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2 장

7

(3)

 

그분께서 이 천고밀림에 백두산답사길을 개척하신 그 희한한 소문은 혜산땅에 쫙 퍼져서 너나없이 전설처럼 입에 올렸다. 도당에서는 차를 내드렸는데 그분께서는 항일유격대원들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이 력사의 땅을 차를 타고 갈수 없다시며 빨찌산들처럼 강행군을 하시였고 그때까지만 해도 전기도 들어오지 못한 삼지연마을에 가시여서는 《봇나무떡달》이라고 불리우는 봇나무진을 태우며 밀림속에서 류숙도 하시였다.

전쟁시기 이주해온 전재민들이 주민구성의 대부분을 이루는 리명수림산마을이며 대홍단에 가시였을 때 그곳 주민들이 평양의 학생들이 이 심심산골에 뭘 볼게 있다구 고생스레 왔는가고 하자 그분께서는 이곳은 심심산골이 아니라 조선혁명의 성지라고 하시면서 그곳 주민들이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선군사를 이끄시고 압록강을 넘어와 왜놈들을 족친 사연도 모르고있는데 대하여 몹시 상심하시였다. 항일의 피어린 력사가 태고의 밀림에 묻혀있었으니 그때 그분의 심정이 오죽하시였겠는가.

연단에 나선 웅변가가 아닌 백두수림의 송진내가 짙게 풍기는 목로인의 진심의 토설은 리석이며 창작가들의 가슴을 쾅쾅 울리였다.

그분께서는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벌써 백두산지구를 조선혁명의 대로천박물관으로 꾸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삼지연에 가시여서는 그곳의 맑은 물을 정히 떠가시고 보천보를 돌아보시면서는 수령님의 동상을 더 크고 웅장하게 모시지 못한것을 두고 못내 심려하시였다고 한다.

잊지 못할 그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눈귀를 적시던 목천복은 옹이 박힌 거쿨진 손으로 리석의 팔을 꽉 잡으며 목갈린 어조로 당부했다.

《혜산에 건립하는 대기념비를 김일성장군님의 영웅탑으로 온 세상이 보란듯이 세워주시우. 이건 나만이 아닌 우리 보천보 아니, 온 나라 백성들의 간절한 열망이구 소원이웨다.》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리석은 여느때없이 격정에 젖어 목로인을 부축해 일으켰다.

전나무들이 빼곡이 늘어서고 그사이로 잡관목이 우거진 등성이를 오르면서 리석은 방금 목천복로인이 들려준 이야기를 자자구구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기였다. 목천복이 편지사연을 알고있는것을 보면 보천보인민들이 대기념비건설을 두고 창작가들 못지 않게 마음을 쓰고있는것만은 분명했다. 아니, 창작가들보다도 더 관심하고있다는 생각에 종자도 없는 형성안을 내놓아 그이께 심려를 끼쳐드린 자책의 구름은 가슴속에 한겹, 두겹 무겁게 드리워졌다.

주대성이 숨을 헐썩이며 남먼저 등판에 올라서 목을 빼들고 사방을 살피다가 깜짝 놀라며 입을 딱 벌렸다. 금시 화석이 되여 굳어진 그의 두눈에 벌거우리한 불빛이 비쳐들었다. 주대성은 손을 들어 앞쪽 산기슭을 가리키며 다급히 소리쳤다.

《동무들! 저길, 저길 보오! 저 강옆의 산기슭을 말이요!》

《엉? 불이다!》

《어마나?! 불!》

《저런, 어떤 시렁배가 여기서 불질이야!》

목천복로인이 성이 나서 주먹을 흔들며 오른발을 탕탕 굴렀다.

황급히 올라온 리석이 바라보니 아닌게아니라 산기슭에서 검은 연기가 타래쳐오르고있었다.

