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2

(5)

 

시관도 크게 놀라서 완기를 따로 불러 만나보았다. 인물도 더없이 잘난데다가 례의범절도 어른스러운 그가 탐났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완기를 욕심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오위도총부의 대호군(종3품)벼슬에 있는 박표라는 량반이였다.

그는 소년과거급제생들의 명단을 공시하는 방이 나붙기를 기다리다가 선참으로 달려와보고 으뜸으로 장원하였다는 조완기를 찾아보았다.

첫눈에도 열대여섯쯤 되여보이지만 키는 벌써 어른키에 이르렀으며 이목구비가 시원스럽고 행동거지가 듬직하고 침착스러웠으며 씩씩함과 청신함이 온몸에 넘쳐흘렀다.

박표는 기뻤다. 오래동안 물색해오던 사위감이 드디여 나타난것이다. 그는 이 소년장원생이 장차 나라의 큰 거목으로 자라나리라고 굳게 믿어졌다.

박표는 완기를 꼭 자기의 사위로 삼으리라고 결심했다. 그에게는 애지중지 키운 딸이 있었다. 열일곱, 완기보다 한살 우이지만 그때문에 흠잡힐 까닭은 없는것이다.

《너의 부친이 조헌이라면 내가 잘 안다. 학문도 깊고 청렴결백하고 대바르며 강직한 성품을 지니셨지. 한때는 조정에서 벼슬을 살다가 지금은 공주교수로 계시구.

나는 오위의 대호군벼슬에 있다. 허허, 나는 네가 장원으로 우뚝 솟아오른 방을 보고 너의 뒤바라지를 하고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는것을 어쩔수 없고나.

물론 너의 부모님들이 어련하시겠지만 멀리 충청도에 계시지 않느냐. 앞으로 크게 될 학동을 돕는것은 의로운 일이라 누구나 다 하고싶어 하느니라. 예로부터 귀인이 나면 그를 돕는 은인이 나타나는 법이라. 허허, 그래서 너를 뒤받침하려 하니 별다르게 생각지 말아라.》

박표는 껄껄 웃으며 완기의 어깨를 친근히 두드려주었다.

완기는 대호군의 높은 벼슬에 있는 량반이 왜 이렇게까지 친절을 베푸는지 몰라서 한동안 어리둥절하였지만 그 호의가 너무나 고마와서 그에게 큰절을 드리였다.

《아직 미거한 학동을 이처럼 크게 쳐주시고 보살펴주시겠다 하시니 그 은혜 헤아릴 길이 없사오이다. 하오나 너무 념려하지 마옵소서. 우리 아버님께서는 사람은 제힘으로 일떠서야 한다고 늘 말씀하였소이다. 제 어찌 부모님의 뜻을 어기오리까.》

《하하하, 옳거니. 그래야 하구 말구. 너의 그 말이 금싸라기 같고나. 너는 래일부터 성균관에 들어가 열심히 글을 읽어라. 내 드문드문 짬을 내서 너를 찾아보겠다. 그동안에 학문이 얼마큼씩 자랐는가를 보려고 하니라.》

박표는 완기에게 큰 기대가 어린 웃음을 만족히 지어보이고 돌아갔다.

대호군 박표는 자기의 직분을 감당하는데서 무반의 재능도 있고 학문도 있어서 경서와 시문에도 문반의 벼슬아치들에 못지 않았다.

그는 더 높은 벼슬자리를 탐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기의 이 욕망을 실현하자면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요긴하고 요긴한것은 큰 권력을 쥐고있는 사람들의 눈에 잘 보여야 한다는것을 날이 가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 깊이 절감하게 되였다. 이리하여 박표는 김공량에게 곱게 보였다.

그는 김공량이 대궐주변에 널려져있는 백성들의 밭을 왕궁에 속한 토지라고 하면서 궁인들을 시켜 빼앗을 때면 궁궐주변을 순찰하는 오위의 군사들을 내몰아 항의하는 백성들을 가로막아주면서 김공량의 비법, 불법행위를 도와주기도 하였었다. 그는 이렇게 여러가지로 아첨하고 또 뢰물질로 벼슬을 더 올리고 부귀를 더 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인생은 늙기마련이고 벼슬은 내놓을 때가 오는 법이다. 아들이 없는 그로서는 부귀영화를 대대로 이어갈수 없는것이다. 그래서 박표는 아들삼아, 사위삼아 크게 믿고살 사람, 사위 하나는 학식과 재주로 크게 될 젊은이를 고르려고 오래전부터 고심해왔었지만 눈에 차는 신랑감을 찾아내지 못하였었다.

그에게는 외동딸 설향이만 있었다.

바로 이런 박표였기에 완기를 대견히 여기고 사위감으로 단단히 점찍어놓게 되였다.

한해가 지나서 박표는 성균관에 나가 완기를 만나보았다.

그간 완기의 학문은 몰라보게 원숙해지고 소년티도 사라지고 신랑감으로 손색이 없도록 성장하였다.

박표는 완기를 불러내였다.

《너는 나와 함께 어디를 잠간 다녀와야 하겠다.》

완기는 대호군이 친히 동행하기를 권하는데 거절할수 없었다.

박표는 이날 아침에 모녀를 불러앉히고 《오늘 내가 사위감을 데리고올테니 한번 보아라. 네가 지난해 너를 구원한 총각을 여지껏 사모하는것같은데 내가 데리고오는 총각은 소년과거에 장원하고 성균관에 들어와 학문을 닦고있는중이다. 그를 따를만한 사람이 없느니라. 인물 또한 잘나서 어느 대가집 규수들도 바라마지 않을 신랑감이로다.》 하고 미리 말해놓았었다.

그의 딸 설향이는 가슴이 설레였다. 나를 구원한 총각도 사내다운 용모와 씩씩하고 억센 기상이 있기로 다시 만나 남녀의 정분을 한껏 나누어보려고 하였었지만 그보다 훌륭한 총각이 있다면야 어이 마다할가. 설향이의 생각은 이러하였다.

박표는 딸의 반대의향이 없는것을 보고 완기를 집으로 데리고왔다. 완기는 이런 일을 전혀 모르고 고래등같은 기와집 대문안에 들어섰다.

대문간 좌우방에는 하인청이 있고 그앞을 지나면 대문밖에서 안마당을 들여다볼수 없게 석축담이 푸른 기와를 이고있었다. 이 석축담을 에돌면 드넓은 안마당을 둘러싸고 호화로운 안채와 옆채들이 붉은 두리기둥에 떠받들려 높이 솟아있었다.

《이 집이 내 집일세. 임자는 제집처럼 생각하고 몸가짐을 스스럼없이 하게. 허허허.》

박표는 어리둥절하여 머뭇거리는 완기를 이끌어 티 한점 없이 옻칠이 번들거리는 마루를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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