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5

(2)

 

조헌의 뇌리에 기억의 불꽃이 생생히 살아올랐다.

그때 조정에서는 보은고을원이 민란을 평정한 공로가 있다고 하면서 어느 큰 고을의 목사로 승진시켰고 종묘서령(종묘서의 책임자)으로 있던 조헌을 보은현감으로 내려보냈었다. 조헌이 부임 첫날 관가의 륙방관속을 다 불러내여 조회로 첫 정사를 볼 때였다.

문득 삼문밖의 파수군사가 동헌뜰앞에 들어와 목청을 뽑았다.

《아뢰오- 삼문밖에 중죄인을 묶어왔소이다.》

《중죄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조헌이 파수군사를 내려다보며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물었다.

《구관사또를 죽여버리겠다고 덤벼들었던 민란주창자의 아들놈인데 이름은 한기남이라 하옵나이다.》

륙방아전들이 일시에 놀라듯 고개를 쳐들고 웅성거리였다.

《고약한 애새끼, 인제야 잡혔고나.》

형방이 이렇게 내뱉자 병방이 지껄이였다.

《망할놈, 제깐놈이 뛰여야 벼룩이지 올데갈데 있나.》

《좌우간 어벌이 커. 이제 한해두해 자라면 못하는짓이 없겠소. 독초는 싹에서 뽑아버려야 해.》 하고 또 누구인가 제말이 그른데 없다는듯이 씨벌거리였다.

륙방관속들은 수군거리면서 조헌의 눈치를 살피였다. 신관사또 조헌이 구관사또때의 죄인을 어떻게 하겠는지 호기심이 난것이다.

조헌은 이미 보은현 민란사건을 알고 내려왔었다. 그는 엄하게 령을 내리였다.

《죄인과 죄인을 잡아온 사람을 불러들이도록 하라.》

소년죄인과 그를 잡아온 키꺽다리가 들어왔다.

소년의 얼굴엔 매를 맞은 시퍼런 멍이 나있었다. 그러나 소년의 옷은 깨끗한 무명바지저고리였다. 신발도 탐탁스러운 새 짚신이였다.

소년은 또릿또릿 빛나는 눈으로 앞을 내다보며 주저없이 들어왔다.

그뒤의 키꺽다리는 상투가 삼거웃처럼 마구 흐트러져있고 시꺼먼 수염이 비루먹은 개털처럼 보기 흉하여 마치 소도적같이 보였다.

눈망울까지도 불량스럽게 번뜩이였다.

《아니, 저게 맹영달이 아닌가?》

맹영달을 늘 신통치 않게 보아오던 례방이 뜻밖인듯 눈을 크게 떴다.

《그렇군. 그래두 죄인을 다 잡아오구?》

관속 하나가 못마땅히 맹영달을 바라보며 비꼬았다.

관속들의 반렬은 바람맞은 수풀처럼 잠시 술렁이였다.

맹영달은 《봐라. 중죄인을 잡아온 사람이 누구인가를.》 하듯이 반렬앞을 겅정겅정 걸어나오면서 소년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걸어라. 이놈새끼-》

드디여 신관사또가 앉아있는 동헌섬돌아래 이르러 소년의 꼭뒤를 눌렀다.

《어서 무릎을 꿇어라.》

소년은 갑자기 몸을 홱 돌려 맹영달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괜한짓 하지 마시오다. 제가 잘난체하지 말란 말이우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누구때문에 밥을 얻어먹고 술까지 대접을 받으며 왔소이까? 다 나를 잘 돌봐달라고 길가마을사람들이 먹여주었소이다. 무일푼 알건달로 나를 잡을번이나 하였소이까?》 하고는 신임사또를 한번 눈들어 보고 말없이 무릎을 꿇고앉았다.

맹영달은 소년의 고추같이 맵짠 공격에 수치를 당한듯 눈을 사납게 흡떴으나 신임사또앞이라 어쩌지 못하고 소년의 뒤에 엉거주춤 하정배를 하였다.

관속들은 소년의 당돌한 행동에 사뭇 놀라 눈들을 껌벅껌벅하였다. 허, 저놈 봐라. 맹영달도 꼼짝 못하는구나. 고놈을 살려두었다가는 또 언제 민란을 일으킬지 알수 없으렸다 하듯이 놀라서 어쩔줄 몰라하였다.

드디여 조헌이 엄하게 입을 열었다.

《형방은 서탁앞에 나앉아서 이제부터 진행할 사건심리를 한자도 빠짐없이 적었다가 후날 증빙문건으로 남기도록 하라.》

《예이, 듣자왔소이다.》

심리가 시작되였다. 조헌이 엄하게 물었다.

