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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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연 1호못 변두리에 솟은 자작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들이 울창한 원시림의 바다를 펼친 속으로 김일이며 최현, 오진우들이 깊은 감회에 젖어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1호못 기슭에 들어서니 병풍처럼 둘러선 이깔나무, 자작나무가 호수의 맑은 물에 비껴있고 들쭉, 만병초, 물싸리, 진달래꽃나무사이로 다람쥐들이 쌍을 지어 재롱을 부리다가 이깔나무가지로 나무톺기를 한다. 1호못가운데 솟은 푸른 숲이 우거진 섬에서 두마리의 꿩이 나래를 퍼덕이며 솟구쳐오른다.
오진우가 흥분에 떠서 저쪽 이깔나무숲쪽을 손짓했다.
《저기 이깔나무숲쪽에 사령부천막을 쳤던것같은데…》
《그때 오동무는 꿩사냥하려다가
《예, 그때
말꼬리를 흐리던 오진우가 고개를 들며 두리번거렸다.
《림동지가 어데 갔나?》
김일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퉁명스레 혼자소리하듯 했다.
《삼지연에 왔으니 생각이 많겠지. 벌써 와서 자체검토를 했어야 하는건데…》
눈길을 돌리는 그의 시야에 10여m 떨어진 2호못 기슭에 곰처럼 웅크리고 앉아있는 림춘추의 모습이 조각처럼 안겨왔다. 최현이 오진우에게 한눈을 끔뻑했다.
림춘추를 데려오라는 신호였다. 오진우가 제꺽 고개를 끄덕이더니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김일과 단둘이 남자 최현이 여느때없이 심중한 어조로 속마음을 터쳤다.
《김일동무, 이 최현의 마지막청을 들어주겠수?》
《마지막청? 그러니 유언이다 이 말이구만.》
《아무렇게나 생각하구려. 유언이면 유언, 부탁이면 부탁…》
《그래 뭡니까?》
《거 최현이 저기루 갈 때 말이우다, 섭섭치 않게 군복을 넣어주시우다. 총도 한자루 잊지 말구.》
《허, 거기 가서두 처단할 놈이 많아서요? 아, 그런 놈들이야 지옥의 기름가마에서 발버둥칠텐데 굳이 총까지 쏘지 않은들…》
최현이 건기침을 하다가 담배를 꺼내여 호박물주리에 끼운다.
《그리구 만년필과 종이퉁구리도 넣어주구…》
김일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최현의 입에서 만년필소리가 나오니 너무도 상상외의 뜻밖이여서 자기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허, 최현동무입에서 만년필소리까지 다 나오구…》
《
《그래두 최현동무는 좋은 회상기를 쓰지 않았소. 〈잊을수 없는 첫 상봉〉, 〈두번째 상봉〉 그리구 장편회상기 〈혁명의 길에서〉…
싸움에서만 1등이 아니라 글쓰는데서두 1등이지.》
최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두산이 바라뵈는 삼지연에 오니
항일의 백전로장 최현이 터친 심중의 고백에 김일은 이름할수 없는 감정에 휘말렸다. 아니, 그보다는 고맙기도 하고 또
어느새 왔는지 림춘추와 오진우가 옆에서 따르고있었다.
《내 림동무한테도 루차 말했지만 동문 늘 나의 피의 기록장이라고 하는데 그래 그게 림춘추의 자서전이요? 수많은 동지들이 목숨바쳐 지킨
최현이 두사람을 번갈아보다가 김일의 팔을 슬쩍 잡아당기며 한눈을 끔뻑했다.
《그만 자중하시우다. 뭘 군정간부회의때처럼 열을 올리며 그러시우. 사실, 림동무도 그 일때문에 속에 재가 가득 찼수다.》
《그럼 재를 털어내구 또 불을 지펴야 할게 아닌가! 백번, 천번이래두!》
《옳습니다, 하지만
《그럼
《실은
《그래서 신념이라는게 있지 않소.
최현이 팽팽한 분위기를 역전시키려는듯 껄껄 웃었다.
《허, 그러니 지금껏 림동무의 뺨을 답새긴게 아니라
김일이 못가에 피여난 진달래꽃을 이윽히 보며 주춤했다. 지방출장길을 가다가도 차창밖으로 비껴드는 산기슭의 연분홍빛진달래를 볼 때마다 못견디게 갈마들군 하는 추억이 있다.
1939년 5월 5호물동을 건너 조국땅에 들어섰던 그 봄날
《눈서리를 이겨내고 이렇게 피였군요.》
그 한마디에 시련의 만단사연들이 한꺼번에 안겨와 과묵한 김일도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조선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습니다!》
최후결전을 준비하던 훈련기지의 밤에 삼지연못가에서 얼레빗을 물에 적셔 머리를 빗으시던 추억을 이야기하시다가 목이 메여 고개를 숙이시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