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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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 조선기록영화촬영소에 나오신것은 은빛을 뿌리던 뭇별들도 졸기 시작한 늦은 밤이였다. 촬영소의 일군들이 그이를 마중하여 청사현관앞에서 기다리고있었다. 김태호도 와있었다.

그이께서 기록영화는 력사문헌적의의를 가지므로 함께 가서 보자고 전화를 걸어주시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며칠전부터 기록영화촬영소 창작가들과 일군들이 새로 만든 기록영화 《평양》을 보시고 가르치심을 주시길 바라는 간절한 청원을 받아주시여 오늘 오신것이였다.

《내가 보고 무슨 큰 도움이야 주겠습니까? 관중의 립장에서 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어봅시다.》

그이께서는 겸허하게 말씀하시며 영사실로 들어가시였다.

총장이 그이를 따르며 말씀올렸다.

《예술영화촬영소의 동무들로부터 권고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만든 영화를 꼭 보여드리고 가르치심을 받으라고 말입니다. 그곳 동무들이 어찌나 자랑하는지… 그래서 이렇게 바쁘신 시간을 내달라고 했습니다.》

총장이 김정일동지께 긴 탁의 중심에 놓인 감색쏘파에 앉으실것을 권했지만 그이께서는 굳이 사양하시며 그옆의 의자에 자리를 잡으시였다.

영사실안의 둥근 무리등이 꺼지자 필림이 감기는 고르로운 소리에 이어 화면에 평양종이 포착되면서 둔중한 종소리가 울렸다. 이어 대동문을 배경으로 기록영화 《평양》이라는 제명이 새겨졌다. 화면에 대동문이며 보통문, 모란봉의 애련정, 을밀대, 송가정이 원경, 중경, 근경으로 자기의 고색자태를 드러냈다. 얼굴에 탈을 쓰고 치마저고리를 입은 녀성들이 송가정에서 춤을 추고 북, 양푼을 두드려댔다. 광대가 두드러진 사나이가 목에 피줄을 세우며 판소리를 뽑아대는데 귀청이 아츠러울 정도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들을 주의깊이 보셨다. 영사막에는 계속하여 대성산과 룡악산의 절간들이 지루하게 펼쳐졌다. 마지막에 가서야 만경대혁명학원 원아들의 생활과 함께 그들이 보천보혁명전적지를 견학하는 장면이 나왔다. 여기에 혁명가요 《어데까지 왔니》의 선률이 흘렀다.

평양종의 종소리가 둔중하게 울리며 영화가 끝났을 때는 자정이 훨씬 넘어서였다. 영사실에 조명등이 켜지자 그이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총장쪽을 돌아보시였다.

《총장동무, 이것이 완성된 영화입니까?》

총장이 엉거주춤 일어나 반쯤 허리를 굽히며 말씀올렸다.

《예.》

김정일동지께서는 점도록 말씀이 없으시다가 한껏 긴장되여있는 그들의 마음을 눅잦혀주시려고 미소를 지으시였다.

《수고했습니다, 품을 많이 들인것이 알립니다.》

총장은 어줍게 웃으며 뒤더수기를 긁었다.

《며칠전에 김도만부장이 나와봤는데 고구려의 옛 수도 〈평양〉이라는 기록영화의 제목에 맞게 력사유적들에 대해서도 잘 반영했다고 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영사실안을 천천히 걸으시다가 침침한 방안의 공기갈이를 하시려는듯 창문을 활짝 여시였다.

《평양은 정말 아름다운 수도입니다. 다른 나라들엔 넓은 강이나 수려한 산이 없는 수도도 많습니다. 그런데 평양엔 대동강, 보통강 그리고 만경봉, 모란봉, 룡악산, 대성산이 련련히 솟아있어 사시절 절경을 펼치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나라없던 그때의 평양은 자기의 아름다움이 없었다고, 수령님께서 조국을 찾아주시고 보통강개수공사의 첫삽을 뜨신 때로부터 절경의 자태를 빛내기 시작했다고 하시며 평양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혁명의 수도로 되기까지 우리 수령님께서 얼마나 로고를 바쳐오셨던가를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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