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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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으로 돌아온 허담은 김정일동지를 뵈옵기 위하여 교교한 달빛이 고요를 불러오는 당중앙위원회 구내길로 바쁜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걸음보다 마음이 앞서 당중앙위원회 청사계단을 헐썩이며 오르는 그의 손에는 포장한 큰 물건이 쥐여져있었다. 김정일동지를 만나뵈올 기쁨으로 하여 허담의 마음은 날개라도 돋친듯 두계단씩 밟으며 올랐다.

김정일동지의 집무탁우에는 예나 다름없이 많은 문건들과 함께 보풀이 인 책들이 무드기 쌓여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담에게 자애깊은 미소를 지으며 잠간만 기다리라고 하시고는 문건들을 보시며 달필로 무엇인가를 적고계셨다.

의자에 앉아있는 허담의 눈길은 줄곳 벽에 걸린 수림을 형상한 그림에만 가있었다. 매혹되여서였던가. 아니, 그 정반대였다. 금강산이나 묘향산과 같은 절경도 아니고 보통 수수한 수림을 형상한 풍경화인데 미술가는 무슨 매력에 끌려 저 그림을 그렸는가.

더구나 그이의 집무실에 뚜렷한 자기의 얼굴이 없는 저런 풍경화를 그려 올리다니

세계적인 명산으로 알려진 금강산만 하여도 하늘을 찌를듯이 톱날처럼 솟구친 1만 2천봉으로 하여 산악미, 계곡미가 천태만상의 자연경관을 이루고 구룡폭포, 비봉폭포, 비단폭포, 은실폭포 등 전망경치, 호수경치, 해안경치의 장쾌한 화폭이 얼마나 많은가.

허담은 이 소박한 집무실에 들어설 때마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은근히 불만스러웠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보시던 문건을 덮으시고는 잠시 피로를 푸시려는듯 팔운동을 하시였다. 허담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안광에 피발이 선 그이를 우러렀다.

《매일 밤 이렇게 새우시면 어떻게 합니까?》

《나도 힘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난 일에 파묻힐 때가 오히려 좋습니다.》

그이께서 웃으시며 왼손으로 오른쪽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셨다.

《제가 좀 어깨를 두드려달랍니까?》

《안마할줄 압니까?》

《할줄은 모르지만 의사들이 하는걸 봤습니다.》

그이께서는 허담을 이윽히 보셨다. 허담은 자기를 찬찬히 보시는 그이의 눈빛에 웬일인가 당황하여 몸둘바를 몰라했다. 그이께서는 말없이 허담의 두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시였다. 허담은 더욱 퀭해져서 《아니, 왜?》하며 그이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허담의 목을 누르셨다.

《아!

허담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비명이 터졌다.

《이런, 풍부혈이 경종을 울리는군.》

그이께서 이번엔 어깨의 다른 혈들을 누르셨다.

허담은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듯한 아픔에 들썩하며 일어서려고 했다.

《허, 풍지혈과 견정혈도 졸고있으니 눈에 피발이 설수밖에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담의 목이며 어깨를 안마하기 시작하시였다. 그이의 손이 어깨며 목의 혈들을 누를 때마다 허담은 용수철에서 튕기듯 몸을 솟구치며 비명을 터쳤다.

《유럽나라들을 방문하면서 밤을 새운것같군요. 이젠 조국에 왔으니 환경변화를 좀 해야겠습니다.》

《아니, 일없습니다. 됐습니다.》

《허, 환자가 됐다는건 뭡니까. 다른 나라들처럼 돈을 받는것도 아닌 무상치료인데. 가만있으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롱까지 하시며 치료를 계속하시였다.

허담은 목이며 어깨의 아픔보다도 마음속 송구함이 더 커서 송곳방석에 앉은듯 안절부절 못했다. 순간의 휴식도 없이 밤을 지새시는 그이께서 자신의 건강은 생각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두고 걱정하시니 괜히 안마소리를 꺼냈다는 후회가 막심하였다. 그이의 존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이젠 시원합니다. 정말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시였다.