《너는 어떤 죄를 지었는고?》

《저는 죄지은 일이 없소이다. 다만 효수당한 아버님의 머리를 떼내려 안장했을뿐이오이다.》

《너의 아버지는 어찌하여 효수를 당했느냐?》

《백성들을 잡아먹는 고을원을 죽이려고 하였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였소이다.》

소년의 독살스러운 대답이 나오자 관속들이 깜짝 놀라 아우성쳤다.

《독사는 알에서 까나오자 독사라더니… 어이쿠, 저런 악독한 놈을 그냥 살려둔단 말이요?》

《당장 사지를 찢어죽여야 해.》

《아이구 맙시사. 절간이 망하려니까 젓갈장사군이 든다더니 저놈이 젓갈장사 찜쪄먹겠고나.》

모두 이렇게 법석대는중에도 소년을 기특히 여기듯 말없이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통인의 웨침이 쨋쨋하게 관속들의 머리우에 울려퍼졌다.

《일체 자중하여 사건심리를 나라의 법대로 끝내도록 하랍신다-아-》

팥죽끓듯하던 동헌뜰이 가라앉자 또 조헌이 침착하게 물었다.

《너는 구관사또가 사람을 잡아먹는걸 보았느냐?》

《예, 우리 아버님이 말씀하셨소이다. 지난 5월에 우리 동네 곽서방이 조세와 환자곡을 제기일에 바치지 못하였다고 잡아다가 형장을 치고 옥에 가두어두고 먹을것을 주지 않아서 죽었소이다. 또 숱한 백성들이 굶어죽었는데 이것은 다 사람을 잡아먹는것이라고 하셨소이다.》

소년이 이때껏 가슴에 쌓아두었던 울분과 원한을 그대로 터뜨리듯이 거침없이 대답하자 관속들은 단박에 홍두깨로 정수리를 맞은듯이 두눈을 까뒤집었다.

《어-어- 해괴한지고. 쬐꼬만 놈이 못하는 소리없구나. 어이런 변봤나.》 하고 미처 할말을 찾지 못해하였다.

곽서방이 지독하게 형장을 맞고 먹을것도 못 먹고 죽은것은 사실이고 또 고을백성들이 굶어죽은것도 사실이였던것이다.

조헌이도 크게 놀라 한동안 아무말도 못하였다. 그는 소년이 장하게 여겨졌지만 지엄하게 입을 열었다.

《너는 역적으로 죽은자가 아버지라면 그 아들도 함께 련죄되여 죽어야 한다는 법조항에 따라 죽어야 하는데 그우에 효수된 아버지의 머리를 떼가지고 도망하였으니 죄상첨죄(죄우에 죄를 덧쌓는것)를 지었다. 너의 죄는 용서받을수 없다.》

《아들이 아버지의 머리를 모셔다가 안장한것이 어떻게 죄로 되겠소이까. 아들이 효수당한 아버지의 머리를 보고도 가만있으면 그것이 바로 큰 죄인이 아니오리까. 제가 잡혀오는 200리길에 백성들이 저를 보고 큰 죄인이 잡혀간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소이다.

오히려 큰 효자가 잡혀간다고 음식도 주고 옷도 입혀주고 신발도 신겨주었소이다. 지금 제가 입고있는 옷이 그 옷이오이다.》

소년의 이같은 말을 들으며 조헌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의 눈앞에 잡혀가는 소년에게 먹을것, 입을것을 주는 사람들이 보여왔다.

《맹영달, 너는 이 애를 잡아오면서 다 제눈으로 보고들었겠으니 그대로 아뢰여라. 이 애의 말이 옳으냐?》

《예, 다 옳사옵니다.》

《너는 이 애를 어떻게 붙잡았느냐?》

《소인이 효수장에서 파수를 보는 날 비가 억수로 쏟아져서 잠간 비를 긋는 사이에 효수당한것을 도적맞히고 그 리유로 형장을 맞았소이다. 집에 누워 장독을 치료하면서 생각해보니 애놈이 괘씸하여 잠들수가 없었소이다. 관가에서두 쫓겨났으니 더 말해 무엇하리까. 요놈을 어떻게 하면 잡아바치고 다시 고을군사로 들어갈가 하고 밤낮으로 궁리하니까 좋은 생각이 떠올랐소이다. 이 애놈이 300리를 벗어나지 못했을것이라고 여겨졌소이다. 그래서 절간마다 찾아다니느라고 하루에 백여리씩 걸으니 하루는 너무나 배고프고 기운이 빠져서 어느 나루터근방에 쓰러져있었소이다.》

맹영달은 신임사또가 자기의 수고를 깊이 헤아려주기를 바라면서 자초지종을 길게 말하였다.

《이때 마침 지나가던 어떤 총각애가 소인을 흔들어깨우더니 아저씨는 굶어서 쓰러진것같은데 저에게 먹을것이 있으니 좀 잡수시우.〉 하고 중의 바랑같은데서 송기떡 두짝을 주었소이다. 소인이 그것을 씹는듯마는듯 꿀꺽꿀꺽 삼키는것을 총각애가 보더니 놀라는 기색을 띠였소이다. 하더니 이내 저는 바쁜 걸음이라 먼저 가겠소이다.〉 하고는 걸음발을 재촉해 떠났소이다. 눈깜박할사이에 활 한바탕거리만하게 갔는데 도망하듯 하는게 아니겠소이까?

