《이렇게 제출된 기념비형성도안들에는 각기 우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밤 설계가들과 조각가들의 협의회에서는 바로 붉은기를 중심으로 한 이 형성안을 모체로 총설계를 완성하자는 합의를 보았습니다.》

《기발을 중심으로 조각군상을 형상한건 아주 기발한 착상인데…》

황유탁은 코밑을 장지손가락으로 슬슬 쓸며 환한 미소를 피워올렸다.

《좋소, 좋아. 조형적으로도 볼맛이 있구…》

《기발을 중심으로 조각군상을 형상한건 리석동무와 주대성동무의 착상입니다. 붉은기를 형상하니 기념비의 사상주제적과제가 명백해졌습니다.》

훌쭉 패인 두볼의 광대가 류달리 두드러진 안경쟁이가 흘러내린 안경테를 추슬러올리며 손끝으로 책상을 도닥였다.

《붉은기라? 그걸 세우자면 붉은 화강석이 있어야겠는데 우리 나라에는 흰 대리석밖에 없지 않소?》

《원, 별걱정.》

황유탁은 애초에 붉은기를 중심으로 한 기념비전경도는 심기에 뒤틀렸다. 김도만이 기념비기발은 흰 대리석으로 형태만 세워도 된다고 오금을 박았기때문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로 보아 무작정 작두질해서는 안된다고 속구구했다. 그래서 겉으로 지지표를 던지고는 속검은 화살표의 방향을 돌리였다.

《흰 대리석으로 기발형태를 세워놓으면 되는거지 무슨 그림이라구 빨갛소, 하얗소 하겠소. 문제는 색갈에 있는게 아니구 조각군상에 대한 형상인데… 리석동무, 조각군상들은 물론 화강석으로 하겠지?》

《좋기는 동조각이 리상적입니다.》

《허, 귀한 동을 어떻게 조각에까지 쓰겠소. 다른 나라에선 레닌이나 쳐칠두 화강석으로 조각하지 않았소.》

《대체로 반신상들인데 화강석으로 한것도 있습니다.》

《그게 세계적인 추세요. 우리도 추세를 따라야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남포제련소(당시) 로동계급은 1 200㎢에 달하는 건물을 새로 짓고 대기념비조각군상에 쓸 순동과 전기동, 주석, 아연 등 소재들을 생산하기 위한 전투를 불철주야로 벌리고있었다. 김도만은 이것을 알고있었지만 세계적추세요, 뭐요 하며 황유탁에게 기념비조각군상들을 화강석으로 하도록 못을 박았던것이다.

황유탁은 깍지낀 두손에 축 처진 볼을 쓸며 전경도들을 시답잖은 눈길로 살폈다. 그는 김도만이 강조했던 문제들을 상기하며 헛기침을 터쳤다.

《에, 지금 〈인민영웅탑〉형성안에서 가장 걸린 고리는 뭔가? 리석동무, 뭐가 문젠것 같소?》

리석은 방금까지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발을 넘실거리던 황유탁이 갑자기 정색해서 날을 세우자 의아해서 머리를 기웃했다.

《가늠이 안간다? 그럴수 있지. 그럼 묻기요. 조각군상엔 어떤 사람들을 형상하오? 빨찌산들 그리구 또…》

《조국에 진군한 유격대원들을 환영하는 보천보인민들을 형상하려고 합니다.》

《그게 다요?》

《예》

《그러니…》

황유탁이 제사 답답하다는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동무네 보라, 얼마나 시야가 좁은가. 지금 건립하는게 무슨 탑이요? 〈인민영웅탑〉이 아닌가. 그런데 내용에선 노란자위가 쑥 뽑아졌거던. 그러니 무슨 〈인민영웅탑〉이요?》

주대성은 황유탁의 말을 두고 깊이 음미하기 시작했다. 탑의 노란자위란 뭔가? 그것은 명백히 붉은기가 아닌가 그런데 노란자위가 없다니? 주대성의 생각과 같은지 여기저기서 술렁대기 시작했다.

안경쟁이가 안경속의 눈알을 굴리며 비상신호를 보냈다.

《아, 아, 조용들 하오.》

황유탁이 얼굴에 다시 웃음발을 펴며 리석에게 눈길을 던졌다.

