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1 장

귀양지에서 돌아온 조헌

1

(2)

 

이들은 남보기에 종이라고는 하지만 이 집의 아들딸과 다름없었다.

조헌이 귀양지로 올 때 어찌 산설고 물설은 고장, 풍토사나운 북변땅에 홀로 가겠는가, 우리도 함께 가서 생사를 같이하겠다고 안해 신씨도 아들도 조헌의 동생 조전이도 따라왔었다.

해동이와 삼녀도 거치른 귀양지에서 누가 나리님과 마님을 돌봐주랴 하고 기어이 따라왔었다.

조헌은 20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주교수, 30대에 교서관 정자, 그후 질정관으로 명나라에 가는 사신일행으로 나섰고 호조, 례조, 공조의 좌랑, 종묘서의 종묘서령, 성균관의 전적, 40대에 사헌부감찰, 통진현 현감, 보은현감, 전라도도사의 벼슬을 력임하기도 하였다. 그는 학식이 다문박식하였으며 품성이 좋고 인격이 높아서 앞날에 크게 될 사람이라고 명망이 있었지만 대의에 어긋나거나 비법불법을 일삼는 관리들이라면 누구를 가리지 않고 대바르게 규탄한탓에 벼슬이 오르지 못하였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나빠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좋아하는 사람들은 청렴하고 고지식한 사람들이고 나빠하는 사람들은 임금에게 잘 보여 더 좋은 벼슬자리를 탐내는 사람들이였다.

조헌이 귀양지로 떠날 때 제가 당하는 불행처럼 근심과 걱정을 안고 멀리까지 바래주는 백성들이 많았다. 그들은 고을의 량반들과 아전들이 부당한 갖가지 명목으로 략취하는것을 대바르게 시비를 갈라서 사기협잡행위를 막아주던 그를 잊지 못하는것이다. 조헌이 벼슬에서 물러난 일개 선비에 불과하였지만 관가에서는 그를 무시하지 못하였다.

조헌은 고을의 관리들과 아전들이 리속을 채우는 공간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아전들은 그가 두려워 함부로 백성들의 등껍질을 벗겨먹을수 없었다. 백성들은 자기들을 위해주던 사람이 뜻밖에 귀양가는데 놀라며 한탄하고 락심하였다.

고을의 어느 로인은 말을 끌고와서 《사또님이 귀양가니 우리 백성들은 한지에 나앉게 되였소이다. 귀양갈 놈들이 수두룩한데 오히려 사또님이 가시다니 세상일이 왜 이리도 꺼꾸로 되였소이까. 이 말이라도 타고가시오이다. 귀양가서 몸성히 지내시다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겠나이다.》 하고 말고삐를 넘겨주었다.

《로인님, 무슨 말씀이오이까. 로인님집에선 이 말 하나를 믿고사시는데 제가 어찌 타고가겠소이까.》

조헌이 로인에게 말고삐를 다시 넘겨주자 《사또님, 사또님께선 우리 백성들을 위하다가 귀양을 가시는데 우리 백성들은 사또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소이다. 이 말 한필이 무엇이겠소이까.》 하고 로인은 말고삐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옳소이다. 사또님도 마님도 어떻게 그 먼길을 걸어서 가시오리까, 사또님, 우리의 성의를 물리치지 마시오이다.》

마을의 중늙은이 하나가 이렇게 조헌의 귀양길을 걱정해주었다.

동네사람들이 《사또님》, 《사또님》하는것은 조헌이 한때 고을 원을 지낸적이 있어서 그를 공경하여 하는 말이였다. 아낙네들은 굶주리면서도 좁쌀과 기장쌀같은것을 들고나오기도 하고 한알두알 모았다가 팔아서 살림살이를 보태려던 닭알까지 삶아가지고 해동이와 삼녀의 짐보따리에 넣어주기도 하였었다. …

해동이는 이곳 령동에 와서 귀양살이를 하는 조헌을 더욱 존대하고 시중을 들면서 밭을 갈고 땔나무를 해왔다.

삼녀도 앓는 마님을 위해 제몸을 아끼지 않았다.

조헌은 안해의 이불귀를 꼭꼭 여며주고 문밖을 나섰다. 벌써 마당에 나와있던 해동이가 벙긋 웃으며 꾸벅 아침인사를 하였다. 총각의 굵은 머리태를 감싸서 이마를 질끈 동여맨 무명수건, 무명바지저고리에 중치막을 덧입고 허리를 가뜬히 두른 베천, 발에는 두툼한 짚신감발, 어디를 보나 끌끌한 사내대장부다왔다.

《나리님, 추위가 혹심하오이다. 오늘은 제가 나리님을 대신해 역마를 끌겠사오이다.》

해동의 말을 보태주기나 하듯이 세찬 회오리눈바람이 두사람을 날려보낼듯 불어왔다.

《이만한 추위에 쉬다니 무슨 소리냐, 두말말구 너는 무술이나 익혀라. 이런 날씨에 수련해야 진짜 무술가가 되니라.》

조헌이 빙그레 웃으며 마당굽을 나섰다.

아버님, 제가 아버님의 마필을 끌겠습니다.》

아들 조완기는 역참에 나갈 옷차림을 다해가지고 나와서 아버지를 막아나섰다. 그는 해동이와 꼭같은 차림을 하였는데 머리는 해동이와 다르게 상투에 망건을 쓰고 흰 무명수건을 동여맸다. 조헌은 완기와 해동이를 차이나게 옷을 입히지 않았다. 아들에게 옷 한가지를 지어 입히면 해동이에게도 꼭같은 옷감으로 만들어 입히였지만 밥만은 한자리에 함께 앉아먹게 하지 않았다. 완기가 조헌을 《아버님》이라 부르고 해동이는 《나리님》이라 부르는것처럼.

《맏이는 해동이와 함께 무술을 익혀야겠다. 눈보라를 뚫고 말을 달리면서 칼쓰기와 활쏘기를 수련해라. 아무래도 요즘 왜놈들의 행동이 수상하다.》

근간에 왜놈들은 우리 나라를 어째보겠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흉악한 기미를 자주 나타냈다. 우리 나라의 연해에 도적고양이처럼 기여들어 군사들과 백성들을 랍치하여 나라의 형편을 알아내려고 하였다. 우리 나라 백성들의 옷차림을 한 왜놈간자들은 소금장사군, 행상군으로 가장하고 나라의 길과 산과 강, 령길과 물길을 내탐하였다. 삿갓중으로 꾸미고 목탁을 두드리면서 이 마을, 저 마을들을 찾아다니기도 하였다. 백성들의 민심을 내탐하려는것이였다.

《나무아미타불…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관리들은 지옥으로 떨어지리라. 석가모니께서 용서치 않으리라》, 《가가호호마다 먹고 입고 쓰고살 길이 없으니 누가 나라를 위해 힘쓰겠소이까. 미륵불이시여, 불쌍한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옵소서.》 하고 주문처럼 중얼중얼 외우면서 백성들의 불만을 더욱 야기시키려고 하였다.

조헌은 역참마차에 역체하는 사람들을 태우고다니면서 이런 말을 전해들을 때마다 왜놈들에 대한 격분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역참에서 일하는 까닭에 역참 《손님》들을 통하여 간악한 왜놈들의 음흉한 책동을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알게 되여 늘 분노의 분화구가 가슴속에서 터져오르군 하였다.

그는 자기가 귀양살이를 하기전이나 귀양살이를 하고있는 오늘에나 우리 나라를 먹어보려는 왜놈들의 야심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악랄해지고있지만 조정에서는 태평성대만 부르는것이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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