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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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산나물을 뜯는구만.》

언제 오셨는지 수령님께서 미소를 짓고계시였다.

《어제 아침에 산나물국을 끓이라고 했댔소. 빨찌산때나 지금이나 그 맛은 변하지 않았더군.》

이어 수령님께서는 어제밤 《사회주의건설에서 군의 위치와 역할》을 다시 보았는데 거기에는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방향과 방도가 자자구구 다 밝혀져있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음… 과녁은 명백한데 왜 이 문제가 풀리지 않을가? 유격근거지에선 하루에 몇차례씩이나 왜놈들과 싸우면서도 전투가 끝나면 유격대원이고 인민들이고 모두 떨쳐나 땅을 걸구구 씨앗을 심어 식량을 해결했는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이야 오죽 조건이 좋나?》

《문제는 일군들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일군들이 군의 호주가 되여 앞채를 메고 진심을 바치면 인민생활문제는 풀릴것같습니다.》

《옳은 말이요. 군당이나 군인민위원회 일군들이 항일유격대지휘관들처럼 일하면 우리 인민들이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기와집에서 살수 있소. 내 그래서 일전에도 내각일군들에게 항일유격대원들의 투쟁기풍을 따라배우기 위한 교양사업에 모를 박으라고 말해줬소. 일군들부터가 항일유격대지휘관들처럼 살며 일하라고도 했구.》

항일유격대의 지휘관들처럼!

수령님의 교시는 김정일동지의 심장에 불씨가 되여 확 타올랐다.

수령님께서는 창성땅에서도 줄곧 소왕청과 처창즈를 생각하고계신다.

그때의 인민, 그때의 지휘관, 그때의 정신을 생각하시며 군이 잘살 길을 탐색하고계신다.

수령님께서는 곁에 있는 바위에 다가가 앉으시더니 초물신을 벗으시였다.

발등이 퉁퉁 부어있었다. 수령님께서 구두를 신으시면 발등이 부시길래 초물신을 만들어드렸는데 현지지도의 멀고 험한 길을 계속 걸으시니 그것도 별로 효험이 없었다. 수령님의 부어오른 발등을 보시는 김정일동지의 마음은 예리한 그 무엇으로 저미는듯 저려왔다.

수령님께서는 바위밑의 파란 길짱구잎을 뜯으시여 발등에 올려놓으신 후 초물신을 다시 신으시였다.

《이건 산에서 싸울 때 쓰던 빨찌산약이요. 인차 부은게 내릴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을 모시고 내가로 걸음을 옮기시며 산나물을 두고 《빨찌산나물》이라고 하던 할머니의 말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조용히 《빨찌산나물…》하시며 인민들은 하나의 나물을 두고도 항일전에 피흘린 빨찌산을 잊지 않고있는데 일군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근엄한 어조로 뇌이시였다.

《어렵고 힘겹긴 했어도 산에서 싸우던 때가 종종 그립소. 빨찌산때는 모두가 다 한마음한뜻이였댔는데…

참, 엊그제 내각사업을 토론하려고 김일동무가 왔다갔는데 얘기끝에 한 서너달전부터 산에서 싸우던 동무들이 림춘추를 주필자로 해가지고 달라붙어서 나의 항일혁명투쟁령도사라는것을 쓴다구 하더군. 그런 토론을 했댔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음을 다잡으시며 대답드리시였다.

《그렇습니다, 항일의 혁명전통에 그 무슨 〈전통〉을 뒤섞으려 하는 지금 절대로 미룰수 없습니다.》

《음…》

수령님께서는 잔물결이 치마주름을 펼치는 기슭을 보시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래서 책벌받을 각오까지 하고 나섰군.》

《서기장동지에게 이미 나간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하여〉의 증보판을 먼저 내자고 하였습니다. 초판을 낼 때 앞으로 수령님의 항일혁명투쟁령도사를 따로 집필하려고 요점적으로만 언급했던 문제들을 보다 상세히 전개하는 방향에서 증보판을 내자고 했는데 이미 출판인쇄되여 곧 발행됩니다.》

수령님께서는 저으기 놀라시며 돌아서시였다.

