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5
(3)
조헌은 소년의 등뒤에 서있는 꺽다리 맹영달을 지그시 굽어보았다. 네놈도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쓴 놈이냐, 이 짐승만도 못한 놈 같으니, 네놈은 소년의 아름다운 소행을 직접 보았거니 어찌 그를 잡아온단 말이냐. 네놈같은자 백천을 준대도 이 소년 하나와 바꾸지 못하리라 하고 터져나오는 분노를 애써 누르며 다시 소년에게 눈길을 돌리였다.
《너는 아버지 머리를 어디에 묻었느냐?》
《그것은 말할수 없소이다. 제가 오늘 붙잡힌것은
소년은 입술을 깨물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는
《네가 형장아래 륵골이 무너지고 팔다리가 꺾어지고 당근질을 당하면 아니 대지 못하리라.》
《
소년이 또릿또릿 여무지게 분명히 말하니 그를 당장 릉지처참해야 한다던 관속도 할말이 없는듯 입을 다물어버렸다.
하늘가에는 매 한마리가 두날개를 자유롭게 활짝 펴고 날아예고있었다. 이 소년도 저 매처럼 나래를 펴고 마음껏 날게 할수는 없을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조헌은 대견한 눈매로 소년을 이윽토록 굽어보았다.
《너는 참으로 장한 소년이다. 부모의 머리를 소중히 모시려고 자기 머리를 바치려는 일도 고금에 없는 효행이고 길가에 굶주려 쓰러진 사람에게 제 먹을것을 준 일도 네 마음에서 뿜어나는 착한 빛이고 너의 량심의 보석같은 빛발이다. 더구나 너를 잡아죽이려고 뒤쫓아오는 사람이 있는데도 죽을 지경에 든 랑자를 살려내면서 제몸을 숨기지 않은것은 누구나 할수 없는 일로서 뒤날에 효자록과 의행록에 올라 길이 전해질만하다.
그러나 본관은 내 마음대로 너에게 무죄라고 할수 없다. 감영에서 너를 처리하리니 너는 한동안 고을옥에 갇혀있어야 한다. 응당 죽일 죄도 세번 심리를 거쳐야 한다는 〈삼복법〉이 경국대전에 올라있으되 그것은 죄인이 죽어도 원망없이 죽게 하자는것이다.
여봐라. 형리 있느냐, 너는 소년죄인을 옥에 가두고 함부로 때리거나 욕설을 하지 말아라. 또 하루세끼 음식을 주되 나라의 절목(규정)대로 분량을 다 주어서 굶주리는 일이 없게 하라.》
당시에 옥리, 옥졸들은 죄수들에게 차례지는 음식을 떼먹고 굶주리고 병이 나도 돌봐주지 않았다. 조헌은 이것을 념려하였던것이다.
《알았소이다.》
옥리가 소년죄인 한기남을 데리고 나가자 조헌은 맹영달을 엄하게 바라보았다.
《너는 역적의 아들을 붙잡은 공을 세웠다. 너를 고을군사로 다시 받겠다. 병방은 맹영달이 군사의 체모를 갖출수 있도록 더그레와 벙거지를 내주도록 하라. 맹영달은 금후 맡은 직분을 다하라.》
맹영달은 너무 좋아서 기다란 허리를 굽석굽석굽혀서 절을 하였다.
《그렇지만 너에게 한가지 묻겠다. 이번 민란이 왜 터졌는가 네가 생각한바를 말해보아라.》
조헌은 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저…》
맹영달은 주저주저 갑자르기만하고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너의 말이 비록 사리에 어그러졌다 해도 탓하지 않으리니 어서 말해라.》
《그건… 백성들이 너무나… 저… 좀 더 생각해보고 말씀을 드리겠… 사오니… 다.》
맹영달은 진땀을 뽑았다. 민란이 일어난것은 백성들이 더는 살길이 없어서 들구일어난줄은 그도 모르지 않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말했다가 좋을지 나쁠지 몰라서 주밋주밋 망설이는것이였다.
조헌은 맹영달을 내버려두고 조회반렬에 눈길을 돌리였다.
《여기에 모인 관속들은 민란이 왜 일어났는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그 리유를 모르고 대비하지 않으면 민란이 또 일어나 서로 죽일내기를 할것이다. 본관은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모두 깊이 생각해두었다가 래일 아침 조회에서 대답할수 있도록 하라.》
그는 고을관리들이 누구나 이것을 큰 교훈으로 삼게 하여 앞으로 백성들의 진혈을 빨아들이는 악착한짓을 막아내고 반상간에 화목을 도모하며 고을을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고싶었다. 그것이 바로 나라와 백성을 위하고 임금을 성심으로 받드는 일이요, 천하지대본이라고 굳게 믿었다.
조헌이 소년죄인을 감영에 올려보낸다고 고을옥에 가두어놓고 기다리게 한것은 그를 구원하기 위한 시일을 얻어내기 위함이였다.
그는 보은현부임지로 올 때 데리고온 해동이를 불러 가만히 만났다. 해동이를 관가의 통인으로 쓸만큼 그를 믿었던것이다.
조헌은 해동이에게 너는 옥천에 가서 완기에게 이리이리 말해라, 그다음엔 또 이리이리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날 맹영달과 옥리 하나를 시켜 한기남을 감영으로 압송하도록 하였었다.
그는 그때가 어제일처럼 생생히 기억되였다. 그때 그 소년죄인이 이렇게 끌끌한 군사로 자라난것이 무등 기쁘고 반가와 그를 보고 또 보며 눈물을 삼키였다.
밖에서는 밤눈보라가 휘몰아치고 방문에선 문풍지가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