《리석동무, 이 탑에 항일무장투쟁과 국내혁명운동을 련결시킨 〈전통〉이나 길주, 명천농민운동이 반영되였소? 온통 유격대원들판이 아닌가. 그러니 어디 〈인민영웅탑〉이요? 빨찌산탑이지.》

주대성의 눈길은 리석을 응시했다. 그러나 리석은 고개를 짓숙이며 눈길을 떨구고있었다. 주대성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였다. 천막안에는 괴괴한 침묵이 무섭게 서렸을뿐 그것을 깨고 일어서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동무들이 외곬으로만 생각하니 전번에 제출했던 형성안보다 엄청나게 왜소해지고 탑의 품격이 아예 뚝 떨어지지 않았소?》

황유탁은 들고온 가방을 열며 빈입을 쩝쩝 다셨다.

《동무네 밤새워 수고하고는 욕벌이를 하누만.》

황유탁은 가방에서 모델을 소묘한 연필화들을 쳐들었다.

《보오, 이게 동무네가 그린 모델그림들이요. 이 쇠스랑을 든 로인은 리석동무가 그렸던가?》

리석이 엉거주춤 일어서며 《예.》 했다. 그것은 쇠스랑을 들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목천복로인을 형상한 연필화였다.

《김도만부장이 그러는데 박부위원장동지는 이 모델그림을 보며 대단히 만족해서 살아움직이는 사람같다고 했다오. 바로 여기 있는 이 모델들을 모두 〈인민영웅탑〉군상에 세우라는거요. 그래서 박부위원장동지가 직접 모델연필화들을 보고 모형사판을 만들게 한거요. 그러니 전번에 박부위원장동지가 보고 좋다고 한 그 모형사판대로 조각군상을 다시 형상해야겠소. 알겠소? 리석동무.》

황유탁은 일사천리로 자기의 견해를 미끈하게 피력했다고 생각했는지 담배를 붙여물었다. 김도만이가 지시한 말을 토 하나 빠뜨리지 않고 반복했던것이다.

순간 주대성이 《의견이 있습니다.》 하며 벌떡 일어섰다.

《동문 뭐야?》

안경쟁이가 눈살을 찌프리며 맞받아 일어서서 황유탁의 눈치를 보며 목에 피줄을 세웠다.

《지금 작품상의 문젤 론하고있는가? 정치적문제가 거론되고있는데 조각가가 뭘 안다구 의견이요, 뭐요 해?》

《아, 그러면 되나, 창작이란 자유인데. 말하오.》

황유탁이 손세까지 써가며 한수 늦춘다.

《거, 국내의 그 무슨 〈전통〉인지 뭔지 하는거랑 길주, 명천농민운동까지 형상하면 이 탑이 뭐가 됩니까? 오가잡탕이 되지 않습니까?》

《뭐야? 오가잡탕? 동무가 혁명전통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구 감히 삿대질이야! 엉?》

안경쟁이가 또 독기서린 눈알을 굴리는데 황유탁은 오히려 그를 돌아보며 버럭 성을 냈다.

《왜 큰소리요? 군중성없이! 이 동무들이 뭐 정치가요? 조각가지. 말하오, 대성동무.》

주대성은 황유탁의 야료에 결이 나서 열띤 어조로 웨쳤다.

《우린 백두산정에서 우리 혁명의 피줄기인 백두의 혁명전통을 영원히 빛내여야겠다는 필생의 신념을 간직했으며 바로 그날의 백두의 붉은기를 대기념비에 휘날려야겠다는 결심을 굳히였습니다. 그런데 보천보전투승리를 기념하여 세우는 대기념비에 쇠스랑과 호미자루를 다시 형상하라니 이게 오가잡탕이 아니고 뭡니까!》

주대성은 자기의 이 격한 심장의 폭발을 리석이 들으라고 웨쳤다.

《우리가 만약 이런 오가잡탕의 탑을 세운다면 인민들이 용서치 않을것입니다.》

버럭 성낼줄 알았던 황유탁이 뜻밖에도 삶은 호박인듯 흐물거리며 피우던 담배를 비벼껐다.

《그럼 내 하나 물어볼가? 이 탑의 이름이 뭐요?》

주대성은 대답대신 침묵으로 응수했다.