《그러니 벌써 해놓았구만.》

《한시도 미룰수 없었습니다. 초판이 나온 때로부터 지난 5년간 독자들이 보내오는 무수한 편지들도 다 수령님의 혁명활동을 더 구체적으로 써달라는 요구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음을 조이시며 사색깊은 걸음을 옮기시는 수령님을 따르시였다. 두분사이에는 오래도록 침묵만이 흘렀다.

이윽고 김정일동지께서 무거운 정적을 조용히 밀어제끼시였다.

《외무성에서도 수령님께 보고드렸지만 지금 수정주의자들의 책동으로 유럽에서는 선대수령들이 이룩한 혁명업적이 점차 말살되고 여기에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침투로 붉은기가 변색되여가고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깊은 상념에 잠기시여 무거운 걸음만 옮기고계시였다. 그러시다가 혼자말씀처럼 나직이 뇌이시였다.

《우리 나라에도 수정주의바람은 들어왔소.》

수령님의 한초, 한초의 침묵은 김정일동지에게 있어서 가슴이 조여드는 순간순간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오랜 침묵끝에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지금 세계정세가 복잡하오. 제국주의자들이 날뛰는것은 하나도 무서울게 없소. 문제는 사회주의진영이 단결되지 못하고있는것이요. 그것때문에 식민지민족해방운동과 윁남인민의 항전이 시련을 겪고 새로 독립한 나라들도 좌왕우왕하고있소.

우리 내부는 또 어떤가? 정세가 복잡할 때일수록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현정세에 대한 우리 당의 립장과 의지를 잘 알려주고 당정책관철에 불러일으켜야 하겠는데 사상사업이 그렇게 되지 못하고있거던. 이번에 〈로동신문〉에 〈자주성을 옹호하자〉라는 론설도 내보냈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안되오.

그래서 오는 10월에 당대표자회를 열고 우리 당의 견결한 반제자주의 사상, 통일단결의 사상, 투철한 국제주의정신을 선언하고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병진로선관철에로 다시한번 불러일으키자고 하는거요.》

수령님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시여 김정일동지를 마주하시였다.

《나를 내세우는 령도사보다도 우리 당의 혁명전통인 항일의 전통을 전면적으로 풍부하게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 앞으로 항일혁명투쟁사를 전면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큰 글을 써서 후대들에게 물려줄 필요가 있소. 몇사람의 회상기로가 아니라 한 10권정도 되는 력사문헌으로 편찬한다면 그 만고의 혈전사가 〈삼국사기〉나 어느 봉건왕조실록에 대겠소?

산에서 싸우던 동무들이 더 늙기 전에 회상도 하고 고증도 해줘야겠는데 안타깝게도 매번 정세가 허락치 않았소. 병진로선을 내놓으면서 7개년계획을 3년 연장하기로 하였는데 그걸 관철하자고 해도 그래, 당장 싸우는 윁남을 원조하자고 해도 그래 아직도 허리띠를 조여야 하오.》

수령님께서는 명상에 잠기시여 푸른 숲 설레이는 계곡을 이윽히 보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혁명의 만년대계를 위한 사업인데 현단계에서는 그 준비를 착실히 갖추어야 하오. 지금 하고있는 회상기들을 계속 내밀면서 경험을 쌓는것이 좋겠소.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나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가 얼마나 좋소!》

잡관목숲에서 불어오는 소슬바람에 수령님의 머리카락이 흩날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귀밑머리에 희여가는 한오리한오리의 머리카락을 아픈 심정으로 바라보시였다. 50대초반인 수령님께 그 누가, 그 무엇이 흰서리를 내리게 했는가! 세월의 흐름속에 자연이 가져온 흰서리인가? 저 흰서리에 수령님의 아픔과 로고가 얼마나 슴배여있는가!

