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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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안경을 낀 청년이 황급히 다가오다가 그만 매끄러운 돌에 지치여 물참봉이 되였다. 안경에 튀여난 물방울들을 맨손으로 서둘러 닦더니
《정말 고맙습니다.》
처녀애가 기쁨에 넘쳐 《아저씨!》하며 그의 목을 두팔로 감았다. 청년은 처녀애를 품에 안고 돌아서며 총각애에게 등을 내밀었다.
《용일아, 내 잔등에 업혀라.》
《기왕 들어선바에 같이 건너갑시다.》
《바쁜 걸음이겠는데… 제가 한발 늦다나니…》
그는 저쪽켠에 서있는 승용차를 흘끔 쳐다보면서 송구해서 말꼬리를 여물구지 못했다.
내를 건너서자 총각애와 처녀애는 깍듯이 인사하고는 날듯이 달려갔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 여기서 기다려라, 내 또 올게.》
청년은 애들의 등뒤에다 이렇게 소리치고는
《고맙습니다. 전 그럼…》
바삐 멀어져가는 그의 뒤모습을 정어린 눈길로 바래시던
산기슭의 다락밭에서 강냉이단지옮겨심기가 한창인데 쉴참인지 청년들이 왁작하고있었다.
김태호가 저편 강뚝에서 소리쳤다.
《차청소를 다했습니다.》
《그 책배낭을 가지고 오시오.》
쉴참에 웃고 떠들썩하는 청년들에게서 떨어져 거름더미옆에 따로 쭈그리고앉은 관리
《에, 과수원옆을 지날 땐… 갓끈을 풀지 말고 참외밭을 지날 땐 신발끈을… 제길, 매지 말라던가 풀지 말라던가?》
리만길이 눈을 뜨고 손에 쥔 책을 번지는데 청년들이 웃어대며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관리
《갓끈을 푸느라면 과일달린 나무를 보게 되니 따먹을 생각이 나구 신발끈을 매느라면 참외 따먹을 생각이 난다는거야.》
《그런데 〈목민심서〉란 제목은 무슨 뜻이나요?》
만길은 고개를 기우뚱했다.
《거 뭐라더라? 백성을… 백성을… 어-》 하며 책장을 다시 펼치는데 다른 청년이 대답했다.
《공장에서 글자를 잘못 찍었대. 원래는 〈목멘심서〉라나.
보라, 관리
와- 웃음이 터지자 리만길은 책장을 탁 덮고 일어서 버럭 소리쳤다.
《야, 이녀석들, 남의 속은 알지도 못하면서. 자, 이젠 그만들 흐야흐야 하구 또 버쩍 다그치자.》
《잘들 있었소?》
《어마나? 야! 평양… 평양동지!》
《아, 선동원 차성희동무구만.》
《차성희동무, 약속대로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가져왔소.》
《야! 고맙습니다.》
《관리
리만길은 떼꾼해서 마주보다가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반가와하며
《일전에 지나가던 외무성 부상어른의 운전사가 아닌가? 이거 반갑네.》
실로 어망처망한 그 판단에 김태호가 당황하여 서둘러 나섰다.
《아닙니다. 이분은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시는…》
《조직지도부 지도원입니다.》
그 말씀에 리만길은 흠칫 굳어지고 왁작거리던 청년들도 일시에 조용해졌다.
리만길은 속이 덜컥해가지고 조심히 입을 열었다.
《그런즉 우리 리당
그렇게 웃고떠들던 청년들도 금시 시무룩해졌다.
《난 누구를 문제세우려고 온게 아닙니다. 저 선동원동무와 손가락을 걸고 한 약속을 지키려고 왔을뿐입니다.》
《〈종달새선동원〉동무, 책이 아직 적은데 리사로청
참, 내가 제목을 하나 선정해줄가? 어떻소?》
차성희가 두손을 꼭 모아잡으며 눈이 초롱초롱해서 대답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