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 3 장

6

 

김태호는 짝지낀 두손에 턱을 고인채 지그시 눈을 감고 바위처럼 굳어져있었다.

지금 그의 방에서는 김정일동지께서 그토록 마음쓰고계시는 아동단원 금순이의 혈육문제를 두고 한시간나마 협의회가 진행되고있었다.

중키에 다부진 몸매의 40대의 지도원 문동무가 이따금 사업일지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

《우리는 이번에 왕우구와 백초구의 조선사람들과 그 지방의 토배기라고 할수 있는 중국인로인들을 만나는 과정에 당시 중국의 〈구국신보〉와 국제당기관지 〈태평양〉에도 실리지 않은 금순소녀의 생활들을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였습니다.》

문동무는 금순소녀에 대하여 구체적인 사실자료들을 이야기했다.

금순이는 1932년 왕우구의 북동아동단학교에 다니면서 조직에서 주는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는데 특히 유희대활동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여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1933년 소왕청에 와서 김일성장군님을 뵈옵고 마촌아동단학교에 편입한 그는 왕청아동유희대성원으로 뽑혀 유격대원들과 근거지인민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수령님께서는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는 금순이를 재간둥이라고 하시면서 1934년에는 머나먼 북만에 가서 구국군장병들을 반일공동전선에 떨쳐나서도록 교양하는 유희대공연에 참가하도록 하시였다.

금순이는 1933년부터 1934년까지 소왕청유격근거지방어전투를 비롯하여 많은 전투에서 아동단원들과 함께 혁명적구호와 혁명가요를 부르면서 유격대원들을 도와 용감하게 싸웠다. 1934년 요영구조직에서 적구에 보내는 극비문건을 전달하는 임무도 훌륭히 수행한 그는 백초구에서 일제헌병놈들에게 체포되여 희생되였다.

당력사연구소에서는 로장이라고 할수 있는 귀밑머리가 희슥희슥한 지도원이 안경을 추슬러올리며 석쉼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중국 연길현 왕우구와 왕청, 훈춘 지어 길림시와 목단강시까지 다니며 료해한데 의하면 살아있는 혈육을 안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금순이 어머니는 왕우구유격근거지에서 촌장사업을 하다가 1934년 왜놈들의 〈춘기토벌〉때 희생되였습니다. 아버지도 그때 전사하였다고 합니다.》

김태호는 얼굴을 들며 단도직입적으로 찔렀다.

《그러니 금순이의 혈육은 없다는겁니까?》

《금순이의 살아있는 동생을 찾는데서 유일한 실마리가 하나는 있습니다.》

《그건 뭡니까?》

《금순이가 희생된것은 1934년입니다. 왕우구유격근거지에 대한 왜놈들의 〈춘기토벌〉때 금순이의 어머니가 희생된것도 1934년입니다. 바로 이해에 금순이의 남동생은 두살이였습니다.》

《1934년 그해에 금순이도 희생되고 어머니도 희생되였다? 그런데 그해에 두살난 남동생을 찾는데서 유일한 실마리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왕우구에 살고있는 중국인로인을 만났을 때 그 로인은 촌장이 희생되면서 젖먹이애기를 마을로인에게 맡겼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로인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알고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김태호는 상기된 표정으로 탁주위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동안 중국 동북땅을 메주밟듯 하면서 금순이의 혈육을 찾기 위해 애쓴 그들의 수고에 대해서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 수고의 결과가 혈육을 찾기는 어렵다는 결론으로 되여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단정하였다.

《다시한번 심사숙고해봅시다. 그래, 없다는 보고를 수령님께 올려도 일없겠습니까?》

《과장동무, 그래서 우리가 만나본 사람들의 지장까지 다 받아왔습니다. 보십시오, 이 세상을 다 뒤져도 금순이 혈육은 없습니다.》

김태호의 시야에 문건의 지장들이 총알처럼 날아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출입문가로 향했다.

《모두 영사실로 갑시다.》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채 우르르 따라일어섰다.

영사실의 영사막에서는 총련에서 보내온 필림이 상영되였다.

람홍색공화국기가 휘날리는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청사로 외팔에 피골이 상접한 늙은이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온다. 어느한 방에 들어선 그는 총련일군들앞에서 머뭇거리며 떠듬거리는데 그 말이 번역되여 울렸다.

《나는 조선항일빨치산 〈토벌〉에 나섰다가 이렇게 불구의 몸이 된 사람이다, 지난 시기 일본의 신문들에도 실렸지만 김일성장군빨찌산의 아동단원 김금순렬사를 총살한 사형장에도 나섰댔다. …》

화면에 왜놈군복을 입고 총을 든 젊은 시절의 사진이 나타났다.

《9살 렬사의 가슴에 내가 쏜 총탄도 박혔다. 하지만 그 사형장은 나와 대일본제국에 철추를 내린 판결장이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어린 소녀의 용맹스런 기상에 벌벌 떨고 소녀는 웃으며 〈조선혁명 만세!〉를 불렀기때문이다.》

항일유격대 《토벌》에 나섰다가 외팔이가 된 초췌한 늙다리는 총련일군들에게 금순이에겐 혈붙이가 있은것이 분명하다며 사령부가 있는 곳을 대라고 감방에 종이장과 연필을 던져주었는데 금순이는 그 종이장에 자기 동생이라며 애기를 그렸다는 사실을 상기하였다. 그가 비청걸음으로 청사현관을 나가는 장면과 함께 화면이 사라지고 불이 켜졌다.

시사는 끝났으나 누구 하나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은 없었다. 납덩이같은 침묵이 흐르는 영사실안엔 다치면 터질듯 팽팽한 공기가 감돌고있었다.

이욱고 김태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낮으나 강인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금순이가 왜 동생을 그렸다고 생각하오? 누나로서 동생에 대한 애틋한 사랑만이였겠는가? 아니요, 그 동생도 자기처럼 어서 커서 강도일제를 쳐부시는 혁명의 길에 나서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였단 말이요. 금순이의 그 마음속의 웨침을 동무들은 듣고있소? 그 웨침을 진심으로 심장에 새겼다면 어떻게 없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할수 있는가?》

사람들의 얼굴이 자책으로 수그러들었다. 김태호는 좌중을 둘러보며 정대로 쪼아박듯 격해서 말했다.

김정일동지께 금순이한테 남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보고되였습니다. 그러니 명심합시다. 없다는 문서장은 보지 않겠소, 그 어떤 지장도. 김정일동지께는 오직 찾았다는 보고만 올릴수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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