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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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등만 켜놓은 음악편성실안은 밤처럼 어둑컴컴했다. 두터운 검은색비로도창가림이 드리운 방안엔 괴괴한 정적만이 흐르고있었다. 음악편성을 하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창가림을 거두고 창문까지 활짝 열어놓는것이 유상룡에게는 법칙화된 생활이였다. 하지만 요새와서는 음악편성을 안할 때에도 창가림을 드러우고 컴컴한 방안에서 외기러기되여 오락가락하였다.

지금도 유상룡은 두팔을 가슴에 깍지끼고 고개를 수굿한채 방안의 구석켠에 옷걸이처럼 굳어져있었다. 때없이 토방에 놓인 망돌처럽 창문밑의 쏘파에 멍하니 앉아있는가 하면 밤이면 창가에서 구름속을 헤염치는 하현달에 한숨을 실을 때가 많았다. 이것은 그의 생활에서 지금껏 없었던 비정상일과였다.

오늘도 정문에서 웬 녀기자가 취재차로 찾아왔다고 전화가 왔지만 그를 만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는 검은색비로도창가림을 쳐들고 정문쪽에 눈길을 던졌다. 정문에서는 한 처녀가 서성거리고있었다.

취재가방을 멘 처녀가 손목시계를 보는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속이 끓는것같았다. 유상룡은 몰켰던 숨을 내그으며 창가림을 맥없이 내렸다. 이때 귀청따가운 전화종소리가 또 울렸다. 송수화기를 드니 접수원녀인이 안타까운 어조로 소리쳤다.

《상룡동무, 로동청년신문사(당시) 기자가 벌써 한시간나마 기다리구있는데

심리적중압에 눌려사는 그에게 기자의 면담요청은 또 하나의 곤욕이기도 하였다.

상룡은 터갈라진 입술을 지그시 깨물다가 적당한 구실을 붙여 돌아가게 해달라고 당부하고는 편집기를 마주하고 앉았다.

불그레한 황혼이 창가림사이로 발볌발볌 스며드는 방안에 혁명가요 《어데까지 왔니》의 선률이 흐르기 시작했다.

유상룡은 만경대혁명학원 원아들이 보천보혁명전적지를 참관하는 화면을 보며 혁명가요를 편집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길은 기록영화의 화면에 닿았지만 마음은 혁명가요의 구절구절을 새기고있었다.

유명혁을 통하여 엿장사가 반역자로 처단되였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은 후부터 상룡은 전혀 딴 사람으로 변했다.

그는 지금도 자신에게 이렇게 캐물었다.

(유상룡, 너는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 또 어디까지 가려는가.)

《항일유격근거지인 왕우구주변을 돌아다니던 엿장사는 처단됐소,혁명의 변절자로.》

유명혁의 새된 음성이 또 서슬푸른 활촉처럼 심장을 모질게도 찌른다. 상룡은 온몸을 와스스 떨며 왼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아니, 유상룡이라는 내 이름은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다. 하지만 엿장사는 나의 아버지다. 난 반역자의 아들이다! 반역자)

그의 눈앞엔 가시어머니 엄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제밤에 엄씨는 책상우에 놓인 리력문건을 보며 금시 춤이라도 출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래 인츰 간다면서? 극장작곡가루

유상룡은 엄씨의 손에서 리력문건을 뺏다싶이했다.

《어머니, 어데 가서 그런 얘긴

《나두 다 알아. 좌우간 잘됐네, 잘됐어!》

엄씨는 얼기설기 패인 이마의 주름살을 펴며 환하게 웃었다.

자기가 바라던대로 극장작곡가로 소환되게 되여 리력문건을 쓰고있던 유상룡에겐 반역자의 아들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러웠다. 아직은 자기 마음속에만 드리웠지만 이제 조만간 가정에, 일터에, 생활과 미래에 그 그림자는 먹장같은 어둠을 던질것이다.

모든것을 잊어버릴가?

편집기에 물린 테프가 두바퀴를 돌도록 유상룡은 끝내 대답을 찾지 못하고 맥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촬영소정문을 나설 때는 어둠이 깃들고있었다. 그가 고개를 짓숙인채 외등이 환하게 켜있는 접수실앞을 지나는데 안에서 똑똑똑 하고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접수실에는 그새 주인이 바뀌여 야간근무성원인 아바이가 앉았다가 유상룡을 띠여보고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서고있었다.

《아까부터 편성원동무를 기다리는 처녀인데 암만 가라고 떠밀어도 요지부동이구만.》

아바이는 손짓으로 속보판 앞쪽을 가리켰다. 10m도 안되는 거리의 느티나무아래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그곁에 서있는 중키에 하늘색목도리를 두른 처녀가 가로등에 비쳐지고있었다. 그제서야 상룡은 로동청년신문사의 녀기자를 상기했다.

자신없는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하는데 유상룡의 눈빛에서 취재대상을 알아보았는지 아니면 속보판에 난 자기 얼굴을 새겨두고있었는지 처녀는 직방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로동청년신문사 기잡니다.》

갸름한 얼굴에 쌍까풀진 눈이며 또랑또랑한 그 목소리가 무척 아름다왔으나 어딘가 도전기가 력력히 풍기였다.

《예, 련락은 받았습니다. 일이 바쁘다나니 미처 아직까지 기다릴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미안

처녀기자의 담차고 정열적인 어조와 상반되게 유상룡의 대답은 너무나도 시들하였다.

《우리는 새로 발굴된 혁명가요를 널리 보급하는데 공로가 많은 편성원동지를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수없이 노여움이 배였지만 처녀는 취재차로 온 기자의 모습을 허물지 않으려고 애쓰고있었다.

유상룡은 심리의 미묘한 세계를 샅샅이 훑어보는듯한 처녀의 끈질긴 눈길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난 별루 한 일도 없구 또 일이 바쁜데다

딱한 처지에 빠지면 말도 잘 안되는 법이다. 방금 토설한 바쁘다는 구실밖에 더 댈수 없는 자기 처지가 가긍하기 그지없었다.

높은 구름, 낮은 구름이 서로 마주향해 흐르던 하늘에서 가벼운 우뢰소리가 드르릉-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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