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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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는 근엄하신 표정으로 다시 집무실을 거니시였다.

《지금의 사태를 그대로 둔다면 사회주의는 복잡다단한 풍랑에 맞다들것입니다. 다가오는 70년대, 80년대 그리고 90년대 물론 아직은 예측이지만.》

《땡 땡…》

깊은 고요에 잠긴 당중앙위원회 창가너머로 어디선가 울려오는 종소리 평양역사의 시계종소리가 진홍색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새벽하늘가에 울려퍼지고있었다.

허담은 자기가 들고온 물건의 포장을 벗기기 시작했다. 조선화 《총석정의 해돋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림을 보시자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아, 총석정의 해돋이! 보기만 해도 시원한게 정신이 다 맑아지는구만요. 역시 우리 조선화는 서방의 유화가 흉내낼수 없는 다감하면서도 정서적인 선률이 흐릅니다.》

《사실 전, 이 그림이 시원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선률에 대해서는 전혀 감각 못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누구입니까?》

《평양학생소년궁전 미술교원인 주현희동무입니다.》

《주현희? 조각가 주대성동무의 동생이지. 그 동무의 재능은 나도 알고있습니다.》

허담은 해방전 13살때부터 광산에서 소년광부로 온갖 고역에 시달렸다. 당시 주대성의 어머니 윤씨는 광산합숙에서 식모로 일하였는데 어린 허담을 친혈육처럼 위해주었다. 남편이 지하조직에 망라되여 투쟁하다가 변절자의 밀고로 체포되여 희생된 후 대성이와 현희 두 자식을 데리고 광산으로 은신하여온 윤씨는 허담의 옷도 빨아서 기워주고 토질병에 걸려 고열에 신음할 때에는 광산아래 골짜기의 오막살이에 눕혀놓고 온갖 지성을 다해 간호해주었다. 왜놈광산주가 토질병이 전염력이 강하다며 버럭처럼 버렸을 때 허담은 윤씨의 정성이 아니였다면 살아날수 없었을것이였다. 하기에 허담은 윤씨를 친어머니처럼 따랐고 주대성과 주현희를 동생으로 끔찍이 사랑했다.

총석정의 해돋이, 정말 잘 그렸습니다.》

그이께서 풍경화를 두고 만족해하시자 허담은 옥죄였던 가슴이 쫙 펴지는 안도감에 몰켰던 숨을 조심히 내그었다.

《피곤하실 때마다 이 그림을 보시며 피로를 푸십시오.》

허담은 풍경화를 들고 벽쪽으로 바삐 갔다. 벽에 걸려있는 어디서나 볼수 있는 보통수림을 형상한 저 풍경화를 이제야 집무실에서 내리게 됐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 풍경화를 내리려고 그럽니까?》

《실은 이 풍경화가 금강산이나 묘향산의 절승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보통수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총석정의 해돋이를 그리게 했습니다.》

《성의는 고맙지만 그러지 마십시오.》

어딘가 위압이 느껴지는 거절에 허담이 일순 굳어졌다.

(?!)

그이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그림속의 수림을 바라보시다가 두손을 뒤로 모두어쥐시고 집무실안을 거니시였다.

침묵정적허담은 자기가 하찮게 보았던 저 그림에 어떤 사연이 깃들어있음을 깨달았다.

이윽고 걸음을 멈추신 김정일동지께서 벽에 걸린 그림에 다시 눈길을 주시였다.

《나는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하게 되면서 미술가들에게 저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감성의 벽을 두드리지 못하는 그림은 자기의 생명을 잃고맙니다. 더구나 그림이 뭇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경우 그것은 미술가의 붓대를 꺾는것이나 같습니다. 부상동지와 마찬가지로 이 방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저 그림에 그닥 흥미를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별로 볼멋도 없는 저런 그림을 왜 걸어놓았는가 하고 기웃거립니다. 하지만 저 그림의 진가, 진미를 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림을 걸어놓은지 얼마 안되였을 때인데 오진우동지가 이 방에 왔다가 대뜸 아, 요영구!〉하고 굳어지더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며 허담을 돌아보시였다.

