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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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창작단에서 리석과 쌍벽을 이룬다고 할수 있는 재능있는 조각가 주대성의 누이동생 주현희와 리석의 사이에는 남다른 인연이 맺어져있었다. 그것은 리석이 미술대학에 다니던 그 시절부터 시작되였다. 목재공장 가구작업반에서 일하다가 미술대학으로 간 리석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추 대학에 온 주대성의 1년 후배였다. 나이는 리석이가 주대성보다 두살이나 우였기에 주대성은 리석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대학시절 기숙사생활을 하는 주대성에게 일요일이면 동생 현희가 음식을 싸들고 오군 했는데 그때마다 대성은 리석을 그 자리에 꼭 부르군 했다. 리석과 현희가 허물이 없어져갈만 할 때 누구입에서 먼저 튀여나온지 몰라도 처남, 매부라는 말이 울려나왔다. 친근감의 표시였다. 주대성은 동무들이 있는데서도 리석을 매부라고 불렀고 롱질을 모르는 리석도 때로 주대성을 처남이라고 부르게끔 되였다. 이 부름말은 현희가 있는데서도 곧잘 울리군 했다. 닭알형의 얼굴에 늘 봄빛과도 같은 밝은 미소를 머금고있는 현희는 오빠들의 노는 모양을 재미있게 지켜보며 방싯 웃군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대성과 리석의 우정은 만수대창작사에서 함께 조각창작에 열정을 쏟으면서 더욱 두터워졌다. 롱으로 시작된 처남, 매부라는 부름말이 애틋한 의미를 부각시키며 리석과 주현희의 사회생활과정에 련정이라는 뿌리를 조용히 내리였다.

어쩌면 젊은 시절의 한갖 랑만적인 추억으로만 남고 그대로 스러져버렸을지도 모를 그 씨앗이 순이라는 리석의 조카로 하여 새잎을 움틔웠다. 형의 외동딸 순이는 삼촌을 닮아서인지 미술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있었다. 그래서 학생소년궁전 미술소조에 다녔는데 그의 지도교원은 주현희였다. 현희는 순이의 엄격한 선생이면서 다심한 어머니기도 하였다. 리석은 순이에게 쏟는 현희의 정에 눈길이 돌아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현희의 정을 고마움으로만 받으려고 애썼고 매번 만날 때마다 선생으로 깍듯이 례의만 표했다. 현희 역시 리석을 학부형으로 대상하면서도 오빠와 함께 일하는 조각가이기에 리석을 존경하고 따랐다.

더구나 두사람의 관계를 하나의 줄로 이어준것은 부모들이 살아온 경위였다. 리석의 아버지는 항일유격대에 입대하여 싸우다가 정치공작원으로 국내에 파견되여 조국해방작전을 위한 무장소조를 조직하던중 희생되였고 현희의 아버지 역시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에 망라되여 반일투쟁을 하다가 변절자의 밀고로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희생되였다. 미술가인 리석은 혁명렬사들인 자기 아버지와 현희의 아버지 최후의 모습을 상상화로 소묘도 하면서 현희에게 쏠리는 다심한 정을 남모르게 느끼군 하였다.

주현희는 전국미술전람회에 아동단원 금순이를 형상하여 출품하였는데 순이를 모델로 하여 그렸다. 리석은 전국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작품들을 심사하러 갔다가 아동단원 금순이를 형상한 조선화앞에서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순이를 모델로 한 한폭의 조선화 금순이의 초상도 두사람의 련정의 잎새를 더 푸르싱싱히 펼쳐주었다.

사업과 생활이라는 두 길에서 창작에서는 화실의 불길처럼 열정가인 리석은 사생활에선 무릇 사람들의 곡해를 살 정도로 담을 쌓기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언젠가는 그의 창작실에 들어왔던 현희가 밝게 웃는 처녀의 조각을 보고 웃음을 모르는 조각가가 웃는 얼굴은 어쩌면 이리도 방불히 형상했는가고 물은적도 있었다. 지금도 리석은 매번 만날 때마다 수집음에 눈길을 떨구군 하는 처녀교원 현희의 모습을 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자신도 알길없는 감성의 파도는 때없이 일어 심장의 벽을 두드림을 어쩔수 없었다.

리석이며 조각가들은 초상창작에 달라붙었다. 황유탁이 이미 조직사업을 해놓았는지 모델을 서줄 사람들이 연줄연줄 찾아들었다. 그중에는 보천보의 목천복로인도 뽑혀와있었다.

