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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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 없는 추억의 갈피를 번지시는 그이의 눈가에서 뜨거운것이 번뜩였다.

그렇게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매일 뵈오며 자란 혁명학원의 졸업생이 지금 말 못할 고충을 안고 몸부림치고있다는 사실에 좀처럼 진정할수 없으시였다.

《그래, 그 아주머니의 남편이 자기 아버지, 어머니를 봤답니까?》

《보지도 못한데다가 이름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고아의 설음을 마음속에 안아보시니 가슴이 찢겨지듯 쓰려와 견딜수 없으시였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 고아… 그러니 어려서부터 사랑이 그리워 눈물인들 오죽 흘렸겠습니까.

난 어머니를 잃고 마음놓고 울지도 못했습니다. 내가 울면 어린 동생이 어머니생각에 더 울가봐… 그래서 난 속으로 울면서 겉으로는 웃는다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비물이 흘러내리는 소나무가지를 잡으시고 검은 구름이 몰켜드는 동켠하늘가 먼곳을 바라보시였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머님을 잃고 유치원에 나갔을 때 아이들이 저저마다 팔목을 잡아끌며 미끄럼대를 타자고 어찌나 조르는지… 그래서 할수없이 미끄럼대에 올랐는데 아이들이 좋아라고 웃으며 앞으로 내려갈 때 어머니 생각이 불쑥 치밀었지요. 그런데 마당에선 교양원선생의 품에 안긴 동생이 미끄럼대우에 있는 이 오빠를 빤히 쳐다보지… 그래서 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미끄럼대를 뒤로 타고 내려오며 울었습니다. …》

그이께서는 손수건을 꺼내시여 눈언저리로 가져가시였다.

《그날 우리를 어떻게 하나 기쁘게 해주고싶어 사진기를 들고나왔던 교양원선생이 나의 그런 뒤모습을 사진찍었습니다. 그리고는 차마 그 사진을 나한테 줄수가 없어 아직도 자기가 간수하고있다고 합니다.

전쟁때 우리 오누이는 아버님과도 헤여져 살았습니다.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국의 너렁청한 림시거처지에서 천정에 떼지어 모여있는 비둘기 똥이 잠든 동생의 얼굴에 떨어질가봐 잔등으로 막아주면서 아버님이 못견디게 그러워 울던 그밤이…

나도 어릴 때 추운 고생, 배고픈 고생을 해봤습니다. 그렇지만 춥고 배고파서 운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정이 그리워서는 울었단 말입니다. 그러면서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것이 바로 사랑과 정이라는것을.》

획 돌아서서 마주보시는 그이의 존안은 흐르는 눈물과 비물로 온통 젖어있었다.

《우리 일군들은 사랑과 정을 바쳐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가야 합니다. 땅을 팔 때도 삽질을 한것만큼 구뎅이가 깊어지고 깊어진것만큼 물이 고이지 않습니까.

내가 안타까운건 부총장동무가 왜 나의 이런 마음을 몰라주는가 하는것입니다. 그 아주머니의 남편이 만경대혁명학원출신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랬습니까?

난 일찌기 어머니를 잃었어도 어머니의 얼굴을 생생히 기억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던 행복한 시절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녀성의 남편은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 고아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난 더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어쩌면 동무가 그럴수 있습니까!》

부총장은 그만 무릎을 꺾고 꿇어앉으며 《헉-》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 이분! 늘 끓어넘치는 정열과 빛발치는 예지로 충만되여계시는 이분이 이렇듯 눈물많은분이시였단 말인가! 불타도 사랑과 정으로 불타고 눈물을 흘리시여도 사랑과 정의 뜨거운 분출로 내뿜으시는 이분!…

어깨를 떨며 오열을 터뜨리는 그를 묵묵히 내려다보시며 이윽히 서계시던 그이께서 일으켜세우시였다.

《됐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마시오. 빨리 들어가서 전화를 걸어봐야겠습니다.》

싸늘한 바람에 날리는 비발이 그이의 온몸에 휘뿌려졌다. 문득 김정일동지의 마음을 에이며 애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를 원쑤놈들에게 잃고 발버둥치며 태질하는 금순이, 어린 동생의 울음소리가 가슴을 허비며 들려와 그이의 페부에 아픔의 상처를 덧쌓았다. 그이의 어깨우로 보슬비도 흐느끼듯 소리없이 내렸다.

부총장의 방에 들어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그가 드리는 세면수건을 받아쥐시였지만 닦으실념을 않으시고 다급히 전화부터 거시였다.

부서에 전화를 거시여 자신을 찾아온 녀성이 없었는가, 편지를 맡긴 녀성은 없었는가를 알아보신 그이께서는 다시 당중앙위원회 접수를 찾으시였다.

《없단 말이지요. …》

송수화기를 맥없이 놓으신 김정일동지께서 묵묵히 창밖을 내다보시였다. 책상우에는 그이에게서 뚝뚝 떨어지는 비물이 번져지고있었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수건으로 비물을 대충 닦으시고 만년필을 꺼내드시였다.

《그 아주머니 나이가 몇살쯤 되였습니까?》

《스물일여덟쯤 돼보였습니다. 서른살은 넘어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이께서는 종이장에 《안해 서른살미만, 스물일여덟정도.》 라고 쓰신 다음 《그러니까 남편의 나이는…》 하시다가 《스물일여덟에서 서른다섯까지 봐야겠구만.》하시고 종이장에 또 써넣으시였다.

그러시고 다시 창밖을 내다보시며 사색을 더듬으시였다.

《학원을 졸업하고 대학까지 다녔다면 한 10년전까지 혁명학원졸업생들가운데서 알아봐야겠는데 각 도당들에…》

부총장이 생각되는것이 있어 말씀드렸다.

《지방이 아니라 평양에서 찾아봐야 할것 같습니다.》

《?…》

《차림새를 보니 분명 먼데서 온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그이께서 다시 종이장에 《평양시…》 하고 쓰시는데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부총장이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예, 그렇습니다. 예, 지금 여기 계십니다.》

의아하신 눈길로 바라보시는 그이께 부총장이 송수화기를 내드렸다.

《당력사연구소 김태호과장이라고 합니다.》

그이께서는 반색하시며 송수화기를 나꾸어채듯 받아드시였다.

김정일입니다. 범이 제 소리 하면 온다는 조선속담 그른데 없구만. 금방 동무를 찾을 생각을 하더랬는데 이렇게 전화가 걸려오니 과장동무 이름의 호자는 분명 범 호자입니다.

아니, 먼저 동무얘기부터 하시오.》

저쪽에서 뭐라고 말씀드리는지 그이의 음성이 높아졌다.

《찾았다구? 어디서? 삼복리? 관리위원장의 할아버지가!

세상에 인연두 그런 인연이…

음, 그렇게 됐구만. 수령님께서 리철동지의 별명까지 잊지 않고 알려주신 덕입니다.

과장동무, 이젠 빨리 올라오시오. 동무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아니, 됐습니다. 와서 들으시오.》

김태호가 그냥 조르는지 그이께서는 웃으시며 송수화기를 다른 손에 바꾸어쥐시였다.

《성미두 원, 좋습니다. 그럼 받아적으시오.

안해 이름 모름, 나이 서른살미만, 스물일여덟살정도, 사는 곳 평양시로 추측됨.

남편 이름 모름, 혁명학원졸업생, 그후 대학을 졸업, 평양시의 어느 기관에서 사업하는것으로 추측됨. …》

상대방이 마주서있기라도 한듯 손세를 써가시며 간곡하게 말씀하시는 그이를 우러르는 부총장의 두볼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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