수령님께서 요영구에 대해서 말씀하시길래 미술가들에게 얘기해줬더니 이렇게 형상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기의 실책에 난색을 지으며 안절부절 못하는 허담의 마음을 풀어주시려고 그의 손을 잡아 의자에 앉히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일제의 대토벌에 대처하여 요영구회의에서 유격근거지를 해산할데 대한 용단을 표명하시고 북만원정의 길에 오르시였습니다. 근거지를 지키기 위하여 유격대원들과 생사를 같이하며 싸운 인민들은 수령님의 품에 안겨 가슴을 쳤고 떠나는 유격대원들도 인민들과 헤여지며 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항일대전을 광활한 지대에로 확대발전시키기 위해 수령님께서는 아픈 가슴을 안으시고 요영구를 떠나셨다고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요영구의 그날을 추억하시면서 그때가 조선혁명에서는 가장 간고하고 어려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수령님께서 잊지 못하시는 요영구의 그 시절을 생각합니다.》

자기로서는 상상도 못한, 또 지금껏 생활에서 있어보지 못한 너무도 뜻밖의 급습에 허담의 심장은 터질듯 세괃게 박동했다.

하나의 풍경화로만 보았던 저 그림, 수령님에 대한 불타는 충정, 수령님의 위업에 대한 헌신으로 충만되여있는 그이의 세계속에 보통그림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어처구니없고 가슴이 서늘해왔다.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죄송합니다. 그런줄도 모르고.

《허, 이거 너무 심각해하니 나까지 긴장되누만요. 저 그림은 나에게서 말없는 선생입니다. 수령님께서 헤치신 피바다, 불바다를 늘 안고 살게 해줍니다. 우린 항일의 엄혹했던 그 력사를 순간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집무실안을 거니시다가 벽에 걸린 요영구의 수림에 다시 시선을 주시였다. 그 수림속의 소나무가 그이의 안광에 확대되여 비껴들었다.

《사람의 육체적생명은 심장이 멎으면 끝납니다. 대신 나무는 뿌리가 썩으면 죽습니다.》

허담의 눈길은 요영구의 수림에 닿았으며 그이께서 자기들의 결혼식을 축하하여 선물로 주신 수첩의 친필을 생각하였다.

《살아도 죽어도 수령님을 위하여!

1956년 9월 10일

김 정 일

김정일동지께서 자신의 수첩에 그 글발을 새기실 때 우리 혁명은 간고한 시련을 겪고있었다. 원쑤들의 침략책동과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음모, 대국주의자들의 간섭

그때 수령님께서는 꼬박 닷새밤을 새우시며 집무를 보시였다.

그이께서도 수령님곁에서 함께 닷새밤을 지새우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김정일동지와 함께 정원을 거니시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시였다.

《지금 적들은 사면팔방에서 달려들고있다. 력량을 따지면 1 대 5라고 말할수 있다. 이런 때 당과 국가를 책임졌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놈들의 도전에 박멸로 대답하겠습니다. 적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반당종파분자들을 파리를 때려잡듯이 무자비하게 박멸해버리겠습니다.》

《옳은 생각이다. 종파분자들은 파리를 때려잡듯이 박멸해버려야 한다. 이것은 내가 30년동안 혁명투쟁을 해오면서 찾은 피의 교훈이다. 나는 내가 찾은 인생의 준엄한 교훈을 유산으로 넘겨주려고 하였는데 벌써 그것을 마음속에 혁명의 진리로 간직하였고 성격과 기질로 굳혔으니 좋은 일이다.

나는 이제 어려운 행군을 하려고 한다. 남패자로부터 북대정자에로의 고난의 행군때보다 더 힘든 행군이다.》

《저도 그 행군대오에 서겠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며 어깨를 두드려주시였다.

《그래! 이미 우리의 행군대오에 들어섰어!》

바로 그밤에 그이께서는 자신의 수첩에 이 글을 쓰시였고 이듬해 허담의 결혼식때 그 수첩을 선물로 주시면서 수령님의 위업을 받드는 길에서 생사운명을 함께 하는 영원한 동지가 되자고 하시였다.

허담은 조선혁명의 운명인 백두의 뿌리를 옹호고수하는 길에서 그이와 뜻과 운명을 같이할 결의를 새롭게 가다듬으며 인생대학의 또 한계단으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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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일심 - 중국 무한 - 사무원 - 2023-01-23
《살아도 죽어도 수령님을 위하여!》, 수령을 받드는 전사의 심장이 어떻게 고동쳐야 하고 생의 순간순간을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오늘도 새겨주는 위인의 이 글발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도 죽어도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위하여, 그이의 령도에 끝까지 충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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