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5

(1)

 

억대우같은 군사는 본시 충청도 보은현사람이다. 이름은 한기남이다. 그가 15살 되는 해 봄에 보은현에서 민란이 터졌다.

당시에 고을원은 상전에게 잘 보일 진상품을 긁어들이려고 백성들의 진혈을 짜내였다.

조세는 하등전이라도 상등전으로 등적하여 두곱세곱으로 빼앗아가고 군포는 늙은이든 갓난애기든 장정속에 포함시켜 징수해갔다. 부역은 일년열두달 없는 날이 없었다. 성쌓기요, 길닦기요, 관청을 새로 짓기요, 또 무슨 토목공사요 하면서 들볶았다. 가렴잡세는 또 그것대로 정신을 못차리게 긁어갔다. 진상품으로 호랑이가죽, 표범가죽, 보라매, 말린 해삼과 전복, 사향, 인삼고, 록각(사슴뿔)안내라는것이 없었다.

만약에 바치지 못하면 가혹한 형벌을 내리였다. 백성들이 도저히 살아갈 길이 없어서 솔가도주하면 그 집 친족들이 물게 하고 친족이 없으면 동네사람들이 대신 물어야 하였다. 백성들은 더는 참을수 없었다. 한기남의 아버지 한근석은 동네사람들과 함께 악독한 고을원을 들어낼 일을 비밀리에 꾸미였다.

그들은 야밤 3경에 감쪽같이 관가의 파수군사를 죽여버리고 관청에 쳐들어갔다. 너 죽고 나 죽을판이였다. 한기남의 아버지는 도끼로 동헌안방의 문을 들부시고 뛰여들었다. 허나 고을원놈은 어디에도 없었다.

창고를 맡은 패들은 커다란 자물쇠를 까부시고 쌀과 무명필들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이 거사를 어느 놈이 고을원에게 고자질을 하여 군사들을 매복시키고 기다리고있을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아니나다를가 갑자기 《와야-》 하고 창과 칼을 든 숱한 군사들이 달려들었다.

한기남의 아버지네들이 창황히 맞서나섰지만 강약이 부동이였다.

군사들은 그들을 사정없이 찔러죽이였다. 목숨을 내대고 고을원과 악질관리들을 쳐죽이려고 일을 벌리였던 사람들이 너무나 보람없이 희생되고말았다.

홰불을 추켜든 군사들을 데리고 원놈이 관가에 들어섰다. 그는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마당에, 혹은 동헌마루에 죽어 쓰러진 기남의 아버지네들을 비쳐보고 싸늘한 랭소를 지었다.

《이놈들은 란민폭도들이다. 당장 목을 쳐서 장대기끝에 매달아라. 그 가족들도 용서할수 없다. 모조리 잡아들이라. 폭도놈들의 주창자 한근석놈의 아들도 어리다고 사정보지 말고 목을 쳐서 나라법이 엄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기남이는 멀리 피신하지 않았다. 효수당한 아버지의 머리를 그냥 두고 떠날수가 없었다. 마을사람들이 그를 숨겨주고 돌봐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병으로 돌아가서 기남이는 아버지와 둘이서 살아왔던것이다.

어느 깊은 밤, 비가 쏟아져내리는 야밤에 기남은 아버지의 머리를 장대기끝에서 떼내려가지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비속을 뚫고 고을지경을 벗어나 멀리멀리 무작정 뛰고 또 뛰였다. 날이 밝아왔다. 그는 행길을 버리고 숲속으로 들어섰다. 그래야 몸을 감출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우중충하게 솟은 나무들이 비바람에 우- 우 소리치며 와슬렁거리였다. 마치 그를 뒤쫓는 군사들의 발자국소리와도 같이.

허지만 그는 무섭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가는것이다.

그의 몸은 맨살 그대로였다. 입고있던 적삼을 벗어서 아버지의 머리를 고이 싸안고가기때문이다.

산을 넘고 또 넘었다. 어느덧 비가 멎고 산새들이 포롱포롱 이 나무, 저 나무로 날아옜다. 해빛이 숲속으로 새여들었다. 한기남은 양지바른 산기슭에 바위를 표적삼아 땅을 팠다. 눈에선 눈물이 방울져 흐르고 손끝에서는 피가 방울져 흘렀다.

해가 나무우듬지우로 높이 떠올랐을 때에 자그마한 봉분이 솟아올랐다. 기남이는 아버지봉분앞에 맨살이 드러난 알몸을 엎드리고 실컷 울었다.

아버님, 제가 좀 더 자라서 아버님의 원쑤를 기어이 갚아드리겠소이다.》

그는 일어섰다. 그리고 아버지를 뒤에 남기고 또다시 숲을 헤쳐나갔다. 갈곳도 없었다. 다만 북쪽으로 멀리 가야 뒤쫓는 관가의 손탁에서 벗어날수 있었기때문에 가고 또 가는것이였다.

이렇게 하루해를 지우고 또 하루해를 보냈다. 어느 산골 인심좋은 집을 만나 꼴머슴이라도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벗은 웃도리에는 숲을 헤치느라고 나무가지나 가시에 긁히운 자리가 얼기설기 피자국이 생겨나고 밤에 모기에 뜯기운 자리가 빨깃빨깃 돋아났다.

발이 부르텄다. 피가 내배이더니 이틀이 지나서는 곪았다. 배도 고팠다. 사흘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산길을 걸어온탓에 기력이 다 빠졌다. 그는 이름모를 숲속의 오솔길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무심한 해빛이 그의 몸을 비쳐주다가 나무잎에 가리워 그것마저 사라지고 개미들이 그의 맨살우에 기여다니였다.

이때 나이지숙한 어떤 중이 산을 내리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는 소년을 보게 되였다. 중은 두손을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불쌍한 중생을 구원하시옵소서.》 하고 념불을 외우더니 소년의 손을 잡고 맥을 보고 숨결을 가늠해보았다. 중은 소년을 급히 업고 오던 길을 되돌아 산으로 올라갔다.

기남이가 스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난 곳은 어느 깊은 산중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였다. 거기서 한달가까이 몸을 추세웠다.

어느날 기남이는 스님에게 자기의 지난날을 그대로 다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아버님을 어머니묘곁에 다시 잘 안장하고 돌아와 소년중이 되겠다고 하였다.

스님은 《부처님이 너의 갸륵한 마음을 귀히 여기실테니 아버님을 지성껏 어머니곁에 모시고 되돌아오거라. 불가에 너를 받아들일것이니.》 하며 그를 떠나보냈다.

한기남은 100여리를 되짚어가서 일을 끝내고 돌아섰다. 하지만 어느 나루터근방에서 보은현의 키꺽다리군사에게 붙잡혔다. …

기남은 여기까지 말하고 목이 꺽 메여 다음말을 잇지 못하였다.

밖에서는 눈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방안에서는 슬픈 정적이 흘렀다.

조헌이도 신씨도 완기, 해동이, 삼녀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기남이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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