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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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산수는 산과 물의 경치를 두고 이르는 자연의 절경이였다.

수령님께서는 평양에 공원을 하나 꾸려도, 도시건설을 두고도, 산수와 강산이 배합된 절경경치로 되도록 늘 마음을 쓰시였다. 전후에도 수령님께서는 보통강에 유원지를 건설하고 대동강에 유보도를 마련하고 모란봉을 동방식공원으로 특색있게 꾸려 평양을 세계가 《공원속의 도시》로 절찬하게 하시였다.

언젠가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대동강과 보통강이 록화가 잘된 평양시 한복판으로 흐르니 정말 좋다고, 앞으로 남포에 갑문까지 건설하면 대동강에 물이 가득차있어 평양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는 세계에 없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예로부터 평양8경에는 〈을밀상춘〉, 〈보통송객〉, 〈룡산만취〉가 들어있었지요?》

그이의 물으심에 총장이 말씀올렸다.

《력사학자들은 〈룡산만취〉란 룡산의 늦가을경치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고 대성산은 구룡산으로 불리워오던 곳인데 큰 성을 쌓으면서 대성산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수령님께서 제일 마음에 걸린것은 대성산이라고 하시였습니다. 왜냐하면 대성산은 물이 없으니 산수에서 홀아비신세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강물을 끌어들여 대성산에 미천호를 비롯한 호수도 만들고 폭포도 쏟아지게 하여 수수천만년의 홀아비신세를 면하게 해주었습니다.》

그이께서 호탕하게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에 총장이며 창작가들이 따라웃었다.

《그런데 관객의 립장에서 보면 영화의 제목이 〈평양〉이니 평양의 심장은 어딜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창작가동무들은 어디가 평양의 심장이라고 생각합니까?》

《평양의… 심장 말입니까?》

창작가들은 선뜻 대답을 못하고 헛기침만 했다. 누구도 대답을 못했다.

평양이 조선의 심장인데 그 심장에 또 심장? 전혀 생각해본적이 없는 문제였던것이다.

평양의 심장이라면 당중앙위원회가 있는 창광산기슭을 가리키시는 말씀인가? 아니면 김일성광장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천년강국 고구려의 도읍이 자리잡고있던 안학궁터를 가리키시는것인가…

누구나 종잡을수 없는 생각을 톺는데 그이께서는 영사실안을 거니시며 말씀하시였다.

《오늘 세계가 천리마의 조국이라 칭송하는 우리 사회주의조선의 수도로서 평양은 자기가 간직하고있는 위대한 전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 전통은 유구한것일수도 있고 널리 알려진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력사가 오래다고 다 전통으로 내세울수 없습니다.》

그이의 말씀에 김태호는 저으기 흥분되는것을 느끼며 슬며시 수첩을 뽑아들었다.

《오늘날 우리 인민들만이 아닌 외국의 손님들이 제일 사랑하며 즐겨찾는 곳이 어딥니까? 대동문에 있는 평양종인가? 아니면 송가정이나 보통문인가?》

그이의 물으심에 누구나 강의실에 앉은 학생처럼 긴장되여 평양의 모습을 또다시 눈앞에 삼삼히 떠올렸다.

《평양견학을 오는 학생들도, 조선방문을 위해 오는 외국손님들도 제일먼저 찾는 곳은 만경대입니다. 왜냐하면 조국해방의 은인이시며 공화국의 창건자이신 어버이수령님의 고향집이 만경대에 있기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 평양의 심장은 만경대라고 생각합니다.》

만경대!

순간 촬영소의 일군들과 창작가들의 마음속에서 탄성이 터져나오며 창작적환상이 나래치고 열정이 끓어번지기 시작했다.

그이께서는 수첩장을 번지며 자신의 말씀을 부지런히 속기하고있는 김태호에게 물으시였다.

《그 음악을 록음해왔습니까?》

《예, 록음해왔습니다.》

김태호는 들가방에서 소형록음기를 꺼내여 탁우에 놓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총장이며 창작가들에게 앉으라고 손짓하시며 머리쉼도 할겸 음악감상을 하자고 하시면서 록음기의 스위치를 누르시였다.

절절한 선률에 이어 녀가수의 노래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 시작했다.

 

꽃사시오 꽃사시오 어여쁜 빨간 꽃

향기롭고 빛갈고운 아름다운 빨간 꽃

앓는 엄마 약구하려 정성담아 가꾼 꽃

꽃사시오 꽃사시오 이 꽃 이 꽃 빨간 꽃

새별이 유난히도 빛나는 밤하늘에 울려퍼지는 노래…

김정일동지께서 흥분에 뜬 창작가들을 둘러보셨다.

《작곡가선생, 음악을 들은 감상이 어떻습니까?》

《예… 처음 듣는 노래인데 음악을 감상했다기보다 한편의 명작영화를 보는 심정입니다. 누가 작곡했는지 곡이 아주 훌륭합니다. 새로 만드는 예술영화의 주제가입니까?》

그이께서는 설명을 하려고 하는 김태호를 눈짓으로 제지시키시면서 웃음을 지으시였다.

