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2

(4)

 

뜻밖에 얻어맞은 귀뺨을 어루쓸며 젊은놈은 빙글빙글 웃었다.

《귀쌈을 맞아도 금가락지낀 손에 맞으랬다더니… 요것 봐라. 하- 죽은 고기보다 팔딱팔딱 뛰는 고기가 더 맛이 있지.》 하고 젊은 놈이 아가씨의 장옷을 활 잡아챘다.

《여 개똥쇠, 비켜. 그 딸기는 내가 먹을거야.》

까치둥지같은 상투머리에 때가 오른 베수건을 동여맨자가 커다란 자루를 아가씨의 머리우에 씌우려고 하였다.

《제발, 우리 아가씨를 놓아주시오이다. 그러면 안되오이다.》 시녀가 상투쟁이 앞을 막아나서며 애걸복걸 빌었다.

《너두 자루속에 들텐데 뭘 그래. 여 개똥쇠, 이년도 곱구만. 빨리 자루에 넣어야지.》

《암 그래야지. 그년은 내가 먹을테야.》

상판이 밟아놓은 소똥처럼 이그러진자가 자루를 시녀의 머리우에 씌우려고 달려들었다. 한쪽에선 아가씨가, 다른쪽에선 시녀가 자루속에 들지 않으려고 태를 쳤다.

바로 이때였다. 난데없는 젊은이 하나가 번개처럼 몸을 날려 벼락같이 상투쟁이를 내리찍고 개똥쇠를 때려눕혔다. 다른 한놈도 젊은이의 발차기에 급소를 채워서 꺼꾸러졌다.

세놈이 다 녀자들에게 정신을 쏟다가 날래기가 호랑이같은 젊은이의 드센 발과 손칼에 너부러졌다. 실로 눈깜짝할 사이였다.

아가씨와 시녀는 자기들을 구원해준 젊은이가 너무 놀라와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보았다. 했더니 애리애리한 소년이여서 더구나 놀랐다. 그러나 하는 말이 어른스러웠다.

《아가씨들은 빨리 하늘소를 타고 갈 길을 가시오이다. 이놈들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어서. 내가 뒤를 봐줄테니.》

《예, 예, 아가씨, 얼른 하늘소를 타시오이다.》

시녀는 땅에 뒹구는 장옷을 집어서 아가씨에게 입혀주는데 아가씨는 당황한 속에서도 총각을 홀린듯 바라보고있었다.

나이는 열여섯쯤 되여보이지만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고 온몸에 생신한 슬기와 담력이 넘쳐나는 총각이였던것이다. 마음이 저도모르게 끌렸다.

총각은 땅바닥에 쓰러졌던 중늙은이를 일으켜주고 하늘소고삐를 쥐여주었다.

아버님, 어서 아가씨들을 데리고 가시오이다.》

《원, 세상에 이런 고마운 젊은이도 다 있나. 어디에 사는 뉘집 도련님인지 알고 가게 이름이라도…》

《하하, 무슨 말씀을. 어서 떠나시오이다.》

완기는 웃으며 땅에 떨어져있는 도적들의 칼을 발로 밟아 꺾어버리였다. …

완기는 길도적들을 때려눕히고 방비없는 아가씨들을 구원한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어렸을적부터 무술을 익혀주신 아버님이 고마왔다.

그는 별들이 하늘가득 반짝이기 시작하는 2경이 조금 지나서 안세희의 집을 찾아들수 있었다.

안세희는 완기를 보고 또 조헌의 편지를 보더니 비로소 온 얼굴에 웃음을 환히 담고 그를 맞아들였다.

그날부터 완기는 방에 꾹 눌러앉아 과거를 보일 글을 읽었다.

드디여 과거날이 왔다.

조선8도 365개 고을의 량반선비들이 자기의 아들들을 데리고 성균관앞마당에 모여들었다. 이내 성균관관리가 나와서 부모들을 대문밖에 내보내고 소년과거생들만 남겼다.

관리는 수백명의 과거생들을 자그마한 앉은뱅이책상앞에 따로따로 앉히고 엄하게 말하였다.

《시험지 맨 웃머리에 자기 이름과 나이, 부모의 이름과 벼슬직품, 주소를 쓰고 남이 보지 못하게 접어서 풀로 붙여야 한다.

시험을 칠 때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쓰는 사람이 나타날 때에는 즉각 과거장에서 쫓겨날뿐 아니라 영원히 과거에 응시할수 없다. 금일 소년과거를 주관할 시관은 예문관 대제학(정2품)대감이시다.》

이때 전갈하인이 목청을 돋구어 《시관님께서 듭신다.》 하고 웨치고 그뒤를 이어 사모관대(공복)하고 불룩이 내민 배에 은고리가 달린 서띠를 띠고 앞코숭이가 멋들어지게 들린 누런 목화신을 신은 대감이 마치 병아리무리속을 걷는 게사니처럼 장히 거드름스럽게 나와 서탁앞에 우뚝 섰다.

《시관님께 문안드리옵나이다.》

소년과거생들이 일제히 부복하면서 절을 한 다음 자기들의 앉은뱅이책상앞에 앉았다.

대감은 점잖게 머리를 끄덕여 절을 받고 입을 열었다.

《지극히 현명하시고 선견지명이 일월같이 밝으신 임금님께서는 어릴적부터 뛰여난 학동을 나라의 동량지재로 키우시려고 오늘에 소년과거를 특별히 보이라 어명을 내리시였나니 여기서 합격한 학동들은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3년간 더 닦은 후에 과거를 보고 벼슬을 받노라, 이 아니 영광이 아니랴. 너희들이 이번 소년과거에 모두 장원급제하기를 바라노라.》

대감은 이어 시체를 내놓았다.

하나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이 무슨 꽃인가를 시로 지어 답변하라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침에 떠오르는 해는 왜 크고 가깝게 보이며 뜨거웁지 않은가, 정오의 해는 하늘높이 멀리 있는데 가까운 아침해보다 왜 더 뜨거운가 하는 문제였다.

완기는 어렸을 때부터 청경우독(맑은 날에 밭일을 하고 비오는 날에 집에서 글을 읽는다는 뜻)으로 부모님들의 일손을 도와 목화를 심고 가꾸면서 목화꽃이 제일 곱다고 생각해왔었다. 그래서 그는 주저없이 목화꽃시를 지었다.

 

세상에 아름다운 꽃들은

요염히도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목화꽃은 소문없이 피고피여

따스히도 백성들을 감싸주어라

 

목화송이 백설같은 그 마음

사람들의 옷이 되는 그 지성

아름답기 세상에서 으뜸이라

사람마다 다정하게 웃어반기네

 

완기는 두번째 시제도 천지음양설과 결부하여 사리정연하게 써놓았는데 그 필법이 세련되고 글자 하나하나가 살아숨쉬는것같아서 경탄을 자아냈다.

이날 과거급제생이 열두어명이 되였다. 그중에서 완기는 장원으로 급제생들우에 우뚝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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