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7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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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도만의 방에서 나오는 신인하의 마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웠다.
두시간나마 제 흥에 겨워 일장훈시를 해대는 김도만의 방에 서있자니 목이 뻣뻣할 정도로 혈압이 오르고 귀에서는 한여름의 매미울음소리같은
소음이 윙윙거려 정신까지 혼미해지는듯싶었다.
…기념비형성안은 만점이다. 웬간해서는 웃음을 모르는 박부위원장의 얼굴이
보름달이 되였다. 이제는 이 형성안대로 조각군상을 세우라. 조각창작에 착수하기 전에 수고한 조각가들을 외국참관시키라. 외국의 기념비들이
조각가들에게는 창작의 교과서로 될것이다. 이것은 박부위원장이 창작가들에게 내리는 후한 표창이다. …
김도만의 흥분에 뜬 소리를 듣는 신인하의 눈앞에는 오가잡탕형성안이라고 책상을 내리치던 김일의 대노한 모습이 떠올랐다. 신인하는 성난
호랑이처럼 결기를 참지 못해 불을 토하는 김일을 보며 마치 자기가 한 형성안인듯싶어 몸둘바를 몰라했다. 헌데 김도만의 견해는 너무도 상반되지
않는가.
삼복철에 무거운 짐을 지고 령마루로 오르기라도 하듯 몰켰던 숨을 연방 터치며 복도로 걸어오던 신인하는 인기척에 주춤 섰다. 앞에
김정일동지께서 서계시지 않는가.
그이를 뵈옵자 신인하는 고개를 짓수굿하며 눈길을 떨구었다. 숨을 죽이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김정일동지께서 조용히 뒤따라 들어오시였다. 그이의 눈길은 자신의
곤혹스러운 심리를 환히 꿰뚫어보시는것만 같았다.
신인하는 며칠전 허담으로부터 그이께서 지방실태를 료해하시고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출판부수와 보급문제를 두고
심려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오늘도 김도만에게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의 출판부수를 늘여야 하지 않겠는가고 제기했댔는데 대번에
도리질했다.
《회상기야 옛말책이나 같은데 종이사정도 생각해야지. 현단계에선 〈향토꾸리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전물을 더 많이 찍고 〈목민심서〉출판부수도
늘여야 하오.》
결국 긁어부스럼격이 되고보니 그이를 뵈옵기가 더 괴로왔다.
김정일동지를 당중앙위원회에 모신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신인하는 마음속에 깊이 새겨두고
음미하는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이를 처음 뵈왔을 때 하신 말씀이였다.
《앞으로 많이 배워주십시오.》
너무도 겸허하게 하시는 말씀을 신인하는 10년나마 당중앙위원회에서 일한 일군으로서 새로 온 지도원들이 상례적으로 하는 인사말처럼 스칠수가
없었다. 그후 그이께서 하시는 모든 사업을 옆에서 목격하면서 자신의 당사업에서 지금껏 모르고
지냈던 빈구석들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알게 되였다.
방안에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그이께서 먼저 침묵을 깨시였다.
《기념비형성안을 보고 왔습니다.》
신인하는 그 형성안이 김정일동지께 심려를 끼쳐드렸을것이라는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직책상 부부장이기에 그는 지금껏 마음속 고충을 그 누구에게도 터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부글거리는 울화를 참고 견디는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사업일지를 책상우에 놓고 한동안 가쁜숨만 련발하던 신인하는 그이께만은 자기의 아픔을 아뢰고싶은
강렬한 충동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김도만이 두시간나마 한 훈시를 말씀올렸다.
창작가들을 외국에 견학보낸다는 말에 그이께서는 고개를 저으시였다.
《창작가들은 당장 백두산답사를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그이의 말씀에 신인하는 터갈라진 입술만 감빨다가 지금껏 품고있던 심중을 종시 터치고야말았다.
《그밑에서 일하기가 정말 괴롭습니다.》
과묵하던 사람이 일단 말문을 터뜨리니 여간 달변이 아니였다.
김일이 말했듯이 웅변에서도 《기관총》이였다.
흐르는 물에 던져진 락엽처럼 살아서야 무슨 생의 보람이 있는가, 차라리 탄광이나 광산에 가서 착암기를 휘두르고싶다고 자기의 속생각을
기탄없이 터쳐놓았다.
그이께서는 창밖을 이윽히 보시다가 고뿌에 보온병의 더운물을 부으시여 신인하가 서있는 책상에 놓아주시였다.
신인하는 물이 담긴 고뿌에 눈길을 박았다.
방안엔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조용히 방에서 나가시였다.
신인하는 의자를 당겨 더운물고뿌가 놓인 책상을 마주하고앉았다.
김정일동지께서 물을 부어 놓아주신 고뿌. 여기에는 그이의 많은
말씀이 담겨져있는것이 아닌가.
고뿌속의 물이 호수가 아닌 대양의 물결처럼 느껴졌다. 자기의 고충을 십분 리해하시고 그 고충을 함께 나누시려는 그이의
다심한 정이 차넘치고있다는 생각이 페부를 찔렀다. 또 그이께서 자기의 싸늘한 심장속에 기관총을 억세게 틀어잡고 원쑤격멸의
전장으로 달리던 그날의 그 열정의 불길을 다시 지펴주시는 고무와 격려가 차있음을 가슴뜨겁게 받아안았다.
신인하는 그이께서 놓고 나가신 그 고뿌를 두손으로 꽉 잡았다. 그리고는 석상처럼 굳어진채 그이의
자애로운 영상을 다시 눈앞에 그리며 우러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