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 회)
제 3 장
5
순애는 지금껏 유상룡과 가정을 이루고 살아오면서 무릇 사람들 입에 오르는 남편에 대한 평판을 들은것은 두가지였다.
평시에 말이 없고 내심적인 사람이라는 단정과 그와 반대로 쾌활한 락천가라는…
이것은 상반되는 평가였다.
그러나 두 견해에서 하나같은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솔직하고 고지식한 사람이라는것이였다. 사람들의 평판처럼 평시엔 깊은 잠에 든 호수처럼 말이 없는 남편이였다. 하기에 내심적인 인간이라는 말도 옳았다. 그러나 음악소리만 울리면 망울을 터치는 꽃처럼 얼굴에 웃음이 활짝 펴고 리듬에 맞추어 두팔을 춤추듯 흔드는 락천가였다.
두살때부터 동냥젖으로 살아온 남편. 아직은 철없던 그 시절 지주집으로 끌려가 머슴살이고역에 시달리며 눈물속에 날을 맞고 밤을 지새운 남편 …
남편에게서 사랑이라면 풀피리였다. 풀피리를 불며 아픔도 괴로움도 이겨온 남편이였다. 그래서 어렸을 때 마을사람들이 즐겨부른 남편의 이름은 《차우디》였다. 차우디란 중국말로 《풀피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제 언제면 남편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꽃처럼 피게 될가. …
유상룡은 늘 생활을 락천적으로 다정다감하게 꾸릴줄 모르고 메마른 사람은 인정미도, 동지에 대한 뜨거운 사랑도 있을수 없다며 음악속에 살고 음악을 들으며 즐겼다. 유상룡은 안해에게도 자기는 《세 사랑》속에서 산다고 했다. 그 《세 사랑》이란 안해의 애틋한 정을 두고 한 말인데 인생의 깊은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바로 이 《세 사랑》이란 말때문에 순애는 남편과 싸울번도 하였다. 어느 일요일 저녁 안해와 함께 대동강유보도로 산보나온 유상룡은 자기가 습작으로 창작하고있는 곡의 선률을 코노래로 부르다가 피씩 웃었다.
《왜 웃어요? 좋은 상이 떠올랐어요?》
순애의 물음에 유상룡은 머리를 저었다.
《그럼 무슨 좋은 일이 있어요?》
순애는 유상룡의 웃음에서 뭔가 기쁜 일이 있다는것을 직감하고 등이 달아서 팔을 잡아흔들며 재촉했다.
《어서 말해요, 무슨 좋은 일이예요?》
유상룡은 안해를 정어린 눈매로 애무하다가 혼자소리처럼 뇌였다.
《당신은 나한테서 〈세 사랑〉이요.》
《세 사랑?》
순애는 억이 차서 두눈이 올롱해졌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생활에서 사람들은 애처가라는 말을 많이 입에 올리고있다. 하지만 순애는 남편의 사랑을 받기보다 남편을 위해
하기에 남편에게는 무던히도 끔찍한 안해였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몸이 건강치 못한 남편이다보니 우선 식사도 고급료리사솜씨를 보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래서 닭알을 놓고도 오늘은 삶은 닭알, 래일은 반숙한 닭알, 그 다음날엔 닭알볶음을 접시에 놓아주군 했다. 또 옷차림을 두고도 무던히 마음을 썼다. 출근전 구두를 매번 닦아주는것을 생활의 철칙으로 삼고있는 순애였다. 창작적열정이 누구보다 강한 유상룡은 리발소에 갈 시간은 통 내지 못했다. 그래서 늘 《오늘은 꼭 리발하세요.》 하고 몇십번도 더 오금을 박았지만 저녁엔 더부룩한 머리그대로였다. 생각다못해 순애는 리발사를 하는 동무에게서 리발기와 가위를 다루는 법까지 배워 끝내는 남편의 머리를 자기가 깎아주게 되였다. 유상룡은 거울앞에 설 때마다 촬영소동무들이 머리를 잘 깎았다고 하면서 어느 리발소에 다니는가고 묻는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겨우 《세 사랑》이라니. 글쎄 백가지, 천가지 사랑은 못된다 해도 열가지 사랑이야 되고도 남지 않겠는가. 결이 나서 손가락까지 꼽아가는 안해를 보던 유상룡은 재미있다는듯 휘파람까지 불어댔다.
《당신이 아무리 꼽아야 셋을 넘지 못하오.》
《뭐라구요? 그럼 첫번째 사랑은 뭐예요?》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유상룡이 엄지손가락을 펴보였다.
《어머니사랑!》
《어머니사랑?…》
유상룡이 두번째 손가락을 펴보였다.
