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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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추억에서 깨여난 유명혁은 유상룡의 번민이 서린 눈길과 마주치자 애써 미소를 머금으며 위안했다.

《편성원동무, 그 변절자는 분명 김씨라고 했소. 헌데 동문 유상룡이 아니요? 물론 유상룡이란 이름도 부모가 지어준것이 아니지만 동무가 김씨라는 증거도 없지 않소. 그리고…》 유명혁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어딘가 어색한 어조로 달래듯 말을 이었다.

《엿장사였다는 말만 가지고서야 어떻게 아버지를 찾겠소? 그때야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이였다구?!…》

그러나 유상룡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왕우구주변에서 지게에 엿상자를 얹고 큰 가위를 절컥거리며 디닌 엿장사는 우리 아버지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유명혁은 흠칫해지며 숱진 눈섭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때 그 로인도 그렇게 말했었다.

《로인님, 혹시 이 마을에 다른 엿장사는 없습니까?》

《엿장사라는건 그놈 하나뿐이였수다.》

《이 아근에 다른 마을에는요?》

《이보시우, 한달에 피죽도 아홉끼밖에 못먹는 이 궁벽한데서 무슨 엿바꿀 집이 많아서 엿장사가 여럿이 되겠소? 그 하나만두 제 벌이가 안되는데.》

유명혁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다가 이윽고 미음을 다잡으며 엄하게 그루를 박았다.

《유상룡동무, 동문 지금껏 당의 품속에서 혁명학원과 음악대학을 나온 후 음악편성원도 되고 당원도 되였소. 그러니 그 누구의 피줄이 아니라 당의 피줄을 물고 자라난 당의 아들이란 말이요!

이 일을 놓고 속썩일건 하나도 없소.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동무와는 아무 상관도 없소. 자, 이젠 가보오 》

유명혁이 단호하게 자리를 뜬 후에도 유상룡은 한적한 유보도의 돌의자에 외롭게 앉아있었다.

운명적인 밤이였다. 세상에 태여나 너무 어릴 때 헤여져 기억조차 없는 아버지의 얼굴이였지만 춥고 배고픈것보다 더 서러운 고아의 외로움에 엉엉 울 때마다 아버지만은 살아있다는데 언제면 자기를 찾아올가 하는 기다림이 있었다. 엿장사를 하면서 한번은 돈까지 보내주었다는 아버지가 남의 이름을 가졌으니 자기를 찾지 못하고있을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오늘까지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버지, 외로움에 울던 그밤들에 저 하늘에 무수한 별을 바라보며 저 별들중 하나는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알텐데 하고 목놓아 소리쳐본적은 얼마였던가.

《아-버-지!-》

방랑생활을 할 때 다른 아이들은 부모가 다 없지만 자기에게는 어딘가 살아있는 아버지가 있다는것으로 하여 한편으로 위안은 되였지만 그 기다림은 외로움보다 더 애절한 고통이였다.

저 하늘의 어느 별에 자기의 소원을 실어볼가 하고 고른 별 하나. 날이 저물면 서켠하늘에 개밥바라기라는 이름으로 제일먼저 뜨고 날이 샐녘이면 동켠하늘에 새별이라는 이름으로 제일 마지막까지 빛나던 별. 하루밤에 저 넓은 하늘을 가로질러가는 그 별은 아버지도 알고 나도 알고있을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자기의 별이라고 하였다. 그 별이 이밤 엷은 구름에 싸여 자기를 측은하게 내려다보고있다.

아, 저 별! 온 세상을 굽어보는 저 별은 지금 아버지가 봉분도 없이 묻혀버린 왕우구근방 마을의 어느 이름없는 뒤산도 내려다보고있지 않을가? 그 엿장사가 정말 내 아버지인가?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던 그 서러움의 밤처럼 목놓아 별에게 묻고싶었다.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두살때부터 이역땅에서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조국의 품에 안겨 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한 후 음악대학을 나오고 미래가 촉망되는 작곡가후비라는 평판을 듣고있는 자기였다. 얼마전에는 자기가 편곡한 노래를 들어본 어느한 극장의 이름있는 로작곡가가 당장이라도 자기네 극장에 작곡가로 오게 하겠다고 두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더우기 그가 눈길을 들어 마주볼수 없는 가장 어려운 사람은 다름아닌 안해였다. 안해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말해준단 말인가. 유명혁부국장의 말이 얼마나 옳았는가.

차라리 듣지 않았더라면! 무작정 그에게 엿장사에 대하여 들려달라고 떼를 쓰지 않았더라면

(부국장동지의 말대로 어떻게 그 변절자를 나의 아버지라고 단정한단 말인가? 그 시기 왕우구주변에서 엿장사를 한 행상인이였다는 말 한마디를 가지고, 그것도 다섯살때 들은것이 아닌가.)

유상룡의 심리는 엿장사가 자기 아버지가 아니라고 애써 부정하고있었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옳았다.

허청걸음을 옮기는 그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없어!》하는 말이 부지불식간에 튀여나왔다. 하지만 몇걸음 옮기던 유상룡은 뚝 굳어졌다.

그는 마치 못할짓을 하다가 들킨 심정이였다. 아직은 누구에게 그 무엇을 속인것도, 감춘것도 없이 살아온 유상룡이였다. 그런데도 마음은 왜 이리 무거운것인가. 귀전에 유명혁의 말이 다시 울렸다.

《모르는게 아는것보다 낫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것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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