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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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예술영화촬영소 뒤산의 기복진 진록색등판에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잇달아 찬바람이 불었다.
《그러니 그 아주머니의 이름도 모르고 헤여졌단 말입니까?》
어제밤 부총장은 영화촬영에 필요한 필림문제로 영화총국에 갔다가 22시가 지나서야 촬영소로 돌아왔다. 승용차가 속도를 늦추며 촬영소 정문쪽으로 들어서는데 불빛에 정문옆의 백양나무밑에서 서성거리는 한 녀인이 비껴들었다.
그는 깊은 밤에 촬영소앞에서 서성거리는 녀인에게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것이라고 직감하며 차를 세우게 했다. 아니나다를가 녀인은 가정에 말 못할 불행이 생겨서 왔노라며 손수건으로 눈굽을 훔쳤다.
《불행이란 뭡니까?》
《우리 세대주는 중국 동북에서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살아온 고아입니다. 그렇지만 당의 배려로 혁명학원을 나왔는데 얼마전에 세대주의 아버지가 항일유격대의 손에 처단된 변절자라고 하니…》
《그러니 시아버지의 신원이 확인되였습니까?》
《정식 확인된것도 아니고 웬 사람이 말해줬다는데… 세대주는 그 말을 기정사실화하고 당조직에 가서 스스로 고백하겠다는겁니다. 혁명학원을 거쳐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절자의 아들로 락인찍히게 된게 너무 기가 막혀서 그럽니다. 더구나 보지도 못한 아버지를 두고 어떻게 변절자의 자식이란 루명을 쓰겠습니까?
전 그럴수 없다고 울며 말했는데 세대주는 보지 못한 아버지라도 변절자라니 그대로 당조직에 보고해야 한다고 우기지 않습니까.》
입을 싸쥐고 돌아서는 녀인을 보는 부총장은 영화에서 기구한 운명에 몸부림치다가 벼랑끝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최후의 오열을 터치는 녀성을 보는듯싶어 저도 모르게 돌덩이같은 한숨만 련발했다. 녀인의 말대로 만경대혁명학원출신인 세대주가 보지도 못한 아버지의 죄를 뒤집어쓴다는것도 억울한 일이였고 또 아버지의 과거지사를 당조직에 보고해야 한다는 남편의 말도 옳은 처사였던것이다.
부총장을 더욱 난감하게 한것은 굳이 촬영소로 찾아온 녀인의 걸음이였다.
《아주머니, 그런데 이런 문제를 해당 기관도 아닌 우리 촬영소에 와서 누구한테 얘기하려고 왔습니까? 아주머니나 세대주의 친척이 우리 촬영소에 있습니까?》
《아닙니다. 사실은 이, 이걸…》
녀인은 품에서 떨리는 손으로 편지봉투를 꺼냈다.
《그게 뭡니까?》
《편집니다.》
《편지요? 누구한테?…》
한동안 갑자르며 몸둘바를 몰라하던 녀인이 혀아래소리로 겨우 떠듬거렸다.
《저…
《예?》
녀인은 눈굽을 훔치며 보지도 못한 시아버지가 역적이였다는 청천벽력같은 이 일을 두고 탓할데도 또 터놓을데도 없어 안타까운 마음을
영화부문사업을 지도하시는 영명하신
부총장은 한동안 결심을 못하고 망설이였다. 보천보로인의 편지때와 다르다. 그때는 주저하다가 드린 편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