상상을 초월하는 가시덤불길을 헤치시며 천추만대 불후할 업적을 쌓아올리신 우리 수령님께서는 오늘도 자신을 내세우는 일은 자그마한것이라도 절대 불허하시며 오직 동지들과 인민들만을 내세우시며 험한 산길을 걸으신다. 그런데 어제날 감옥밥 몇그릇에 전향문을 쓴 박금철은 자기의 그 무슨 《투쟁업적》을 내세우며 수령님께서 헤쳐오신 그 불멸의 자욱우에 자신의 그림자를 얹으려고 하고있다. 동상이몽, 양봉음위, 이것은 혁명을 배반하고 수령을 배신하는 두번째 전향이다. 이 두번째 전향에 단호한 철추를 내리지 않는다면… 한시도 미룰수 없고 또 일미리의 양보도 있어서는 안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 지금 당중앙위원회 요직에 있는 사람들은 보천보전투승리를 기념하여 혜산에 세우는 탑을 두고도 혁명전통의 폭을 상하좌우로 넓혀야 한다고 하면서 그 탑에 독립군이며 그 무슨 쟁의투쟁까지 넣으려 하고 사로청조직에는 《향토꾸리기》로 날라리풍을 조성하면서 구락부화하려고 책동하는가 하면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두고는 출판부수를 줄이고 배포를 못하게 강박하고있다고 분개하여 말씀드리였다.

수령님, 백두밀림의 눈보라속에서 태여난 제가 자장가처럼 들은것은 항일의 총성이였고 눈에 익힌것은 총이였습니다. 어머님으로부터 세상에 태여나 처음으로 배운 노래도 〈사향가〉와 〈적기가〉였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의 어린 마음속에 눈물을 담으며 부른 〈빨찌산추도가〉의 구절구절이…

저는 한생토록 잊을수 없는 이 피의 력사를 너무도 잘 알기에 백두의 뿌리에 감히 칼질하려는 책동을 용납할수 없고 우리 혁명의 력사적뿌리를 옹호하고 계승하는것을 당원의 본분으로, 저의 필생의 의무로, 좌우명으로 삼고있습니다.

저는 한생을 백두산의 아들로 살 결심입니다.》

김정일동지의 절절하신 말씀에 수령님께서는 깊은 감회에 잠기시였다.

자신께서 백두산의 아들이라고 하셨던 말씀도 단순히 탄생하신 고향을 두고 하신 말씀만이 아니시였다. 그것은 장차 백두산의 아들이 되리라는 깊은 뜻을 담으신 마음이시였다. 하기에 창성을 쉽게 떠나지 못하시는 김정일동지의 마음속에 만주광야에 뿌려진 투사들의 붉은 피가 용암처럼 끓고있음을 절감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하나 근엄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저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도 아니고 부부장, 과장도 아닙니다. 그러나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고 만들수도 없는 백두의 혁명전통을 순결하게 고수하는것은 현시기 우리 당의 가장 중대한 문제이기에 당원의 의무로, 본분으로 생각하고 그 뿌리를 지키는데 한몸 바치려고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아무말씀없이 련련히 뻗은 창성의 푸른 산발들을 바라보고계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안광에 비쳐진 산발들은 백두의 천고수림, 이깔나무며 전나무들이 창공높이 솟은 소백수가라고 생각하시였다. 아울러 어리신 자신께 백두산은 너의 고향이라고 하시던 그때를 그리고계심을 페부로 절감하시였다.

김정일동지의 안광으로는 조국해방성전을 앞두고 이역만리 타향의 봇나무곁에서 조국땅에 안아오실 새봄을 그리시던 수령님과 어머님의 숭엄하신 영상이 금시런듯 방불히 떠오르시였다. 그이의 귀전엔 《사향가》의 선률이 잊을수 없는 옛추억을 싣고 울려왔다.