《앞으로 이 노래를 가지고 예술영화도 만들려고 하는데 어떨것 같습니까?》

창작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호응했다.

《좋습니다!》

그이께서는 노래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것은 장려할 일이라고 하시면서 창작가들을 둘러보시였다.

《노래 〈아리랑〉을 가지고 만든 무성영화 〈아리랑〉과 대비해보면 어떻습니까?》

《라운규의 〈아리랑〉도 우리 민족의 대표적민요를 가지고 만들었지만 이 노래를 상으로 해서 영화를 만들면 아무렴 20년대의 무성영화에 대겠습니까? 세계적인 영화로 될것같습니다.》

이때 연출가 한명이 일어섰다.

《〈아리랑〉영화에 대한 말이 나왔으니 말씀드립니다. 지금 영화리론계에서는 조선영화의 전통을 〈아리랑〉으로 보겠느냐, 새 조선의 첫 영화 〈내 고향〉로 보겠느냐 하고 론쟁을 많이 하는데 그에 대해 가르치심을 주셨으면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웃으시며 물으시였다.

《동무들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저는 〈내 고향〉편입니다.》

《근거는?》

《〈아리랑〉은 식민지민족의 설음을 강조한데 그쳤습니다. 조선영화의 전통은 마땅히 혁명가의 생활을 그리고 혁명사상을 담은 새 조선의 첫 영화 〈내 고향〉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론리가 강하고 주장이 명백한 대답이였다. 그이께서는 젊은 연출가의 얼굴을 유심히 익혀두시며 말씀하시였다.

《민족전통과 혁명전통은 갈라보아야 합니다. 민족전통이라고 할 때 그것은 우리 민족이 수천년을 두고 창조한 정신물질적유산들가운데서 이어가야 하고 더욱 발전시켜야 할 진보적이고 우수한것들을 말하지만 혁명전통은 혁명위업을 개척한 수령이 이룩한 전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조선영화의 혁명전통도 항일혁명문학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

연출가가 다시 물었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영화는 창작된것이 없지 않습니까? 혹시 영화대본이라도 발굴된것이?…》

학구적이고 진지한 자세로 파고드는 연출가에게 김정일동지께서는 선언하시듯 당당히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앞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몸소 창작하신 문학예술작품들을 전면적으로 발굴하여 그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영화로 옮기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 우리 영화의 혁명전통이 창조될것입니다!》

창작가들과 나누시는 그이의 담화를 한마다도 놓칠세라 부지런히 속기하던 김태호는 쿵! 하는 충격에 고개를 번쩍 들며 그이를 우러렀다.

저 위대하신분의 심중에서 어떤 변혁이 태동하고있는가! 영화예술부문 령도의 하루하루가 조선영화예술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창조하기 위한 참으로 위대한 령도의 하루하루인줄 누가 알고있었단 말인가.

흥분된 숨소리들만이 들릴뿐 물을 뿌린듯 고요한 분위기를 깨뜨릴가봐 저어하듯 나이많은 작곡가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저, 그럼 이자 들은 노래도 혹시?…》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고개를 끄덕여주시였다. 그러시고 추억에 젖으신 눈길로 천정의 무리등을 이윽히 보시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몇해전에 중국 동북지방에 파견되였던 항일무장투쟁전적지답사단 성원들이 그 지방 인민들속에서 전해오며 불리우던 노래를 록음해가지고 온것이였는데 일부 사람들이 항일혁명가요가 아니라고 하여 지금까지 묻혀있었습니다.

수령님께서 년초에 지나온 생애를 추억하시면서 초기혁명활동시기에 앓는 어머니의 병구완을 하려고 꽃을 파는 처녀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가극도 만들어 대중을 계몽시키시던 이야기를 들려주시였습니다. 그래서 당력사연구소 동무들이 그 록음테프를 다시 찾아냈습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을 멈추시고 김태호에게 의미깊은 시선을 돌리시였다. 모두의 눈길이 그이의 시선을 따라 김태호에게 쏠리자 그이께서는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도 어릴 때 수령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고 어머님께서도 부르시는것을 들은 기억이 있기때문에 원가사와 곡을 재현해서 형상을 해본것입니다. 당시의 연고자들을 찾아 더 광범히 확인하고 수령님의 고증을 받으려고 합니다.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몸소 창작하신 작품들은 〈꽃파는 처녀〉만이 아닙니다. 〈피바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 〈성황당〉…

우린 이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작하신 문학예술작품들을 전면적으로 발굴하는 사업을 해야 합니다. 품을 들여 말입니다. 우리 문학예술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말씀을 받아안는 창작가들은 환희에 넘쳐있었지만 그이의 마음은 무거우시였다. 당선전사업을 책임졌다는 사람이 극구 찬양했다고 하는 이 기록영화 《평양》은 심장이 없는 영화였다. 이런 영화를 잘되였다고 하는것은 단순히 실무적견해의 차이로만 볼수 없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보천군 의화리의 집을 《사적건물》로 미화하여 그 무슨 《생가》라고 떠들어대는데 있었다.