리석은 백발을 날리는 목천복로인에게 쇠스랑을 주며 수고스러운대로 하루만 시간을 좀 내달라고 했다.

《임자들을 돕는 일이라면야 하루가 아니라 열흘, 백날도 아까울게 없지. 헌데 내 다는 모르겠네만 이런 그림은 왜 필요한가?》

로인은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주름진 눈을 수평보다 조금 치뜨며 말했다.

《보천보전투야 장군님께서 울리신 총성을 신호로 빨찌산들이 왜놈들을 죽탕친 전투인데 쇠스랑을 든 늙은인 없었던게구 그때처럼 두손을 쳐들구 만세를 부르라면 몰라두

목로인만이 아닌 보천보의 로인들 여럿이 기웃거리며 수군거렸다.

《쇠스랑이요, 낫이요, 마치요 하는걸보니 3. 1봉기때 생각이 나는데

《옳거니! 어림짐작에두 그런 탑을 어덴가 또 세우는가 보웨다.》

《가림천마을 박령감 셋째며느린 행주치마에 돌을 담아들구 서있던데 그건 행주산성싸움을 만들어내는건가?》

《늘그막에 모델인지 뭔지 하는데 다 나서보구, 허허.

청년들이며 처녀들도 모델로 뽑힌것이 큰 자랑거리같아 웃고 떠들며 함마를 들고 나선다, 낫을 들고 뛰여온다 하면서 괜히들 들썩거렸다. 어떤 할머니는 손자애를 끌고와 제발 모델로 세워달라고 청까지 했다.

이틀이 지나 황유탁이 창작현장에 나타났다. 그는 모델을 형상하는 조각가들을 눈여겨살피다가 리석을 쿡 찔렀다.

《주대성동무는 왜 안 보이오?》

리석은 주대성과 아귀다툼을 했던 사연을 그대로 이야기하기가 거북하여 대기념비창작이 바쁘기에 주대성은 자기가 빼놓았다고 어물쩍 넘겼다.

《그러면 되오? 주대성이야 동무와 어깨겨룸하는 실력가인데 이런때 한몫 해야지.》

황유탁이 불러오자 주대성은 태연스럽게 자기는 기념비형성안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짤랐다.

《뭐? 기념비형성안창작때문에 시간이 없다?》

《내각에 기념비모형사판을 제출할 날자가 보름밖에 없는데 언제 모델소묘를 할 시간이 있습니까? 그런건 다른 미술가들을 동원해도 되지 않습니까?》

《동무 어따대구 감히 감놔라 배놔라야! 이건 김도만부장동지가 직접 지시한 문제야!》

황유탁은 리석을 흘겨보며 또 목에 피줄을 세웠다.

《리석동문 뭐요? 내 말하지 않았나, 무슨 문제가 제기되면 려관에 와서 제꺽 알리라구!》

황유탁은 푸르락붉으락하며 고아대다가 휭 바람을 일구며 사라졌다. 리석은 주대성에게 종이 몇장에 모델을 그려놓으면 될걸 가지구 괜히 미움을 받으면 어떻게 하는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소리도 있지 않느냐며 나무랐다.

리석이 우려한 모난 돌은 종시 정대에 맞았다. 다음날 황혼무렵 황유탁이 건설장에 나타났다. 그는 조각가들이 모델을 형상한 연필화들을 가방에 넣은 후 위협조로 오금을 박았다.

《주대성이 문제는 부장동지한테 그대로 보고하겠소. 제가 뭐길래 상부의 지시에 감히 시간타령이야. 당지도부의 지시를 두고 흥정하는건 반동짓이란 말이야.》

《주대성동문 대기념비형성안을 빨리 완성해야겠기에 그런건데

《동문 뭐요? 원칙도 없이!》

황유탁은 버럭하며 서슬푸른 도끼눈을 희번뜩거리였다.

《저 사실 주대성동무는 대기념비창작에서 없어서는 안될 재능있는 조각가입니다.》

《재능? 그 손에 수갑이 차례지지 않으면 천만다행이야!》

황유탁은 또 으름장을 놓더니 모델초상들을 가방에 쑤셔넣고 휭- 사라졌다. 리석은 모델형상문제로 주대성이가 황유탁에게 불을 일군통에 맞을 생벼락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황유탁이 떠난 후 리석은 어둠이 몰켜드는 건설장구내로 무거운 걸음을 옮기며 한숨만 떨구었다. 만약 주대성에게 돌이킬수 없는 참변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것인가.

리석의 머리속에는 주대성이보다도 그의 동생 주현희의 눈물머금은 얼굴부터 떠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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