《두번째는 누이의 사랑!》
《어마? 누이?… 그럼 세번짼?》
유상룡이 순애의 어깨를 다정히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안해의 사랑!》
《…》
《세상에 태여나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도 모르고 혈혈단신의 고아로 자란 나에게서 당신은 어머니이고 누이이고 안해요. 바로 그래서 〈세 사랑〉이지.》
순애는 고개를 떨구었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쩌릿해지며 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유상룡도 눈을 슴벅이며 안해의 등을 도닥였다.
세 사랑! 이것은 유상룡이가 꾸며낸 말도 아니고 롱으로 던진 말은 더욱 아니였다. 안해를 만나 가정을 이룬 후 그는 순간순간 어머니, 누이, 안해의 정을 뜨겁게 느끼며 살아왔다. 그래서 부부간이지만 서로 위하고 아끼는 심정이 극진하여 스스럼없이 부엌일도 했고 빨래방치도 들군 했다.
순애가 누가 보면 자기를 뭐라고 하겠냐며 발끈해도 상룡은 웃으며 코노래를 부르군 했다. 그래서 웃음소리, 바이올린소리가 그칠 날이 없는 집으로 아빠트에 소문이 자자했고 모두가 이들부부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요즈음 남편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가셔져버렸다.
순애는 아무리 모대겨도 자기로서는 저 얼굴에 다시 웃음을 떠올려줄 가망이 없었다. 아래방에서 뒤척이며 잠 못들고있던 순애는 웃방으로 올라와 탁상등을 조심스레 켰다. 책상에 머리를 박은채 유상룡은 잠에 들어있었다. 순애는 불그레한 전등빛이 비치는 책상우에서 여러겹의 종이장들을 집어들었다. 며칠사이에 신병을 치르고난 사람처럼 눈확이 푹 꺼진 순애의 눈길이 종이장에 닿았다. 떨리는 손으로 종이장을 조심히 들고 보던 순애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긴장되였다. 그것은 당력사연구소에 쓴 유상룡의 편지였다.
《…저는 당력사연구소 김태호과장동지로부터
편지엔 유상룡이가 화룡에서 살 때에 사귄 동무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편지를 보는 순애의 충혈된 눈에 맑은것이 피여올랐다. 가슴속에
반역자의 아들이라는 고통을 안고있으면서도
흐느낌소리에 잠에서 깬 유상룡이 흠칠했다. 그는 순애의 손을 꼭 잡았다.
《내 일전에 말했지, 당력사연구소 과장동지한테 나도 금순의 동생을 찾아보겠다고… 그래서 그 편지를 썼소.》
《꼭… 찾아보세요.
유상룡은 자기의 맘을 리해해주는 안해의 갸륵한 심정에 코마루가 찡- 달아올랐다.
그는 순애에게 당위원회를 찾아가 아버지문제를 보고한 사실도 터놓고 알려주었다. 유상룡은 아버지문제를 이야기한 후 혜산의 대기념비건설장에 자원진출하겠다고 제기했다. 그러나 당위원회에서는 아버지신원이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고 유상룡은 혁명학원출신이기에 그럴수 없다고 못박았다. 유상룡은 그럼 현실체험으로 건설장에 나가 혁명가요발굴사업도 하겠다고 떼질하여 겨우 승인을 받았다고 하였다.
순애는 자기도 찬성이라며 젖은 눈가에 미소를 피워올렸다.
《고맙소, 당신도 내 마음과 같으니…》
순애는 입을 싸쥐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고마운 안해가 못돼요. 나야 죄를 짓지 않았어요. 내 마음의 아픔만 생각하면서
순애는 말꼬리를 흐리며 벽에 걸린 혁명학원제복을 떨리는 손으로 어루만졌다.
《난 그날 당신이 혁명학원제복을 붙안고 울던 모습을 잊을수 없었어요. … 용서하세요. 하지만 왜서인지 지금도 그분이 그립기만 하고 혹시 길을 가다가도 뵈올것만 같아…》
순애는 터지는 오열을 참느라 손으로 입을 싸쥐며 유상룡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유상룡의 뜨거운 손길이 순애의 잔등을 쓸고 또 쓸었다.
《우리 그 그리움을 귀중히 안고 살자구.》
눈물을 쏟던 순애는 얼굴을 들고 남편을 쳐다보았다.
《어서 편지를 마저 쓰세요.》
《그래, 써야지.》
유상룡은 웃으며 책상을 마주하더니 만년필을 들었다.
유상룡, 얼마나 고지식하고 솔직한 사람인가. 그는 오늘도 만경대혁명학원출신 원아의 모습이구나. …
순애는 그 모습을 영원히 심장속에 새기고 살려는듯 유상룡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마치 처녀시절 순정에 빠져 꿈속에서 그려보던 그 시절의 애인 유상룡을 보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