사색에 잠기시여 영사실안을 천천히 거니시는 그이의 귀전에 《김일성장군의 노래》의 은은한 선률이 울려오기 시작한다. 노래의 선률에 이어 태양의 광휘로운 빛발이 누리를 붉게 물들인다. 여기에 솟아오르는 기록영화의 제명 《평양》.

짙푸른 록음속에 고색짙은 웅좌를 드러내는 대성산의 옛 성터와 을밀대, 고구려시기의 무덤벽화. 5천년의 유구한 력사가 펼쳐지는 속에 혁명의 성지 만경대의 전경이 펼쳐진다. 이어 일제식민지통치의 수난에 시달리는 평양의 모습이며 해방의 만세소리 높이 울리던 평양, 전쟁의 참화로 페허가 된 평양에 이어 복구건설의 노래소리 하늘땅을 진감하며 천리마동상이 흰구름우에 솟아오른다. 외국의 수많은 손님들이 현대적건축물들이며 김일성종합대학, 만경대를 참관하며 격찬을 터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기록영화 《평양》의 화면들을 마음속으로 다시 구성해보시며 창가로 다가서시였다.

어느덧 푸름푸름 새날의 려명이 어둠을 밀어내면서 창가로 스며들었다.

《내가 평양의 심장을 두고 얘기했지만 지금 외국의 국가수반들까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따라배우고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길림육문중학교에 수령님의 동상을 모셨습니다. 우리 나라에 왔던 꾸바의 체 게바라도 수령님을 만나뵙고 귀국할 때에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가지고 갔습니다. 또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도 세계적범위에서 보급되고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백두의 혁명전통에 대한 선전사업을 활발하게 심화하여 진행하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심장이 없는 기록영화까지 나오게 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마음속에서 고패치는 괴로움을 누르시고 총장이며 창작가들을 둘러보시면서 미소를 지으시였다.

《방금 본 기록영화에 서사적구성을 요구하는 영화의 종자를 형상적으로 꽃피울수 있는 좋은 싹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천보혁명전적지를 답사하는 만경대혁명학원 원아들의 생활을 취급한 장면들입니다. 그 장면에서 혁명가요를 넣었는데 음악편성도 잘했습니다. 편성원이 누굽니까?》

총장이 한발 나서며 대답드렸다.

《유상룡이라구 음악대학 작곡학부를 나온 동무입니다. 본래 구성대본에는 다른 노래였는데 그 동무가 이 노래로 하자고 제기했습니다. 그 동무가 특별히 좋아해서 자주 부르고 연주하는 노래입니다.》

김태호의 얼굴에 확 반기는 빛이 흘렀다. 그는 자기도 한번 만나보았는데 만경대혁명학원 졸업생이라고 말씀올리였다.

《여기에 참가하지 않았습니까?》

총장이 난색을 지으며 말씀올렸다.

《그 동문 며칠전에 혜산에 건립되는 기념탑건설장에 자진해서 탄원했는데 가정리력에서 복잡한 문제가 생겨 고민을 하고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떤 예감이 확 마쳐오시여 김태호에게 시선을 던지시였다가 물으시였다.

《어떤 문제입니까?》

《중국 동북에서 고아로 방랑생활을 하댔는데 전쟁때 거기에 들어가있던 만경대혁명학원에 찾아왔습니다. 학원에서는 항일유격근거지였던 왕우구출신의 고아인 그를 받아들여 공부시켰습니다. 전후에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음악대학을 나왔는데 최근에 그의 아버지가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변절자로 처단되였다는 소식을…》

김정일동지께서는 총장의 말을 끊으시며 다우쳐 물으시였다.

《몇살입니까?》

《서른…》

《안해가 있지요?》

너무도 당연한것을 물으시는 바람에 총장은 잠시 얼떠름해졌다가 대답했다.

《물론 장가를 가고 아이도 있습니다.》

그이의 시선이 김태호에게로 획 돌려지는데 역시 흥분으로 번쩍이는 그의 눈길과 마주쳤다. 김정일동지께서 가르쳐주신 방안대로 만경대혁명학원에 가서 15년전부터 10년전까지사이의 학원졸업생명단에서 현재 평양시에 있는 대상들을 또 조사하여 추리고있었는데 이렇게 찾다니! 세상에 이런 우연도…

김정일동지의 의미깊은 시선에서 김태호는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해드렸다. 그이께서는 편성원의 구체적인 생활경위를 당력사연구소 과장동무에게 알려주라고 하시고 촬영소를 떠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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