황유탁은 너그러운 눈빛으로 주대성을 보며 따지듯 다시 캐물었다.

《동무네가 저 전경도에 쓴것처럼 〈인민영웅탑〉이지? 헌즉 〈인민영웅탑〉에는 마땅히 인민이 형상되여야 할게 아니요? 인민을 형상하지 않은 탑이 〈인민영웅탑〉이 될수 있소?》

《그렇지만 우리는 력사적인 보천보전투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탑을 건립합니다. 탑의 이름이 〈인민영웅탑〉이라고 하여 쇠스랑 같은것이나 형상하면 후손들이 보천보전투를 어떻게 리해하겠습니까. 마치 쇠스랑을 든 인민들이 한것으로 형상의 각도가 달라지지 않습니까? 결국 보천보전투를 기념하여 세우는 탑이 아니라 그 무슨 농조투쟁을 반영한 탑이 되지 않겠습니까?》

주대성의 불을 토하듯하는 드센 반박에 황유탁의 눈살이 꼿꼿해졌다. 그는 앞상우에 팔굽을 곤두세우고 두손을 깍지끼면서 위협적인 눈길로 주대성을 치떠보았다.

《동무는 자기 사고가 액면적이라는 생각은 안들어? 에, 말이 난김에 한마디 더 하겠는데 동무네 창작에만 몰두하면서 학습도 잘하지 않는것같애. 수령님께서 교시하시지 않았소, 새 조국건설시기, 조국해방전쟁시기 또 전후복구건설시기의 영웅적투쟁을 가지고도 교양사업을 해야 한다고… 박부위원장두, 김도만부장두 바로 그래서 혁명전통의 폭을 상하좌우로 넓혀야 한다고 늘 강조하고있단 말이요. 계승해야 할 전통이 그만큼 풍부해지면 좋은 일이 아니겠소. 하기때문에 갑산동맹이나 길주, 명천농민운동말도 한거요. 이제 박부위원장동지가 조직했던 갑산지하조직투쟁기도 크게 소개될거요.》

황유탁은 반쯤 몸을 뒤로 젖히고 방금 한 말에 못질을 하듯 좌중을 휘둘러보았다.

랭기가 서린 그 눈매는 분명 《박부위원장이 이미 결론한 형성안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것은 찍어말하면 상부에 대한 도전이다. 당중앙위원회 지도부에서 결론한 문제에 삿대질하는건 비당적이며 반당적행위이다.》 라고 그루를 박고있었다.

황유탁은 안경쟁이가 내미는 차잔을 들고 마른 목을 추긴 후 빙그레 웃으며 리석을 향해 이상야릇한 눈길을 던지며 야유인지, 자화자찬인지 모를 소리로 못박았다.

《리석동무, 어떻소? 이젠 〈인민영웅탑〉형성안을 완성하는데서 선이 쭉 섰겠지?》

리석은 여전히 덤덤히 앉아있었다.

그때 주대성이 칼끝같은 눈빛으로 리석을 무섭게 치떠보았다. 리석은 그의 눈을 마주할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깨가 더욱 졸아드는것을 느끼였다. 언제부터 자기는 품고있는 생각조차 마음대로 터놓지 못하는 소인배가 되였는가. 리석이 역시 대기념비창작을 중단하고 쇠스랑이며 낫을 든 모델들을 형상하라고 했을 때 주대성과 같은 불만이였다. 그러나 그것이 이미 상부에서 결론된 문제라는데로부터 감히 창작가로서의 주견을 터치지 못했었다.

《창작가동무들과 좀더 토론을 해보겠습니다.》

그의 우유부단한 대답에 황유탁보다도 주대성이 《흥!》하는 코소리로 로골적인 질시를 보냈다.

두사람의 눈길이 비로소 부딪쳤다. 리석의 눈길에 자넨 어쩌자고 그러나? 이 황유탁이란 사람을 모른단 말인가, 자기와 엇나가는 반발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작두질하는 사람이야, 모난 돌이 정에 맞는다고 부디 그 뿔을 좀 내리우게 하는 걱정이 실렸다면 주대성의 눈길에는 혐오나 불만이 아니라 마치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언제인가의 인연을 찾아보려고 애쓰는 안타까움이 진하게 풍기고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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