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2 장
정사가 부패하면 성돌이 썩는다
1
(2)
며칠전에 조헌과 신씨는 삼녀의 혼례상을 성의껏 차려주었다. 신씨가 제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신랑신부의 첫날옷과 례장감을 한가지, 두가지 마련해놓은것이 있어서 소박하게나마 혼례식을 치를수 있었다. 신랑은 덕보였다.
이성지합이 기이하게 맺어진 당자들은 말할것도 없고 조헌의 내외도 완기와 해동이도 이들의 연분은 누구도 가를수 없다고 기뻐하면서 다자다복하라고 축수하였다. 조헌이 이들의 혼례를 서둘러 치르어준것은 덕보가 군역에 매인것만큼 빨리 군영으로 돌아가야 했기때문이다.
신각은 조헌이 귀양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상소를 올리고 대궐주추돌에 이마를 짓쪼아 생사를 가늠하기조차 어렵게 되였다는것을 알고 인편으로 《덕보는 조헌나리님의 몸이 추설 때까지 잘 돌봐주고오라.》는 곡진한 당부를 보내왔었다. 조헌은 신각의 두터운 우의가 마냥 고마와 될수록 빨리 덕보를 보내주려고 아직 이마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지만 덕보와 삼녀의 가정을 무어준것이였다.
덕보와 삼녀는 조헌과 마님께 신랑, 신부로서 술을 부어올리면서 저들도 모르게 《
덕보는 삼녀와 혼례를 치른 뒤에 이틀을 묵고 어제 아침에 군영으로 떠났다. 조헌은 덕보편에 연안부사 신각에게 보내는 편지를 주었다.
《조헌이 올립니다. 북방령길을 넘어 돌아오면서 외람되게도 공이 남쪽군영에서 보내준 선물을 받은 덕분으로 눈보라 사나운 이천리길에서 손발가락이 터지는 우환을 면하였습니다. 공의 은혜를 어찌 가슴에 새길뿐이겠습니까.》
조헌은 계속하여 덕보가 자기를 위해 일년동안이나 옥천에 머물러있게 해준 고마움에 대하여 자상히 쓰고 교활무쌍한 왜놈들이 흉악한 본심을 방자스럽게 드러내는것으로 보아 반드시 한두해안에 왜적의 침략이 있을것이라고 하였다.
《다행스러운것은 임금이 장수인 공을 중히 여겨서 중요한 고을 부사로 파견하였으니 그곳이야말로 이전 왕조때 오랑캐들이 빈번히 날치던 지대입니다.
한시대의 이름난 장수가 아니고서는 안으로 지칠대로 지친 백성을 무마하고 밖으로는 강포한 적을 막아낼수 없기때문에 공을 잠시 불러낸것입니다.
예로부터 오랑캐가 바스락거릴 때에는 전란이 일어나지 않은적이 없었습니다. 부사는 해자를 파고 성벽을 수축하여 완비하는 한편 성안에 물을 끌어들여야 할것입니다. 적들이 연안성을 포위하고 오래도록 풀어놓지 않는다 해도 물이 있으면 끝까지 싸워이길수 있습니다.
그러면 경기와 해서까지 견고한 방어지대로 되게 하여 나라를 굳건히 할수 있습니다.》
신각은 조헌의 무한한 애국충절과 군사적견문에 탄복하였다. 그는 즉시로 물을 끌어들이는 공사를 벌렸다. 그후에 그는 조정으로 소환되였다.
그때로부터 일년 가까이 지난 임진년에 리정암이 연안성의 군사들과 백성들을 이끌어 왜장 구로다 나가마사의 3 000군을 쓸어버리는 대승리를 떨쳤다. 왜놈들은 다시는 연안땅을 밟지 못하고 멀리 에돌아다닐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임금이 있는 의주로 가는 나라의 북쪽지방과 남쪽지방과의 해상교통로가 열리고 또 황해도 열세개 고을이 수복되였다.