이상히 생각되였소이다. 소인은 그때에야 아이쿠, 내가 찾던 그 애놈이 제발로 찾아들었댔는데 놓쳤구나 하구 뒤쫓아갔소이다. 활 한바탕사이를 두고 소인이 뛰여가면 애놈도 뛰여가서 거리는 줄어들지 않고 이렇게 10리, 20리를 따라가는데 차츰차츰 애놈의 꽁무니가 보일락말락 해졌소이다.

인제는 여불없이 놓쳤구나 하구 따라가다가 종내 애놈을 잃어버렸소이다. 그래두 총각애놈이 간 길을 따라 5리쯤 갔는데 어떤 마을의 시내가가 나지구 거기서 두 계집년들이 애고대고 몸부림을 치고있었소이다.

그런데 멀리 도망한줄 알았던 이 역적의 아들놈이 거기에 있었소이다. 그래서 끝끝내 덥쳐잡았소이다.》

륙방관속들은 맹영달의 이야기를 들을만 하여 귀기울이다가 시내가에서 덮쳐잡았다는것이 너무 쉽게 된 일이여서 머리를 기웃거리였다.

조헌은 소년중죄인에게 눈길을 돌리였다.

《너는 어떻게 붙잡혔느냐?》

《제가 어떤 마을의 시내가에서 붙잡힌것은 사실이옵니다. 그렇지만 거기서 지체하지 않을수 없었기때문에 붙잡힌것이지 이 사람이 날래고 꾀가 있어서 붙잡힌것이 아니옵니다.

저는 뒤쫓아오는 이 사람을 멀리 떨구어놓으면서 시내가의 징검다리를 건너가는데 빨래하던 처녀애 하나가 애구구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한다리를 어찌할지 몰라하다가 까무라쳤소이다. 다른 처녀 하나가 뱀이야. 사람살려요- 하고 냉큼냉큼 뛰였소이다.

저는 까무라친 사람을 그냥 두고갈수 없었소이다. 급히 가보니 커다란 독사가 처녀의 발목을 휘감고 혀를 날름날름하고있었소이다. 저는 무작정 독사의 모가지를 덮쳐잡고 독사를 풀어내여 태를 쳐서 죽여버렸소이다. 독사한테 물리면 피를 뽑아 독을 없애야 사람을 살릴수 있기에 저는 급히 처녀의 다리목을 입으로 깨물어 피를 빨아 뱉았고 또 빨아 뱉아버렸소이다. 그다음 피가 다리우로 올라가지 않도록 빨래줄로 무릎아래를 꽉 동여매주었소이다. 바로 이럴 때 이 사람이 나의 뒤덜미를 움켜쥐였소이다.

요놈의 새끼, 인제야 꼼짝없이 잡혔지. 히 네가 준 송기떡이 아니였다면 네놈을 뒤쫓을 힘이 없었을게다. 고맙다. 네가 나를 도와 주었고나. 그러나 사는 사구 공은 공이야.〉

이걸 놓아요. 당장 죽게 된 사람을 살려낸 다음에 나를 잡아가우.

저는 이 사람의 손을 뿌리치고 처녀의 발목의 피를 입으로 몇번 더 빨아버렸소이다. 그러는사이에 까무라쳤던 처녀가 언제 깨여났는지 고맙소이다. 어디에 사시는 오빠인지 이 은혜 무엇으로 갚겠소이까. 하고 눈물을 흘리였소이다.

저는 사람을 살려낸 기쁨을 안고 처녀에게 〈나는 이 사람에게 잡혀죽게 되지만 그대신 랑자가 오래오래 사시오이다. 이렇게 말해주고보니 죽음이 두렵지 않았소이다. 나를 대신해 사는 사람이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소이까. 제가 오라를 순순히 받고 떠나오는데 뒤에서 〈오빠, 오빠. 소녀를 살려놓고 죽는다는게 웬말이요? 가지 마오. 소녀가 대신 죽으리다.〉 하고 웨치였소이다. 지금도 그 부르짖음이 귀에 쟁쟁하오이다.》

조헌은 소년의 진술을 들으며 불쑥 눈물이 솟아나는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아, 이런 착하고 고운 마음씨를 안고있는 총각을 어떻게 목을 베인단 말인가.

관속들속에서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말없이 소매로 꾹꾹 눌러 씻는 사람도 있고 두눈을 슴벅이며 고개를 숙이는 사람도 있었다. 관가에 속해있는 사람이라고 다 악한 사람은 아니고 남의 인정사정을 제일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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