수령님께서는 말씀을 멈추시고 깊은 의미를 담으신 눈길로 이윽히 김정일동지를 마주보시다가 그이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으시였다.

《나는 때가 오면 우리가 백두의 설한풍속에서 피로써 개척하고 수십년동안 포연탄우와 재더미, 력사의 온갖 풍파를 헤치면서 전진시킨 조선혁명에 가장 충직한 사람, 우리의 혁명위업을 가장 곧바르게 이어갈 사람이 그 사업도 맡아 지도하게 되리라고 믿소.》

뜨거운 격정이 김정일동지의 가슴속에 차올랐다. 혁명의 만년대계를 위하여 크나큰 웅지를 품고계시는 수령님!

(수령님, 영광스러운 항일혁명투쟁사는 곧 수령님의 혁명력사입니다. 조선혁명은 영원히 수령님의 위대한 혁명력사로 빛날것입니다! …)

수령님께서는 젖빛안개가 흐르는 산기슭으로 걸음을 옮기시며 말씀하시였다.

《오늘은 신의주화학섬유공장을 돌아보고 생산을 정상화하는 문제를 가지고 도의 일군들과 협의회를 해봐야겠소. 그 공장 생산정상화라는게 뻔한데 되지 않고있다는것이 모를 일이거던. 근간에 평북도에 와서는 기계공장들을 기본으로 보다나니까 관심을 못돌렸소. 아무래도 현지에 나가보고 대책을 세워줘야겠소.》

그러시다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시였다.

《이번에 나하고 같이 창성, 삭주, 벽동일대를 돌아보면서 수고가 많았소. 우리가 자주 나오는데가 돼서 여기 일들은 그만하면 잘되고있는데 기왕 시간을 내서 왔던김에 평북도와 자강도를 전반적으로 함께 돌아보는것이 좋겠소. 지방당사상사업에 대해서 특별히 주목을 돌려주오.

림춘추는 장편소설 〈청년전위〉의 련속부를 빨리 써야 하오.

그 소설이 얼마나 좋소. 청년들속에서 인기가 대단하다지?

나도 읽어봤는데 1부도 좋고 2부도 좋아서 련속부를 계속 쓰는것이 좋겠다고 했소. 박달동무의 소설도 그래 림춘추동무의 소설도 그래 혁명투쟁에 직접 참가한 투사들이 쓴 글이기때문에 감화력이 크거던.

물론 순수 형상으로만 본다면야 전문작가들보다 기교는 약하지. 그러나 진실하단 말이요!

문학작품의 첫째가는 생명력은 진실성이요. 그래서 림춘추동무가 이제는 어지간히 경험도 생겼노라면서 3부는 더 재미있게 쓰겠다고 한다길래 그저 진실하면 된다구 말해주었소.

림춘추가 항일무장투쟁시기에 군중공작도 많이 했고 당사업도 하면서 우리가 진행한 크고작은 회의들에도 다 참가한 경험많은 동무이기때문에 몇해전부터는 통일전선사업도 방조하라고 과업을 주었는데 서기장일도 할래, 그 일도 할래, 글도 쓸래 부담이 많을거요. 잘 도와줄 필요가 있소.

림춘추한테 얘기해서 내도록 한 그 항일무장투쟁회상기 증보판은 내가 꼭 봐야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음속으로 다시금 뜨겁게 아뢰이시였다.

(수령님,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고 만들수도 없는 백두의 혁명전통을 순결하게 고수하는것을 당원의 의무로, 빨찌산아들의 본분으로 생각하고 그 뿌리를 지키는데 한몸 바치려고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선발차로 먼저 창성을 떠나시였다. 떠난지 한시간도 못되여 줄대같은 비줄기가 내리드리우며 시창에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이의 격앙된 심장의 박동이런듯 속도계의 바늘은 계속 오르기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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