후날 사람들이 《연안성은 천년빛이요. 정암은 만년향기로다.》 하고 시를 지어 정암을 찬양하였지만 연안성에 물을 끌어들이도록 하여 연안대첩을 이루게 한 조헌에 대하여서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였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있게 될 일이고 지금은 조헌이 연안성에 물을 끌어들일데 대한 조언을 담은 편지를 보냈을뿐이다.
그는 청주성밖 안심사 주지 령규스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덕보에게 주어 한성으로 가는 길에 전하도록 하였다. 그는 편지에 마천령을 넘어
귀양지로 갈 때 역병에 걸렸던 안해가 스님이 주는 약을 먹고 나았다는것과 그 은혜를 잊을수 없다고 하였다. 또 이 편지를 가지고가는 덕보는
어렸을 때 스님이 암자에 데려다 살려준 덕분에 오늘은 이렇게 끌끌한 군사로 자라나게 되였으니 감개무량함을 금치 못한다고, 바로 이 덕보를 통하여
스님의 주소성명을 알게 되여 더구나 만나뵈울 생각이 간절해진다고 하였다. 또한 스님이 불도들에게 무술을 수련시킨다는것을 알고 크게 감복되였으며
미리부터 방비대책을 세우고있는 스님을 존경하여마지 않는다고
《나리님, 쇤네도 밭에 나가겠소이다.》
물동이를 가지고 달려나가는 삼녀의 뒤모습을 조헌과 함께 즐거이 바라보고 섰던 할멈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님도 몸이 깨끗치 못하온데 자꾸만 밭에 나가시니… 쇤네가 들여보내겠나이다.》
《할멈도 힘에 맞게 쉬염쉬염 하시우.》
조헌이 할멈을 친근히 바래주고 마당을 천천히 거닐었다.
그는 상처가 아물어가고있어서 머리아픔은 멎었지만 그대신 나라 걱정이 다시 이 봄의 새싹처럼 살아올라 심중이 무거워졌다.
조정에서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왜나라에 가는 사신들이 데리고가야 할 수행원들과 역관, 하인들을 선정하느라고 들볶아왔고 또 일본땅 지나가는 곳곳의 지방관리들이 마중할 때 그들에게 주어야 할 례물이며 연회에 내놓을 술과 과일, 여러가지 특산물을 준비하느라고 바삐 돌아치다가 드디여 지난해(경인년) 3월에 왜국으로 떠났었다.
조헌은 부지중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내가 대궐주추돌에 더운 피를 뿌리며 죽음을 무릅쓰고 상소하였지만 그 어느 하나도 실현된것이 없구나. 그때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났으니 나의 진정을 가짜처럼 여기고 받아들이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생기기도 하였다.
신씨는 남편이 누구의 부축도 없이 홀로 마당에 나왔다는 삼녀와 어멈의 말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얼른 다가서며 남편의 팔을 다정히 잡았다.
《어른께서 누구도 없는 사이에 이러시다가 넘어지기라도 하시면 어쩔려고 그러시오이까.》
조헌은 신씨를 돌아보며 빙긋이 웃었다.
《인제는 혼자서도 걸어다니게 된가보오. 나는 오히려 부인이 걱정스럽소그려.》하고 신씨의 손을 꼭 잡았다. 《부인이 밭일하기에는 몸이 허락치 않소. 그만두오. 응?》
남편이 잘못되였다면 듣지 못할번하였던 그 사랑겨운 목소리를 들으니 신씨는 눈물이 불쑥 솟아나는것을 어쩌지 못하였다.
그는 앓고난뒤에 몸이 극도로 허약해졌다. 더구나 남편이 이번에 상소를 올리고 다 죽은 몸으로 실려왔을 때 자기도 남편과 함께 세상을 뜨려고 밥도 안먹고 약도 들지 않고 남편의 머리맡에 앉아서 밤을 지새웠다.
남편이 살아날 희망이 보이고 조금씩 나아가자 신씨도 조금씩 기운이 돌고 나중에는 이렇게 밭일까지 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