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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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담은 리만길의 입에서 외무성 과장소리가 나오자 처음에는 아연해졌다가 얼굴이 벌기우리해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흙냄새가 몸에 푹 배인 리만길이 외무성 부상앞에서도 주접들지 않고 할말을 다 내뱉는 그 배심이 도리여 마음에 드시였지만 바쁜 농사철도 아랑곳하지 않는 《향토꾸리기》에 대한 분개는 쉬이 참을길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관철에 제동을 거는 삼복리의 《향토꾸리기》 말뚝!

얼마전 깊은 밤에 신인하가 이야기하던것이 생각나시였다. 그러니 김도만이 자기가 담당한 평안북도만이 아니라 다른 도의 어느한 곳에 시범단위를 만들겠다고 고른 곳이 여기 삼복리였단 말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뒤짐을 지고 강가쪽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이께서는 잔물결이 고요히 흐르는 강기슭에서 손을 물에 잠그시고 점도록 앉아계시였다. 강기슭에 무드기 쌓인 부식된 락엽냄새가 축축한 아침공기속에 시큼하게 풍겨왔다. 흐르는 물결우에 다락밭농사로 도적인 1등이 되겠다던 차성희며 청년들의 모습과 함께 눈먼 망아지 워낭소리 따라가듯 하는 리만길의 기름한 얼굴이 엇갈려 나타났다. 여기에 목천복로인의 간절한 청원의 웨침이 페부를 찌르며 또 들려온다.

허담이 무거운 사색에 잠기신 김정일동지곁에 석상처럼 굳어져있었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여전히 침묵속에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기슭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근간에 《갑산전통》이라는 낱말을 자주 들으시였다. 그 《갑산전통》이라는 뿌리에서 그 누구의 집이 그 무슨 《유일한 거점》으로 아지를 뻗고 《갑산전통》에 승벽을 겨루며 그 무슨 《농조전통》이라는것도 머리를 쳐들기 시작한다.

혁명전통은 당과 혁명의 력사적뿌리이며 세대와 세대를 하나의 명맥으로 이어주는 피줄기이다. 뿌리가 두세개인 나무가 있을수 없듯이, 육체에 한가지 형의 피가 흘러야 생명이 존재할수 있듯이 당은 오직 하나의 전통만 계승하여야 자기 위업을 성취할수 있다.

그이께서는 강물에 눈길을 주시다가 허리를 굽히시고 떠내려오는 풀을 손에 쥐고 보시였다. 누른풀색의 잎가운데 실모양의 뿌리가 내린 풀이였다. 그 풀을 쥐시고 허담을 돌아보시였다.

《이게 무슨 풀인지 압니까?》

《부평초가 아닙니까?》

《그렇지요. 개구리밥풀이라고도 합니다. 난 중학교때 나무를 심으며 이 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이께서는 부평초를 물에 던지시였다. 물우에 던져진 부평초는 흐르는 물결에 실려 떠내려갔다. 허담은 시야에서 가뭇없이 사라지는 개구리밥풀에 눈길을 쫓으며 못박힌듯 굳어져있었다. 허담에게서 부평초라는 이름은 지금까지 마음속에 정대로 쪼은듯 박힌 이름이였다. 《봉선화사건》때 부평초라는 말씀을 하시였기때문이다.

《관리위원장이 말한 외무성 과장이 봉선화사건의 주인공이 아닙니까?》

《저도 처음엔 깜짝 놀랐는데 차성준동무가 옳은것같습니다. 그의 고향이 삼복리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 승용차에 오르시자 허담이 조심히 말씀올렸다.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얘기하십시오.》

《부평초에 대한 말씀을 듣고싶습니다.》

그이께서는 추연한 눈빛으로 차창밖을 살피시며 나직한 어조로 반문하시였다.

《어렸을 때나 또 대학시절에 동무들이 부르던 별명이 없었습니까?》

예견치 못했던 물음이여서 허담은 입을 벙싯한채 한동안 굳어져있다가 어줍은 미소를 지었다.

《거 뭐, 특별히 별명이라는건 없었습니다. 그저 별로 다툰 일도 없어서 저의 성격을 에 비유한 동무들은 많았습니다.》

《그럼 내 별명을 하나 지어볼가요? 물음보! 어떻습니까? 지독한 물음보.》

허담은 헤식은 웃음을 지으며 뒤더수기를 긁적이였다. 사실 허담은 그이를 뵈올 때면 외교문제는 더 말할것도 없고 인간생활의 가지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끝없이 문의하군 하였다.

《대학 최우등졸업생이 만날 때마다 뭘 자꾸 물으며 그럽니까?》

《전 다시 대학에 다닙니다.》

그이께서는 의미깊으신 눈길로 허담을 돌아보시였다. 허담은 다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인생대학이라고 할지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담이 말씀올린 인생대학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곱씹어 외워보시였다. 남자들도 놀랄 정도로 성격이 과격하여 《불》이라고 하는 안해에 비하여 말이 없고 진중하여 《물》이라고 하는 허담의 입에서 나온 인생대학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안겨오시였다.

《인생대학이라 그 대학을 우리 함께 다녀볼가요? 그럼 하나 물어봅시다.  향토꾸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순간 허담은 다소 당황하여 귀밑이 붉어올랐다.

《깊이 생각해보진 못했는데 자기가 사는 마을을 꾸리는 일이라는데서는 해야 할 사업같기도 하고 제가 지방사업을 너무 모르다나니

《그럼 체 게바라가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정신적량식으로 삼고 볼리비아혁명을 결심한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이의 두번째 질문을 받은 허담이 자기 생각에 골몰하는데 그이께서 다시 물으시였다.

《내 일전에 말한 봉선화와 혁명가요에 대한 분석은 해봤습니까?》

김정일동지의 세번째 질문까지 받게 되자 허담은 더 입을 열수가 없었다. 차안에는 한동안 정적이 깃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사색의 심연을 헤치시며 천천히 조향륜을 돌리시였다. 방금 허담에게 하신 세가지 질문은 곧 자신께서 예리하신 안목으로 분석하고계시는 문제들이였다.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시면서 그이께서 마음속에 안고계시는 진통, 그것은 조선혁명의 직선항로에 갈지자를 그리게 하는 오가잡탕의 《전통》들과 여기에 편승하여 《애국주의》, 《향토애》의 보자기를 쓴 《향토꾸리기 10개년계획》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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