리석이며 답사대원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골짜기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주대성의 뒤에서 뛰여내려오던 처녀설계가가 숲속에서 꿩 두마리가 날아오르는통에 와들짝 놀라며 나딩굴었다. 리석이도 잡관목에 얼굴이 긁히면서 헉헉하며 달려내려갔다. 산기슭으로 거의 내려가던 리석은 그만 와뜰 하며 굳어졌다. 철갑모를 쓰고 불방망이를 든 왜병들이 산기슭의 산전막을 불태우며 돌아치고있었다. 왜병들의 다른 한패는 총창을 꼬나들고 바로 답사대일행이 달려내려오는 기슭으로 뛰여오다가 눈이 화등잔이 되여 멎어섰다.

말을 탄 왜놈장교가 군도를 빼들고 뭐라고 악청을 터치다가 답사대 일행을 발견하자 흠칠하며 말고삐를 와락 잡아챘다.

말이 앞발을 쳐들며 호용하는데 겹치여 벼락치듯 하는 고함소리가 터졌다.

《이건 뭐야! 엉? 촬영중지!》

군도를 뽑아든 《왜놈장교》가 답사대원들에게로 달려와 군도를 앞으로 쑥 내밀며 소리쳤다.

《도대체 제정신들이요? 이거 영화촬영하는게 안 보이는가!》

《왜놈장교》가 군도까지 휙휙 저으며 고아대는통에 처녀설계가는 비명을 지르며 뒤걸음치다가 궁둥방아까지 찧었다.

리석이 앞에 나서며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우린 산불이 난줄 알고

이때 《리석동무 아니요?》하며 밤색모자채양을 뒤로 돌려쓴 촬영가가 다가왔다.

《아니, 이게 누구요?!》

리석은 미술대학(당시)에 다닐 때 연극영화대학(당시) 촬영과에 다니던 그와 자별한 사이였다. 촬영가는 미술에 조예가 깊어야 한다고 하면서 늘 리석의 대학기숙사방에 찾아와 소묘도 하며 명절날에는 모란봉에 화판을 들고 함께 오르기도 했었다.

맑은 물이 은비단을 펼치는 강가에서 예술영화 《유격대의 오형제》의 계절촬영을 하던 영화촬영단과 목천복로인이 안내하는 리석이네 창작가일행은 웃음을 터뜨리며 얘기를 주고받았다.

《우린 산불이 났다구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갑자기 왜놈들이 불방망이를 들고 왝왝하기에, 허허…》

목로인이 엽초를 말며 하는 말에 촬영가도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우린 또 어쨌는지 압니까? 연출대본에 없는 사람들이 촬영기렌즈에 뛰여드는통에 난 그만이 눈이 잘못됐나 해서 이렇게 까뒤집어보기까지 했다니깐요.》

《어쨌든 반갑습니다. 대기념비창작을 하는 리석동무랑 이렇게 만났으니… 참, 대기념비의 주상 조각창작을 맡았다지요? 그런데 여기론 어떻게 왔습니까?》

《백두산정신을 배우려고 답사길에 올랐습니다.》

《백두산답사를요?》

《헌데 방금 왜놈 토벌대의 악착한 토벌장면을 직접 보기까지 했으니 체험하는바가 큽니다.》

리석은 강기슭의 하얀 옥돌을 집어들며 연출가에게 호기심에 찬 어조로 물었다.

《예술영화 유격대의 오형제 김정일동지께서 문학으로부터 연출대본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보아주시고 몸소 가필까지 해주셨다면서요?》

유격대의 오형제문학과 연출대본뿐인줄 압니까? 그이께서는 새로 제작하는 영화들에서도 몸소 연출가, 촬영가가 되시여 연출형상과 촬영구도까지 촬영기렌즈를 보시며 잡아주시고 아, 글쎄 달리는 렬차에서 촬영할 때는 어쨌는지 압니까?》

그날은 연기가 뽀얀 속에서 전경촬영을 하게 되였는데 언덕에서 연출형상과 촬영구도에 대하여 창작가들로부터 들으신 그이께서는 촬영기를 한곳에 세워놓고 촬영하면 형상의 폭과 깊이를 보장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달리는 렬차우에서 촬영하는것이 좋겠다고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몸소 렬차지붕에 오르시여 촬영기다리를 잡으시며 촬영을 시작하라고 이르시였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