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6

(5)

 

그랬다. 이태전에 자기를 찾아와 임금께 상소를 올려달라고 하소하던 송익필의 형제를 어이 잊을수 있으랴.

밖에서는 눈보라가 지동치고있었건만 하늘의 무수한 별빛들은 그 눈보라를 아랑곳하지 않고 이 집 방문가에 비쳐들어 조헌과 송익필형제가 나누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듯 깊은 정적을 불러왔다. 완기와 해동이, 삼녀와 덕보도 눈물이 글썽글썽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 옳다. 그때 너희들이 나를 찾아와 아버지의 원쑤를 갚아드릴수 있도록 상소를 올려달라고 울면서 하소하였었지. 그런데 너희들은 어이하여 여기에 웅거하였느냐?》

《우리 형제는 공주에서 나리님을 뵙고는 그길로 여기 마천령으로 도망쳐왔소이다. 멀리 도망쳐야 쉽게 붙들리지 않을것이고 또 여기는 우리 형제가 여러번 솜짐을 지고 넘나들던 곳이라 산세도 잘 알고 이 집 할아버지도 그때에 친숙해져서 여기로 올 생각을 하였소이다.》

《으음- 세상이 왜 이 지경이 되였노. 너희들마저 칼을 들고나섰으니 이 나라가 장차 어찌될고-》

조헌은 이같이 길게 탄식하고 그들에게 잘했다거나 못했다거나 가타부타할수 없음을 안타까이 여기였다.

《나리님, 아까부터 알고싶었지만 그럴 짬이 없어서 묻지 못하였사온데 나리님께서 어찌하여 마천령을 넘고계시오이까. 병이 위급한 마님까지 데리고 어데를 가셨다가 어디로 가시는 길이나이까?》

송익필형제는 조헌이 귀양갔던 길을 전혀 모르고있었다. 이따금 길에 나서서 《림꺽정》노릇을 하고있었지만 대개 깊은 산중에 들어가 짐승사냥과 약초를 캐면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그들이였다. 때때로 조헌나리님이 상소를 올렸는지, 올렸으면 그 결실이 어찌되였는지, 좌의정 로수신이 죄를 당하고 파면되겠는지, 그렇게 되였으면 우리 형제가 도망친 죄가 무죄로 되지 않으랴 하는 생각으로 날을 보내였었다. 그러나 로수신은 령의정으로 나라의 최고관직에 올랐다.

조헌은 송익필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지 몰랐다. 임금께 상소를 올렸다가 귀양살이를 했다는 말을 그들앞에서 할수 없었던것이다. 지난해 올린 상소는 송익필형제의 말을 듣고 올렸다고 할수 없지만 한꼬치 불티가 된것만은 사실이였다.

조헌은 로수신의 비법, 불법행위를 확인하여 보았다. 모두 틀림이 없었다. 이같은 비행은 로수신 하나만이 아니라 조정의 높고낮은 관리들속에서도 수없이 나타나 마치 송충이가 소나무를 갉아먹듯이 온 나라를 좀먹고있는것이였다.

그런데다가 왜놈들의 흉악한 심보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그리하여 그는 지난 무자(1588)년에 상소문을 올리기로 굳게 결심하였던것이다.

그 상소문에 로수신을 규탄한 대목이 있었다.

《령의정 로수신은 일인지하 만인지상(한사람밑이며 만사람의 우)으로서 부러운것이 없는데 남의 토지를 빼앗아 큰 목화농장을 차려놓고 노비를 시켜 목화를 수없이 거두어들일뿐만아니라 호서, 호남지방의 목화를 헐값으로 사들여 서북면과 동북면으로 날라다가 팔아서 폭리를 얻고있사옵니다.

어느해에는 바다의 풍랑을 만나 솜을 실은 배가 깨지고 겨우 목숨을 건지고 돌아온 배군들을 사정없이 형장을 쳐서 그중에 하나는 숨지게 하였고 자기 친척 젊은 사람들 11명이나 벼슬자리에 앉히고 자기의 울타리로 만들었사옵니다. 로수신은 령의정의 직분보다 사욕을 채우는데 피눈이 되였으니 어찌 용서할수 있으리까.》

그는 계속하여 정승을 적임자로 앉히지 못하여 나라의 풍속이 퇴페해지고 륜리를 어기는 변고가 어디서나 있게 되여 나라는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이게 되였다고 하였다.

임금이 조헌의 상소문을 보고 대노하였다.

《이제 조헌의 글을 보니 이사람이야말로 요사스러운 사람이다.

하늘의 경고가 지극히 크니 두려운 생각을 금할수 없다. 임금으로서 더욱 부끄럽기 그지없다. 상소문은 내려보내지 않을수 없지만 이 상소문만은 내려보내지 못하겠다. 한번 내려보내면 손상되는것이 아주 클것이니 내가 이미 불태워버렸다.》

임금이 상소문을 내려보낸다는것은 조정에 내려보낸다는것인데 조정에서 상소문의 내용을 의논하여 받아들일것은 받아들여 정사에 옮겨놓으라는 의미가 들어있는것이다. 그런데 조헌의 상소문을 의논해봤대야 조정의 허물만을 들추어낼뿐이여서 내려보내지 않겠다는것이다.

조헌의 제의대로 교만방자스런 왜놈사신의 목을 베고 왜나라와 련계를 끊는다면 포악한 왜놈들이 이것을 구실로 침략해올것만 같아서 겁이 났고 조헌이 내쫓자고 하는 간신들은 임금의 눈으로 충신이라고 보는 정승대감들인데 그들을 내쫓는다면 의거할데가 없는것이였다.

또한 정승들을 적임자로 앉히지 못하여 나라의 풍속이 퇴페해지고 륜리가 없어진다고 한것은 그 책임이 임금에게 있다는 뜻이고 나라는 풍전등화의 처지에 있다고 함은 임금이 무능무맥하여 나라가 나라구실을 못한다는 암시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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