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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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슴이 찌르르해지는 추억을 깨뜨리며 림춘추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엉, 이게 무슨 소리요?》
최현이며 오진우도 북동쪽으로 400m가까이에 네활개를 쭉 펴고 누운 3호못쪽의 숲을 보며 귀를 강구었다. 텅텅하는건 나무찍는 소리가 분명했다.
《림동무, 도끼질소리 아니요?》
《이런, 여기가 어디라구 도끼질이야. 빨리 가봅시다.》
최현이 빨찌산때의 그 시절처럼 날파람있게 3호못쪽으로 달렸다. 그 뒤로 허우대가 늘씬한 림춘추가 종주먹을 쥐고 따랐다. 3호못우로 둔덕진 으슥한 곳에서 두 사나이가 아름드리 이깔나무를 찍고있었다. 허리에 두손을 찌르고 선 사나이는 황유탁의 그림자노릇하는 안경쟁이였다. 그가 한옆에 세워놓은 무슨 건물의 전경도를 가리키고있었다.
《지금껏 이 경치좋은 곳에 왜 저런 정각을 세울 생각을 못했을가?
자고로 인생이란 즐기고 누리는 멋에 사는건데… 역시 유럽이 이런데선 민감하단 말이야.》
최현의 목에서 피줄이 터질듯 울뚝했다.
《이놈들! 어디서 감히 도끼질이야!》
안경쟁이는 수수한 사복차림의 최현과 림춘추를 보자 오히려 제편에서 눈살을 세우며 발끈했다.
《어따대구 큰소리요! 우린 중앙당 부장동지의 지시를 받구 저 정각을 건설한단 말이요.》
《뭐야? 정각?》
최현의 눈에서 불시에 불소나기가 쏟아져나왔다.
최현이 어금이를 으스러지게 깨물며 전경도를 쾅- 찼다. 전경도가 자빠지며 안경쟁이의 이마빡을 내려쳤다.
《나쁜놈의 새끼들, 삼지연에 감히 술놀이정각을 세워?! 쓰레기들 같으니!》
최현은 습관적으로 허리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총이 잡히지 않는다. 결기를 참을길 없어 나무몽둥이를 와락 집어드는데 오진우의 부축을 받으며 숨가삐 달려온 김일이 최현의 앞을 막아섰다.
《어디서 뭘 하는 작자들인가?》
내각 1부수상을 알아본 안경쟁이는 꺼멓게 죽어 떠듬거렸다.
《1부수상동지, 우린 그저 김도만부장동지가 지시를 하기에…》
안경쟁이는 투사들의 기상에 겁에 질려 뒤걸음치다가 나무등걸에 걸치여 궁둥방아를 찧었다. 그통에 코에 걸었던 안경이 떨어져 그것을 찾느라 헤둥거리였다.
《혁명을 위해선 피가 아니라 코물조차 흘리지 않은 놈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구 도끼질이야?》
김일의 추상같은 웨침에 이어 최현이 소리친다.
《오진우, 총을 달라, 총! 내 이 따라지같은 놈들을 그저!》
안경쟁이며 도끼질하던 두사람이 기겁하여 도망쳤다. 황소숨을 씩씩 톺던 최현이 도끼질에 떨어진 이깔나무쪼각들을 살점처럼 쥐고 쓸며 결이 나서 웨쳤다.
《이 삼지연에 술놀이할 정각을 세워? 더러운 놈들!》
김일은 금시 심장이 멎는듯한 억한 심정에 허청걸음을 놓다가 못가의 자작나무아지를 꽉 잡는다.
《이자 모두들 봤겠지요. 이 삼지연에 주인들이 없으니 저런 버러지들이 기여들지 않소. 도대체 지금껏 우리가 뭘 했소? 김일인, 최현인, 림춘추, 오진우는 뭘 했는가. 이 땅, 이 밀림, 이 호수가 우릴 보구 뭐라구 하겠소?》
력사의 말없는 증견자들인 못가의 사스레나무들이 울분에 몸부림치듯 엷은 잎들을 떨고있었다.
《
김일의 흥분된 어조에 림춘추가 오금을 꺾으며 주먹으로 무릎을 쾅- 쳤다.
김일이 졸지에 무릎을 접으며 삼지연기슭에 핀 진달래가지를 쥐고 목갈린 어조로 뇌였다.
《나부터두 항일전에 나섰던 참전자가 아니라 흐르는 세월속에 저도 모르게 전적지를 견학하는 참관자로 된것같소, 답사자로!》
김일이 말한 《참전자》 와 《참관자》를 두고 최현도, 오진우도 마음속으로 곱씹어 뇌이며
《림동무도 나도
《당책벌을
최현이 격하여 굳어지는데 김일이 일어서며 투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분께서 왜 우릴 여기로 보냈는지 잊지 맙시다. 잊지 말구 우리모두 빨찌산시절처럼 살기요. 오늘만이 아니라 이제 남은 여생의 마지막날까지.》
최현이며 림춘추, 오진우들은 비록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그들의 숨결은 한결같이 높았다.
《림동무, 이제부터 력사자료를 놓고
《나에게도 집필과제를 주십시오.》
오진우가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슴벅이였다.
생각깊은 눈길로 삼지연못가의 수림을 바라보며 묵묵히 말이 없던 림춘추가 고개를 돌려 결연한 표정으로 전우들을 돌아보았다.
《아니요, 이 일은 내가 맡아서 끝까지 해야 하오.
동무들이 나를 좀 도와주오, 내 기어이 해내겠소!》
항일의 맹장들은 전우들의 숨결이 맥박치는 울울창창한 밀림을 거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