《오늘은 이만합시다. 지압치료는 10분정도 하는것이 좋습니다. 혈들이 잠을 깼으니 이젠 심장도 정상궤도로 뛸겁니다.》

《어거 괜히 저때문에

《나도 머리가 한결 거뜬합니다. 조건반사인가?!》

그이께서는 웃으시며 보온병의 물을 차잔에 부어 허담에게 주시였다.

《지압치료나 족심치료를 한 후엔 꼭 더운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치료결과는 령으로 되고맙니다.》

의사들도 놀랄 정도의 박식한 그이의 의술에 탄복을 금치 못하며 허담은 차잔의 더운물을 마시였다. 온몸의 혈이 그이의 뜨거운 사랑으로 후더워올랐다.

허담은 그이께 동유럽나라들을 순방한 정형을 말씀드리며 쏘피아의 무명전사묘에서 쑤다에브를 만났던 이야기도 해드렸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시며 그이께서는 사색의 세계속에서 지구의를 돌리기 시작하시였다.

하나의 작은 물방울에 우주가 비낀다는 말처럼 쏘피아의 무명전사묘에 비낀것은 무엇인가. 선렬들의 넋을 후대들에게 심어주지 못하는 혁명이 종당에 어떻게 될것인가를 경고하고있지 않는가.

붉은기, 오늘은 지구의 거의 절반을 덮고있는 이 기발의 붉은색은 사회주의라는, 혁명이라는 숭고한 리념과 사상이 그것을 위하여 바친 피의 색갈로 물들어진 빛갈이다. 사상이 변하면 선렬들이 흘린 피가 아무리 진하게 물들어져있다고 해도 이 기발의 색은 변하기마련이다.

이 지구상에 처음으로 사회주의국가를 일떠세운 쏘련, 얼마나 많은 혁명가들이 인류의 리상인 사회주의를 위하여 피를 바치고 목숨을 바쳤던가.

애국의 사상감정은 어느 나라, 어느 인민에게나 있다. 그러나 강력한 경제력과 발전된 문화를 가지고있는 동서의 유럽나라들은 파쑈도이췰란드의 침공앞에서 일시에 물먹은 담벽처럼 무너졌지만 영웅적쏘련인민은 사회주의사상을 불굴의 신념으로 간직한 쏘련공산당의 령도가 있었기때문에 승리하였다. 쓰딸린과 쏘련공산당이 추켜든 쏘베트애국주의의 기치는 파시즘을 타승하였다. 그 붉은기를 따라 반파쑈인민항쟁에 떨쳐나선 혁명가들에 의하여 사회주의는 동유럽에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흐루쑈브의 등장과 함께 사회주의리념의 근본을 이루고있는 견결한 반제사상이 이른바 제국주의와의 《평화적공존》, 《평화적경쟁》, 《평화적이행》이라는 수정주의로선으로 변색되기 시작했으며 그 여파는 전체 동유럽을 휩쓸고있다.

사상의 변질이 집중적으로 표현되는것이 바로 혁명선배들이 이룩한 공적을 허물어버리거나 잊혀지게 하는것이다. 선렬들의 넋이 살아있는한 절대로 로선의 변화를 실현할수 없기때문이다. 그래서 수정주의자들의 책동은 수령의 업적을 말살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되는것이다. 왜냐면 혁명선배의 최고대표자는 수령이기때문에

그이께서는 창가에서 돌아서시여 집무실안을 거닐기 시작하시였다.

《림춘추동지의 안부를 물었다는 쑤다에브 말입니다. 대사추방사건에 대한 그의 분석과 견해는 정확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헌데, 그가 했다는 예언 말입니다. 유럽의 불덩이가 림춘추동지의 발등에도 떨어질수 있다?》

《과민증에서 온 억측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측이라? 혁명투쟁에서 수령이 이룩한 고귀한 업적을 거세말살하고있는 수정주의의 검은구름장이 동유럽의 곳곳에서 장마를 몰아오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사색에 잠기시여 려명이 비껴드는 창문을 활짝 여시였다. 시원한 새벽바람이 방으로 흘러들며 그이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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