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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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리만길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옳거니, 아이들이 징검다리를 건너다니구 장마철에는 5리나 에돌아다니는데 그런 다리는 안놓구 《나비쌍쌍》다리나 놓는다는게 말이 안되지. 백번 지당한 일이야.)

《리당위원장동무는 지금 뭘합니까?》

그이의 물으심에 리만길은 생각에서 깨여나며 대답했다.

《암만해두 강냉이단지옮겨심기가 적기를 놓칠것같아서 군에서 지원로력을 보낸다구 합니다. 다 내 불찰이우다. 그래서 리당위원장은 식전아침까지 여기서 일하다가 지원로력을 들일 집조건을 돌아봐야겠다구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그랬군요. 만나봤으면 좋았을걸.》

김정일동지께서는 리만길의 팔을 다정히 끼고 몇걸음 옮기시였다.

《관리위원장동지의 말씀이 옳습니다. 정각이야 산천경개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데 지어야지요. 이제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해서 삼복리를 산복, 물복, 땅복을 누리는 살기 좋은 농촌으로 만든 다음에 수령님께서 이슬젖은 풀숲을 헤치고 오르시여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보시며 잘살 길을 가르쳐주신 저 등성이에 정각도 잘 세우고 그날의 수령님교시를 비문으로 새겨 자자손손 전해줍시다.

우린 이젠 돌아가겠습니다. 저 차성준동무와 저기까지 같이 가면서 좀 만나봐도 되겠지요?》

리만길은 기다렸던듯 반색했다.

《어서, 어서 그렇게 해주시우.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우다.》

김정일동지께서 잘있으라고 인사를 하고 떠나시려는데 차성희가 정히 포갠 빈배낭을 내드렸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그 배낭을 다시 쥐여주시였다.

《아, 이건 삼복리의 종달새선동원동무에게 주려구 우정 마련해가지구온 배낭이요. 배낭을 메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해설하고 선전하고 불러일으키시오.》

처녀는 깊은 의미가 담긴 배낭을 가슴에 꼭 가져다대며 속삭이듯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지도원동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성준과 함께 파란 잔디밭에 노란 민들레꽃이 수놓은듯 다문다문 피여있는 방축길을 걸으시였다. 버들이 우거진 내가에서 물고기 한마리가 첨벙소리를 내며 뛰여올랐다.

그이께서는 눈길을 어떻게 건사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차성준의 모습을 정어린 눈매로 이윽히 지켜보시였다.

《동무를 이렇게 만나게 되누만.

어떻게 생각하오? 동무가 빚어낸 봉선화사건을 말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귀뿌리가 뻘겋게 달아올라 두손을 맞잡은채 바재이는 차성준을 일별하시며 다시 물으시였다.

《동무가 세상에 태여나서 처음으로 배운 노래는 뭡니까?》

《그건 김일성장군의 노래입니다》

《그다음에 부른 노래는 뭡니까?》

《…》

《제일 사랑하는 노래도 있겠지요?》

《예.》

《그게 봉선화입니까?》

《아닙니다.》

《좋은 노래가 얼마나 많습니까. 밭갈이노래〉, 〈아름다운 고향… 그런데 왜 굳이 봉선화를 불렀습니까? 혁명가요를 부르면 외교사업규정에 위반됩니까?》

그이께서는 대답을 기다리시며 걸음을 멈추시고 내가에 무릎을 굽히고 앉으시였다. 그러시고는 흐르는 물에 손을 잠그시고 영덕산기슭의 그 어디인가를 바라보시였다.

차성준의 숨결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국제부에서는 대표단파견때마다 사회주의나라 대표단들과의 면담석상에서 행동규범과 조례까지 일일이 지적해주고있습니다. 더우기 제가 속했던 대표단파견때는 국제공산주의운동권안에서 불협화음이 조성되고있는 복잡한 정세니만치 모든 발언을 심사숙고하며 될수록이면 그나라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라는…》

지금 좌경과 우경의 대립으로 국제공산주의운동이 분렬의 진통을 당하고있다. 그것으로 하여 식민지민족해방운동과 신흥세력운동도 곡절을 겪고있으며 제국주의자들은 이를 좋은 기회로 여기고 침략전쟁의 불길을 지피고있다. 오직 우리 당만이 견결한 반제자주적립장을 고수하며 국제공산주의운동의 통일단결을 주장하고있는데 대외사업부문에 틀고앉은 사람들은 과연 누구의 눈치를 보고있는가. 이것은 대외사업부문만이 아닌 당사상사업에도 스쳐지날수 없는 영향을 미치고있다.

그이께서는 차성준이가 쥐고있는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보시며 물으시였다.

《동무가 중학교시절에 항일투사동지와 함께 나무를 심은적이 있소?》

《예.》

《그 투사는 누구요?》

《오진우동지입니다.》

이 일대에서 진행된 기동훈련을 지휘하던 오진우는 봄철을 맞으며 부대의 지휘관들과 함께 삼복중학교에 와서 나무를 심었는데 그때 차성준이와 함께 소나무를 심었던것이다.

《오진우동지랑 항일투사들은 조국의 흙 한줌을 품에 안고 원쑤들과 판가리결전을 벌렸소. 그들에게는 그 한줌의 흙이 애국으로 불타는 신념이 되였고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에도 그 흙을 품에 안고 웃으면서 해방된 조국을 눈앞에 그리였소. 그래서 사형장으로 나가면서도 투사들은 혁명가요를 불렀던것이요.

난 동무가 백두의 혁명정신을 지닌 참된 외교일군이 되여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이께서는 두 어린아이를 위해 강물에 뛰여들던 차성준의 모습을 다시 상기하시였다. 범상히 스칠수 없는 하나의 생활세부를 두고 차성준에 대한 그이의 애틋한 정은 더 강렬해지시였다.

《차동무, 고향땅에서 지금의 하루하루를 무심히 보내지 마시오. 조국을 위한 애국심은 자기 집뜨락에서부터 싹트고 무성해지는 법이요. 동무가 항일투사 오진우동지와 함께 심었다는 소나무처럼 말이요. 아마 동무의 인생에서 고향에서의 오늘은 귀중한 추억으로 남게 될거요.》

그이께서는 차성준의 손을 꽉 잡아주시였다.

《난 꼭 그렇게 되리라 믿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에 오르시여서도 눈물을 훔치며 서있는 차성준의 모습을 후사경으로 이윽토록 지켜보시다가 발동을 거시였다.

(《울밑의 봉선화》? 아니요. 성준이, 동무는 꼭 항일투사의 손을 잡고 심은 그 소나무가 돼야 해. 설한풍속에서도 푸르청청한 소나무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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